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575

[여는글] 광화문연가

광화문연가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4월 16일 밤,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시청광장에서 광화 문분향소를 향하던 추모행렬은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경찰의 차벽에 막혀 그 ‘꽃 한 송이’조차 바칠 수 없었다. 간절한 마음들은 광화문으로 건너고자 청계천 길로 우회해야만 했다. 길고도 긴 행렬을 한참동안 서서 지켜보았다. 그 많은 꽃들의 행렬(그들은 단 한명도 경찰서에 연행되어서는 안되는 4월 밤의 꽃이었다)이 흐르고 맨 마지막을 장애단체 회원들이 채웠다. 87년 6월 바로 이 자리에서 같은 행렬을 보았다. 그 날도 우리는 64연발탄에 막혀 이순신장군 동상을 넘지 못했다.
이내 시청광장에서 조선일보사 앞 대로는 텅 비었다. 반쯤은 시들어 고개가 꺽여버린 ‘꽃 한 송이’를 검정 가방에 꽂고 발길을 돌리는 여성의 뒤를 따라 나도 걷는다. 한참을 돌아 광화문 연가의 정동길에 이르렀다. 항상 팍팍하고 허덕거렸던 길이다. 서울이 익숙지 않았던 20대엔 법원 방청하러 가던 길, 30대엔 최루탄을 피해 숨 고르던 길, 4~50대에는 정동을 가로질러 사무실로 시청광장으로 종종걸음 치던 길이다. 옛 생각에 걸음이 느려진 사이 그 여성은 서소문길로 사라져 버리고 없다. 늦은 밤 그녀의 뒤를 밟은 것은 어디선가 만났던 뒷모습 때문이다. 99년 농협소송 때였나?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여성우선해고 반대운동의 시작
내가 짐작하고 있는 그녀가 맞다면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1997년 말 한국정부는 IMF등에서 달러를 지원받아 외환위기를 넘긴다. 지원조건으로 IMF가 내건 요구사항 중 하나인 금융·기업의 구조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해고되어 길거리로 내몰려졌다. 당시의 구조조정을 얘기하지면 정말 많은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오늘의 얘기는 그녀가 10년 넘게 다녔던 농협에서의 해고얘기다.
농협 구조조정비상대책위는 인적구조조정 방법으로 명예퇴직을 택했다. 이어 퇴출집단에 대한 설계를 마쳤다. 지목된 세 번째 집단은 경제적 생활안정자였다. 지점장들에게 전달된 지침에서 사내 부부사원이 구조조정의 대상에 오른 생활안정자임이 확인되었다.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며 맞벌이를 해왔던 것은 그만큼 일이 절실했을 것이라는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98년 흑자로 사실상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도, 해고회피의 노력도, 누가 정말 생활안정자인지 합리적 기준도 없었다. 실질적 정리해고인 순환명령휴직 대상자가 되자 전담 책임자에게서 온갖 압력이 시작되었다. 결국 사내부부 762쌍 중 752쌍의 부부 중 한 명이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퇴직한 이들 중 688명, 무려 91%가 아내들이었다. 그녀도 688명의 여성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운동이 ‘여성우선해고 반대운동’이다.

‘동료 근로자와 혼인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리해고 대상이 되는 것은 헌법·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여성차별철폐협약 위반입니다.’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퇴직여성 66%가 퇴직 후 정규직의 약 50%의 임금을 받으며 계약직으로 재고용되어 그 농협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들도 여전히 농협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여성단체 대표·여교수 28명이 농협을 고발하고 나섰다. 전국에 수소문하자 2명의 원고가 어렵게 나섰다. 고소·고발에 이어 토론회, 회사 앞 규탄대회, 다큐멘터리 제작, 서명운동, 대법원 앞 릴레이 1인 시위까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쏟아 넣었다. 다만 국내의 사법절차를 끝내고 여성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에 진정해 보려던 계획은 우리나라가 선택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시기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4년간의 소송에서 우리는 졌다. 법원은 해고가 아니니 성차별 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판결했다. 결혼퇴직의 결정판이요, 최악의 여성우선해고 사건인 농협사건은 이렇게 끝났다.

 

여성, 노동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일은 무엇인가? 판결로 본 노동은 ‘집 밖에서의 일’이다. 풀타임 노동을 하는 남성이 그 모델이다. 객관성 또는 합리성은 남성의 경험을 남성의 언어로 표현하고 해석되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생존한다는 것은 남성의 기준에 따라, 남성의 조건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노동은 저低가치 노동으로 평가되면서 노동시장에서 그림자처럼 침묵하다가 경영 실패, 경영환경의 변화, 경제적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노동시장에서 퇴출된다.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새롭게 끼어든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평등실현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성차별사건 소송을 믿었다. 그러나 법원은 차별행위 판단에서 어처구니없을 만큼 소극적 이다.
‘위기잖아’, ‘둘 중 하나만 벌면 됐지!’, ‘남성은 부양책임자이니 해고에도 있어서 우월적 지위를 갖는 거야!’ 라는 벽은 견고했다. 경영상 혹은 경제정책의 잘못으로 대량 해고를 할 수밖에 없을 때 그 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노사정이 이를 분담하는 과정에서 소송으로 번졌을 때 법원은 어떤 법리를 구성할 것인가? 법원의 역할인 최종적 확정과 관계자 구제에서 사법적 독립을 지키고 있는가? 농협판결에서 법원이 구제하고자 한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킨 기업과 정부였다. 법원이 사법적 독립성도 지키지 못하면서, 남성이 생계책임자라는 가부장적 통념에 빠져 성차별적 정리해고의 위법성에 눈을 감아버린다면 그녀는 계속 계약직일 수밖에 없다.

 

 

정강자
태어날 때 세상을(鄭) 편안하게(康) 살아갈 놈(子)이라고 얻은 이름인데 아닌 것 같아 분한 마음이 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줄곧 일상의 재구조화를 꿈꾸며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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