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587

[역사] 시효 없는 슬픔

시효 없는
슬픔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다시 봄을 맞고 5월이 되었건만, 세월호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유가족들을 국민으로 품으려 하지 않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식이 죽은 이유를 몰라 발만 동동거리는 유가족들에게 노골적으로 모든 걸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한다. 이제 겨우 1년이 흘렀는데 말이다.
올해로 5.18항쟁이 35주년을 맞았다. 한 세대를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건만, 살아남은 자에게도 남겨진 자에게도 1980년 5월의 슬픔은 계속되고 있다.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배상과 보상을 하고 5월 18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슬픈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더욱이 아직도 대한민국 모두가 함께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으니 상처가 아물 리 없다.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 atopy

살아남은 자의 슬픔
5.18항쟁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의 엔딩을 장식한 결혼식 기념사진 찍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는 가운데 항쟁 과정에서 죽은 자들은 모두 밝게 웃고 있다. 하지만, 살아남은 오직 한 사람, 신부만은 웃고 있지 않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을 상징한 장면이다. “나는 폭도가 아니야.”라는 말을 남기며 남자 주인공은 죽어갔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오래도록 폭도란 소리를 들으며 세월을 견뎌야 했다. 살아남았으나 군인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은 이들은 밤마다 밀려오는 공포와 고통에 제대로 잠조차 잘 수 없었다. 어느덧 유공자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 때문에 여전히 삭히지 못한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대놓고 드러내기는 더 어려워졌다.
말없이 술을 거푸 들이키면 그때의 기억은 더욱 또렷해진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이다. 슬픔과 고통에 짓눌려 삶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 <오월애>에 나오는 이 장면에 보는 이의 가슴도 무너진다. 이제 그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도 마음대로 못 부르게 하는 5.18항쟁 기념식은 남의 잔치다. 이제 그들의 슬픔은 분노를 넘어 마음속 깊이 체념과 소외의 동굴을 파고 있다. 세계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함께 슬퍼하며 공감한다. 누구나 인류가 돌아보아야 할 끔찍한 비극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5.18항쟁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비극적 역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살아남은 자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남겨진 자의 슬픔
남겨진 자의 슬픔은 강풀의 만화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26년>에 잘 그려져 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은 증오로 표현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남자 주인공은 전두환을 향해 총을 겨눈 여주인공에게 “다 끝내고 우리도 남들처럼 영화보고 놀이동산에도 가자”고 말한다. 부모 세대의 슬픔이 전수되면서 일상을 일상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남겨진 자의 고통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1980년생으로 아버지를 영정으로만 대한 아들은 어른이 되어 “제발 우리 아버지가 전두환이어도 좋으니 그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정신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자란 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른이 되어 전두환에 대한 증오에 밤마다 고통스러워한다. 영화 <순지>에는 아버지는 항쟁 당시 행방불명되었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몸져누워 어릴 적부터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딸이 나온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부모 세대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자식 세대에게 전해지는 걸 목도하면서 그들에게 감히 망각을 권할 수는 없다. 세월의 힘으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겨진 자의 슬픔에 공감하는 게 먼저다.

 

2015년 광화문, 슬픔의 강이 흐르는 곳
4월 18일 대낮에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행되었다. 유가족들은 삭발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이러다가 유가족은 다 죽습니다.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야 합니다”라고 절규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맺힌 분노에는 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슬픔을 슬픔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분노로 만든 세상,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월간 <참여사회> 1월호에 소개된 15세 자원활동가 전서윤이 삭발을 했다. 1년 내내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며 그들의 딸이 되어 주더니 제 발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고 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면서…. 유가족과 그들의 깊은 슬픔을 받아들인 서윤이는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 살고 있다. 2015년, 현대사를 잇는 슬픔의 강이 광화문 광장을 흐르고 있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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