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4월 2016-03-30   517

[읽자] 국가는 왜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나

 

국가는 왜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나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4월 13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치러진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이다. 후보로 나선 이들은 각자의 선의를 주장하고, 국민은 이를 판단하여 투표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자신의 힘을 실현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미완성이기에 앞서 언급한 국민의 힘은 늘 갈등상태다. 특히 한국현대사는 국가의 힘으로 국민을 억누르려는 세력과 이에 굴하지 않고 국민의 힘을 국가에 온전하게 구현하려는 세력이 치열하게 부딪힌 결과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130일이 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는 백남기 씨에게 국가는 아직까지 한마디 해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런 국가의 힘을 국가폭력이라 부른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하다는 듯 가해지는 폭력, 법이라는 정의의 이름으로 부당하게 행해지는 폭력의 역사를 되짚으며, 오늘 국민의 힘이 무엇을 향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_민족주의자와 경찰, 조폭으로 본 한구 근현대사 / 존슨 너새니얼 펄트 지음 / 현실문화

 

폭력을 하청하는 한국 공권력
조폭과 깡패가 역사의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는 때가 있(었)다. <야인시대> 등 활극에 등장하는 해방 전후 정치 깡패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가깝게는 용산사태와 쌍용자동차 파업에서도 경찰과 용역(깡패)이 함께 공권력을 앞세우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폭력을 하청하는 한국 공권력’의 민낯이다.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는 이처럼 범죄에 가까운 폭력을 용인하고 협력하고 조장하고 지시하는 국가폭력을 파헤친다.

저자 존슨 너새니얼 펄트는 정치학 박사로 한국에서 정치인, 경찰, 조폭을 직접 만나 취재를 했다고 한다. 그는 민주화 투쟁을 벌이며 문민 통치를 확고히 만든 사회가 이런 행위를 저지르는 주체, 그러니까 스스로 선출하고 권력을 맡긴 이들에게 왜 책임을 묻지 못하는지 되묻는다. 특히 최근 20~30년에 걸쳐 벌어진 강제 철거와 노동 억압에 활용된 하청 폭력에 주목하는데, 이것이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기반과 맞닿기에 그들의 결집을 막고 침묵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는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뒤에 숨어 폭력의 관리자로서, 공권력을 정당화하고 비국가 행위자 폭력의 부당성을 모호하게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문명사회에서 개인의 사적 폭력이 용인되지 않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사적 폭력은 더욱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 한승헌 지음 / 창비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사법부_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 한홍구 지음 / 돌베개

 

정의를 외면하는 재판과 법을 지배한 자들
(아직은) 정의의 최종 심급으로 여겨지는 사법부는 국가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시국사건이라 불리는 한국현대사의 주요 장면은 재판에서 최종 심판을 받았지만, 그 결과는 모두가 알 듯 뼈아픈 오욕으로 남았다. 지난 50여 년, 정치재판이라 불리는 시국사건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변호사 한승헌은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에서 이런 재판이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짚는다. “정치적 사건의 재판은 역사의 연역과 귀납에 이용되는 중요한 사실史實”로 “그릇된 역사의 싹이 되고 열매가 될 수밖에”없으며, “법관은 ‘압제자의 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압제자’였다는” 비판이다. 사법부가 법치를 외면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법이 아니라 힘으로 심판한다고 믿게 된다면, 그 참혹한 결과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돌아올 게 분명하다. 여운형 암살 사건에서 시작해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을 거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까지 열일곱 개의 사건을 읽다 보면 더이상 다음 사건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든다.

시국사건이라 불리는 일들은 대체로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바깥의 권력에서 시작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사법부의 죄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신작 『사법부』에서 권력을 지키려 법을 고친 정권의 지배자들과 이에 동조했던 법관들을 ‘법비’라 부른다. 이는 법의 비적이란 의미로, 법을 도구로 삼아 비적 행위를 해온 이들을 가리킨다. 법비의 핵심은 중정-안기부다. 한홍구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를 직접 읽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재판 개입 과정을 문서로 확인했다. 유신 시절 사법부부터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까지 법비들이 어떻게 법을 농락하고 지배했는지 읽다 보면 중앙정보부-안기부가 그럼에도 사법부에 예의를 갖췄다(시국 사건과 관련하여 현직 법관을 잡아가거나 고문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의아하고, 그럼에도 적지 않은 법관이 법과 양심에 안기부를 더해 판결을 내렸다는 데서 억울한 피해자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운 심경에 이른다. 

다행히 최근 여러 과거사 사건이 다시 판결을 받았거나 제대로 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홍구는 무죄로 재심을 끝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죄를 밝히는 동시에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사법부가 법비의 오명을 벗고 법의 수호자이자 정의의 최종 심급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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