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6월 2015-06-01   1179

[듣자] 상처를 어루만지는 음표 다섯 개

상처를 어루만지는 
음표 다섯 개

글. 이채훈 mbc 해직 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등.

사회 전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좌절이 되풀이되면 우울증이 온다는데, 권력자들의 무책임한 행태와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거의 날마다 목도해야 하니 우울증에 안 걸리면 이상할 지경이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져도 언론은 작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데, 이런 대참사가 다시 일어나도 좋다는 말인가.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난사한 최씨를 가리켜 언론은 ‘이해력 부족’, ‘관심 병사’, ‘우울과 좌절’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최씨처럼 격한 분노와 좌절을 겪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많은 스펙을 쌓아도 이 사회의 잉여인간, 자칭 ‘쓰레기’로 전락하기 십상인 작금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최씨가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피날레 첫 부분, 지혜의 정령인 세 소년은 곧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올 거라고 노래한다. 

세 소년 곧 아침이 밝아 오리라 / 태양이 떠올라 황금빛 길을 비추면 / 미신은 사라지고 지혜로운 자가 승리하리라 / 달콤한 평화여, 우리에게 내려와 / 사람들의 가슴 속에 돌아와 다오.

이 때 여주인공 파미나가 미친 듯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칼을 들고 무대에 나타난다. 그녀는 어머니 밤의 여왕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사랑하는 타미노 왕자는 침묵의 시련을 겪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파미나는 그가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파미나 칼을 들고 그대가 나의 신랑이 되겠군요 / 그대의 도움으로 내 비탄을 끝내리라. 

세 소년 이 무슨 끔찍한 말인가! 이 불쌍한 소녀는 거의 미쳤구나. 

파미나 저는 죽을 거예요 / 제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 분이 진정한 사랑을 이렇게 저버리다니! 어머니가 주신 칼이에요 / 사랑의 고통으로 시들어 가느니 이 날카로운 칼로 죽는 게 낫지 / 어머니, 저는 당신 때문에 고통 받습니다 / 당신의 저주가 저를 따라다녀요. 아, 내 슬픔의 잔은 가득 찼네 / 무심한 왕자님, 안녕! 파미나는 당신 때문에 죽습니다! 

세 소년은 타미노 왕자가 오직 파미나 공주만 사랑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 소식에 파미나는 금세 제정신을 되찾는다.  

파미나 뭐라고? 그 분이 나만을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감정을 숨기고 나를 외면하신 거라고? 그 분은 왜 내게 아무 얘기도 안 하신거지?

세 소년 그건 밝힐 수 없어요 / 하지만 그 분을 보여드릴 수는 있어요 / 그가 온 마음을 당신께 바치고 있다는 걸 알면 놀라실 거예요 /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과 직면하고 계시죠.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곧 아침이 밝아오리니’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bald prangt kathleen battle을 검색하세요. 소프라노 케슬린 배틀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곧 아침이 밝아오리니’, 절망에 빠진 파미나를 세 소년이 위로할 때 다섯 개의 하강하는 음표 소리가 들린다.
이 다섯 음표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동작과 일치한다.

이 다섯 음표는 오페라 <돈조반니>에도 나온다. 막강한 귀족이자 천하의 바람둥이 돈조반니는 결혼식을 앞둔 새신부 체를리나를 유혹한다. 약혼자 마제토가 볼 때 돈조반니는 파렴치한 유혹자일 뿐 아니라 귀족 신분을 이용하여 서민을 짓밟는 악당이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돈조반니를 추적하지만, 지능과 완력이 부족해서 오히려 돈조반니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몸도 상처투성이지만 마음은 더 아프다. 이때 체를리나가 나타나 그를 위로해 준다. 그녀는 마제토를 가슴에 안고 심장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체를리나 내 사랑, 당신이 착하게 군다면 멋진 보답을 해 드릴게요 / 자연 치료방법이랍니다 / 보이진 않아요, 약국에 가도 없어요 / 제가 갖고 다니는 특별한 연고예요 / 이걸 한번 바르시면 다른 약은 필요 없을 거예요 / 제가 그걸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요? / 제 심장이 뛰는 걸 느껴보세요 /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를 만져보세요. 

모차르트 <돈조반니> 중 ‘아시게 될 거예요’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vedrai carino hong을 검색하세요. (2,000년 메트로폴리탄 공연, 소프라노 홍혜경)

<돈조반니>에 나오는 음악답게 매혹적이고 관능이 넘치는 노래다. 체를리나의 가슴에 고동치는 사랑의 맥박이 마제토의 상처를 감쪽같이 치유한다. 반주 부분에서 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가 들리는데, 이 또한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손동작과 일치한다. 기운을 회복한 마제토는 체를리나와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퇴장한다. 

이 많은 상처와 울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혁명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 세상, 한낱 음악으로 거대한 아픔을 달래는 건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차르트의 다섯 음표는 사랑이 있기에 희망도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당장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기쁘게 해 주고, 그 소박한 기쁨을 나누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희망은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타미노 왕자의 사랑을 잃어버린 파미나 공주는 자살을 결심한다. 세 소년이 파미나를 위로할 때 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가 들려온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동작과 일치하는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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