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745

[경제] 연금개혁의 핵심, ‘누구의 돈을 더 걷을 것인가?’

연금개혁의 핵심, ‘누구의 돈을 더 걷을 것인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4월 25일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대규모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있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와 노동자 단체들이 참가했다. 공적 연금의 수지 개선을 위한 각종 ‘개혁’ 방안들이 공적 연금의 사회보장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약자를 빈곤으로 내몬다는 것이 주된 문제제기였다.
요즘 연금 개혁의 핵심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표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과거의 연금 구조가 ‘덜 내고, 낸 것 보다 더 많이 받아 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과거 구조가 이런 식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언제나 ‘더 내고 덜 받는’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진보 진영이 어쩌면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연금에 관한 어려운 의사결정이 숨어 있다.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4월 25일 열린 공적연금강화 국민대회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 연금개혁 논의
우선 ‘덜 받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수지를 개선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덜 받는 것이 맞지만, 노후 보장의 절대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반드시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보 단체들의 주장처럼 노후 보장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의 사회 공동체를 누리고 살아간다는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지 개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안 될 경우 우리는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통일조국”이 아니라 ’빚더미에 짓눌린 우울한 신세계‘를 물려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잠정적 결론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적어도 기초생활을 보장할 수준까지는 모든 노인들이 연금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재원은 철저히 준비해서 후손에게 빚더미를 물려  주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연금 개혁의 핵심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누구에게서 돈을 더 걷을 것인가?’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에서 이 부분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
정부는 ‘더 내라’고 독촉한다. 누구를 상대로 더 내라는 것인가? 월급쟁이다. 유리지갑을 가진 그들에게 연금도 더 걷고, 세금도 더 걷고, 요즘에는 건강보험료도 더 걷는다. 그러나 월급쟁이들, 넥타이 부대와 스커트 부대들은 이미 충분히 많이 내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독촉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부는 돈을 더 내야 할 필요성만 은근히 강조할 뿐, 누가 그 돈을 더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꼬리를 흐린다. 그리고는 지금 그 돈을 충분히 많이 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내야 한다고 은연중에 압박한다. 아직까지 돈을 제대로 내고 있지 않은 계층은 계속 그림자 뒤에 숨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자산가들이다.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 말이다. 유식한 말로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부담해야 할 정당한 몫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형평성에 어긋난 자산과세제도
우선 자산 그 자체에 대한 과세에는 강하게 저항한다. 종합부동산세 관련한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재산세는 지방세라느니, 종부세는 위헌이라느니 하면서 집중 폭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세금은 국가가 필요에 따라 그냥 부과하면 되는 것이다. 소득 중 일부를 국가가 뺏어 가는데 무슨 정당성의 논리가 있단 말인가. 국가가 필요한 사용처가 있고, 그 수단이 투명하고, 다른 사람들과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지만 않으면 된다. 자동차에도 세금을 부과하는데 토지나 건물, 주식과 은행예금에 세금을 부과하지 못한 천부적인 논거는 없다.
그럼 혹자는 당장 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주식의 배당소득이나 은행예금의 이자소득에 이미 과세를 하고 있는데 또 떼어 가면 이중과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는 근로소득과 달리 아직도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툭하면 분리과세 혜택을 주고, 월세 같은 경우에는 세원 포착도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외 없이 자산소득 종합과세를 실현한 뒤에야 이런 반론이 그나마 타당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여부가 자산에 대한 과세 여부를 결정하는 준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보자. 자동차에 대한 세금은 ‘자동차 보유에서 연유하는 소득에 대한 소득세 과세’가 아니다. 만일 자산에 대한 과세가 오직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로만 정당화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자동차세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자산에 대한 과세는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와는 다른 것이다.
작금의 연금 개혁 논의는 또 다시 불쌍한 월급쟁이를 쥐어짜려고 하고 있다. 핵심은 누구의 지갑에 정부가 손을 뻗칠 것인가 하는 점인 데도 말이다.

 

전성인
서울출생.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 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 중.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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