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1863

[통인] 출가 – 법인 참여연대 공동대표

출가出家

법인 참여연대 공동대표

인터뷰 주은경 / 정리 이선희 /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법인 스님은 중학교 3학년 때 출가를 결심했다. 광주 향림사에 놀러갔다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라는 난생 처음 듣는 법문에 이끌렸다. 그 후 한용운의 시에 매료되어 만해 전집을  읽고 난 후 향림사에서 천운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 후 1985년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하지만, 문학을 접고 경전 공부와 수행에 몰입했다. 수행자의 역할에 대한 화두는 자연스레 사회과학 서적 탐독으로 이어졌고, 절 너머의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됐다. 1990년에는 도법, 학담, 현웅 스님을 만나 수행자의 정신과 처신, 교리의 재해석, 불교 정신의 시대적 구현의 지혜를 배웠다.
스님은 한 인터뷰에서“출가한다고 할 때, 그걸 사람들을 등지고 사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있다. 잘못된 가치관과 삶의 행태를 떠나자는 것이지, 세상과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자는 게 아니다. 무소유, 검소, 청빈에만 머무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것은 수행자의 기본이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하는 게 붓다가 선언한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다. 따라서 출가자는 세상을 품고 수행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꺼이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되신 것도 이런 생각의 연장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막 지난 4월 17일 오후, 법인 스님을 만나 우리 사회의 현실과 희망에 대해 물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힐링Healing, 치유이 대세예요. 마음과 치유에 대한 책·방송은 물론 상담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힐링은 고통을 치유하는 건데 인간에게는 늘 고통이 존재하잖아요. 그래서 싯다르타(부처님)가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출가한 거고요. 불교적으로 얘기하면, 생로병사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통인데 여기에 추가되는 4가지 고통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애별리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을 의미하는 ‘원증회고’라는 말은 인간관계의 고통을 의미하거든요. ‘구부득고’는 희망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고통, 그러니까 생산·소비·분배에 대한 불공정성이에요. 마지막은 ‘오음성고’인데, 인간이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욕망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을 확장해보면 인간관계, 사회나 국가로부터 발생하는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필요한 거죠.
불교에서는 고통의 치유가 굉장히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사성제’라고 해서 생로병사나 개인의 욕망, 사회적 모순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고통이라고 전제를 깔죠.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는데, 고통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얘기하죠. 다음으로 개인적·사회적 고통이 소멸된 세계, 즉 열반 해탈을 추구하는데, ‘팔정도’라고 해서 그런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제시하고 있어요.
요즘 사회의 힐링이라는 게 “아픈거 이해해. 그만하면 괜찮아”에 그치기 때문에 문제지요. 단기적인 신경안정제 처방이잖아요. 제가 십여 년 전에 수련원장 할 때 직장인들이 절에서 수련하면 한 두 달 밖에 약효가 안 간다는 거예요. 산사에서는 생활의 압박과 단절되어 있으니까 고통이 치유됐다고 생각하는데, 사회로 돌아가면 모순·갈등·경쟁 관계에 있으니까 다시 심신이 망가지는 거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통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확실하지 않으면 힐링이 대기업의 횡포, 자본주의나 국가의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시켜주겠구나 생각했어요. 어떤 사안이 있으면 나의 잘못인지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지 진단해야 돼요. 내 탓 할 때와 남 탓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하고, 사회적인 문제일 때는 참여와 연대를 해야죠.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그런 차원에서 보면, 세월호 참사를 잊으려는 시민들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오늘 참여연대에 택시를 타고 오는데 기사님이 어제 데모하는 바람에 차가 막혀서 짜증나고 힘들었다고 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데모하는지 생각 안 해보셨어요?” 그랬더니 “돈 많이 달라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한 가족 당 백 억씩 주면 될 것을….”하라고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죠.
두 가지가 원인이라고 봐요. 첫째는 산업화 과정에서 압축 성장하다보니까 훌륭함, 인격 이런 말들이 잊혀졌어요. 돈과 경제 성장을 중시하면서 인간 심성이 망가진 거죠. 두 번째는 교육의 문제인데, 요즘 스스로 ‘취업사관학교’라고 칭하는 대학들이 많아요.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것이잖아요. 교육도 오로지 출세, 돈, 권력 중심으로 가니까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생명 중심의 교육이 안 되는 거죠.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런 문제와 연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을까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현실의 고통이 오늘 뿐이겠어요? 석가모니, 공자 시절에도 그랬는데….(웃음)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해요. 개인도 변해야 하지만, 먼저 (사회)구조가 변해야죠. 맹자가 말하길 항산(살아갈 수 있는 일정한 재산, 생업)이 되어야 항심(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 불편의 양심)이 된다고 하잖아요. 재화의 총량이 무한정 늘어나는 게 해결책일까 이런 생각을 해요. 인간의 정신이 안정을 누리고, 서로 싸우지 않고 나눌 수 있을 정도까지만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무한대로 많이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생태계도 그런 질서와 공존할 수 없고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것이 100마리의 양이 살아야 할 초목에서 200마리가 살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 다음에 개인이 각성하는 것도 필요하죠. 참여연대가 권력 감시부터 사회경제 분야까지 폭넓게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데, 그런 활동과 함께 시민의 정신·도덕·윤리를 고양시키는 것이 병행돼야 해요. 남 탓은 쉽지만 자기 성찰은 어렵잖아요.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정신·도덕·윤리를 갖추어야죠. 잘못된 일들을 나부터 저지르지 않는 것, 나의 생각과 행위가 격을 높였을 때 올바른 시민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스님이 대중과 만나려는 노력을 해오신 게 이해가 돼요. 요즘의 템플스테이에 해당하는 ‘새벽 숲길’을 처음 운영하셨고, 청년출가학교, 군부대 관심병사 새로 태어나기, 자전에세이 쓰기, 지역주민을 위한 인문캠프 등등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습니다. 어떤 생각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나요?

 

모든 것은 생명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거죠. 사람들이 힘들게 번 돈을 절에 시주하고, 그 돈으로 절이 운영되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힘들면 절에 가서 푹 쉬고 스님한테 좋은 말씀 듣고 싶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 힘들 때 마음 쉼터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매우 단순한 것에서 출발했어요. 이전에는 절에서 주로 3천배, 묵언수행 같은 고강도 수행을 했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처음 포교 여행을 떠날 때 “모든 사람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라”고 하셨거든요.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길을 떠나라고 했지 내 제자 만들고 우리 교단 중흥시키기 위해 떠나라고 안 했죠. 그래서 불교 신도 확장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맞춘 프로그램을 한 거죠. 낮잠 자고 싶으면 자라고 그랬어요. 세속에서 워낙 피곤하니까 산중에서 시원한 솔바람 맞으면서 자는 것도 힐링이라고 생각했어요.

 

참여연대 아카데미도 시민예술이나 인문학 등 시민의 감성과 영성을 강조하는 강좌를 많이 하고 있어요.

 

참여연대에서는 주로 (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을텐데, 야외 프로그램을 해보면 좋겠어요. 자연에서 몸을 쓰면서 감성을 깨우는 게 사람을 굉장히 변화시키거든요. 이론 학습을 통해 사람의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뭔가를 깨닫는 데 복잡한 이론이 필요 없을 때가 많아요. 예전에 미황사에서 금강스님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문학당을 했거든요. 집에서 떠나 텔레비전 안 보고 오락 안하고 육식 안 먹고 친구들이랑 큰 방에서 같이 자니까 낯설잖아요. 아이들이 한 3일 지나면 부모님 보고 싶다고 울어요. 감성이 살아난 거예요. 낯선 환경 속에 있으니까 새삼 가족과 부모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자연과 함께하면 단순히 감정과 신경의 안정만 취하는 게 아니고, 존재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주거든요. 

 

스님과 얘기를 나누고 나니까 왜 시민단체에 참여하셨는지 알겠네요.

 

‘방편바라밀’이라는 말이 있어요.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편을 통해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죠.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참여하면서 미약한 힘이나마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하나의 방편이죠.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된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어떠셨어요?

 

3월부터 상임집행위원회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국가 기구나 권력은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서 국민을 먼저 생각하기 어렵겠구나…. 감시, 비판, 압력이 있을 때 나쁜 짓 열 번 할 거 다섯 번 하고, 좋은 일도 가끔 하는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 시민사회와 더불어 교육, 언론, 종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활동가들이 즐겁고 사랑이 넘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았어요.

 

시민단체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이 즐거워 보일 때 시민들도 함께 하고 싶어 질 것 같아요.

 

활동가들 표정부터 바꿔야 해요. 나부터 즐겁게! 서로 신뢰와 애정이 쌓이면 무슨 일이든 하거든요. 신뢰와 애정이 쌓이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철학의 방향도 좋아야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서로 만나는 게 즐거워야 해요. 조계종 교육부장 할 때 직접 차 만들어서 직원들 나눠주고, 싱크대에서 설거지 하고 그랬죠. 제가 먼저 작은 일을 즐겁게 하니까 직원들도 열심히 일하더라고요.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참여연대가 시민단체로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 있으세요?

 

시민운동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생각을 많이는 못했는데, 지난 3월 참여연대 총회를 보면서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총회 참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든 걸 짜야 하거든요. 공동대표단이나 사무처장들이 입구에서 회원들 맞이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테이블에 회원들과 함께 앉아서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작은 일을 정밀하게 해서 ‘따뜻한 연대, 행복한 참여’가 단지 구호가 아니라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죠. 회원 모임에서 총회의 차와 음식을 준비해보는 것도 좋지요. 작은 단위에서 작은 참여를 할 수 있게 틈새를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참여연대 활동가나 회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면 좋을지 말씀 해주세요.

 

공동대표 수락할 때도 얘기했는데, 감시하고 비판하고 참여하고 연대하는 모든 것들이 사람의 행복이잖아요. 이성적으로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굉장히 격한 경우가 많아요.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멸시할 권리는 없어요. 옳고 그름은 분명하게 판단하고 감시해야겠지만, 미워하거나 적으로 돌려 세우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돼요. 참여연대 활동가와 회원들부터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감정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수행이 굉장히 필요해요. 우리들의 성숙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한 거죠. 올바르게 통찰하고 판단하는 지혜와 내가 옳다고 남을 미워하지 않고 가슴으로 공감하는 자비의 마음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스님이 말씀하신 ‘출가’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세월호 이전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월호 이전의 세상과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해야만 한다.

 

“출가는 살던 집을 버리고 떠나는 결행을 말한다. 어떤 집에서 나와야 하는가. 속박과 갈등의 집, 다툼과 상처가 가득한 집, 소수의 강자가 다수를 억압하고 군림하는 집, 돈의 가치가 생명의 가치에 우선하는 집,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것들에 묶여 있으면서도 묶여 있는 줄을 모르고 알면서도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찾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이런 집에서는 불안하고 답답하고 생기 없는 삶이 있을 뿐이다. 일상생활을 하는 집을 떠나는 것만을 출가라고 할 수 없다. 헛된 꿈을 꾸며 이기적 욕망이 질주하는 트랙의 출발점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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