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4월 2016-03-30   783

[만남] 사월의 노래 – 조혜연 회원

 

사월의 노래

– 조혜연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김경희·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학창시절 억지로 외워야했던 그 많은 숫자들을 떠올려 본다. 1789년 프랑스 혁명, 1894년 갑오개혁, 4.19 혁명, 5.16 쿠데타, 7.4 남북공동성명, 12.12 사태, 6.29 선언….
그러나 애써 외우지 않아도 가슴에 와 깊이 박혀버린 숫자가 있다. 2014년 4월 16일.
“제가 참여연대에 가입한 건 세월호 사건 때문이에요. 가라앉는 배를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던 순간들,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창문 안쪽에서 절규하던 한 아이의 얼굴….”

내가 사랑한 4월은 시인 박목월이 노래한 것처럼, 목련꽃 그늘 아래 앉아 긴 사연의 편지를 쓰는 계절이었다. 구름꽃 피는 언덕에 올라 피리를 불다 문득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도 좋은, 그렇게 빛나는 계절이었다. 4.16이라는 숫자에 점점 다가서는 달력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우리가 영영 가질 수 없게 된 4월에 대해 생각한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어른이 된다는 것

“TV를 통해 가라앉는 배를 속절없이 바라보며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지금도 창문을 두드려대던 그 아이의 얼굴이 생각나면 밥도 잘 못 먹겠고 눈물만 계속 나요.”
그녀는 4살 연하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편이 대학생 때였다. 그 이후로 아이 하나를 낳고 지금까지 쭉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광우병 집회 때는 직접 거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도 단체에 가입할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일컫는 그녀를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내딛게 만든 건 딸아이의 말 한 마디였다.

“엄마, 아이들이 저렇게 죽어가는 데 대체 어른들은 뭐해?” 

 

커다란 바윗돌이 되어 버린 이 말 한 마디를 등에 지고 그녀는 참여연대에 가입했다. 그 이후로 참여연대에서 문자가 오면 어김없이 집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얼마 전부턴 안내데스크 자원 활동도 시작했다. 
“남편은 제가 집에서 살림만 하길 원했어요. 제가 워낙 예민해서 충격적인 걸 보면 잠도 잘 못 자거든요. 그런 사정을 잘 아니까 남편 딴에는 절 보호하려고 했던 거죠. 그러던 남편이 요즘은 제가 참여연대에 간다고 하면 제 손에 용돈을 쥐어 줘요. 고생하는 간사님들하고 같이 간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집회 나갈 땐 잡히지 않게 조심하라고 응원도 해 주고. 지금은 남편이 든든한 지원자죠.” 

 

그녀는 참여연대에 종종 날개(물품 후원)로 떡을 보내기도 한다. 떡을 보내고 싶어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 걱정하고 있으면 군말 없이 떡값을 내어주는 남편. 그녀가 지난해 회원 송년회에서 ‘최다 행사참여상’을 받은 것은 어찌 보면 그녀 혼자만의 노력은 아닌 듯하다. 
“상을 받던 순간엔 왠지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앞으로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내가 더 모범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투쟁의지(?)를 불태우는 그녀에게 그렇게 노력해서 꼭 하나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문제라고 느껴지는 건 ‘여성차별’이에요. 제 남편도 평소엔 잘 도와주고 지지해주면서 가끔 습관처럼 여자가 뭘 안다고 그러냐는 말을 해요. 제 딸한테도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여자들은 애 낳고 집에서 살림이나 해라. 여자들이 나서서 우리나라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랬대요. 또 취직할 때도 성차별이 심하다고 걱정하는 딸을 보면 마음이 무겁죠.”
그 교수님이 말씀 하신, 나라를 망치고 있는 ‘그 여자’가 누군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여자 때문에 열 받는 그의 심정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발언은 폐기되어야 한다. 장구한 인류 역사 내내 세상을 망쳐온 게 ‘남자’라서라기보다, 한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일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리에 설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교수’는 ‘그 여자’와 동급이다.

 

지킬 그리고 하이드

“저는 겁이 많아요. 운전을 할 때도 겁이 나서 운적도 많고요. 지렁이나 벌레도 되게 무서워하고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이 제게 뭐라 하면 대꾸도 못하고 벌벌 떨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곤 하죠. 유럽여행 갔을 때도 집시나 소매치기가 너무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작은 체구의 그녀가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내가 본 것은 그러니까 ‘지킬 박사’ 쯤이 되겠다. 다음은 그녀의 내면에 감추어진 ‘하이드’를 만날 차례. 
“집회 나갈 때 겁나지 않냐고요? 아뇨. 하나도 겁 안 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집회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간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겁 안 났어요. 풀려나오면서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왔죠.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집회 갔다가 집에 오는데 경찰차가 뒤따라오는 거예요. 저한테 어디 갔다 오냐, 혹시 세월호 관련 단체에 있느냐, 직업은 뭐냐 캐물었어요. 제가 가정주부다, 근데 대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막 따졌어요. 제 기세에 놀랐는지 그냥 가더라고요.”

 

그녀의 이런 당당함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제가 참여연대에 나간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네가 빨갱이짓 해서 나중에 딸 취직도 안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는 소리까지 해요. 저희 집 현관문에 붙어있는 것들, 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세월호 리본, 국정교과서 반대 문구 등을 보며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묻는 이들도 많고요.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얘기하죠. 전 참여연대 회원입니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은 때론 대놓고 때론 교묘하게 행해질 차별과 억압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런 강단이, 그런 용기가 그녀에겐 있다. 

 

“참여연대 회원이 된 뒤부턴 스스로 행동도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최다 참여상’을 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이유는 일종의 책임감 내지 죄책감 때문이에요. 참여연대에서 문자를 받으면 ‘내가 가야지, 가서 전단지라도 나눠주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못 가게 되면 하루 종일 미안하고….” 
워낙 자주 오다보니까 혹시라도 내가 가서 걸리적거리는 건 아닌지, 간사들이 ‘저 회원님 또 왔네’ 이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는, 어찌 보면 소심하기 그지없는 그녀. 그러나 그녀에게 무슨 질문을 던지건 거의 모든 답변이 ‘참여연대’로 시작할 만큼, 그녀는 지금 이 새로운 인연과 뜨겁게 연애 중이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사랑해요, 참여연대

“참여연대의 수많은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년에 갔던 회원캠프에요. 숙소도 너무 좋았고 프로그램 또한 훌륭했어요. 여러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분단, 생태, 기후 등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고요. 무엇보다 1박 2일 동안 여러 간사님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최근에 안내데스크 자원활동을 시작한 그녀. 주로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거나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인데 이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익히 알고 있던 나는 예민한 그녀가 왜 하필 이 일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사실 자원활동 하기 전부터 참여연대에 자주 놀러왔었어요. 간사님들에게 빵도 사다주며 안부도 묻고, 또 재정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통인카페에도 자주 들르고. 그러다 안내데스크에 계신 선생님 한분이 아프다는 말을 듣곤 제가 대신 하겠다고 했죠.”

이상한 전화들이 많이 오는 걸로 아는데 힘들진 않으세요?
“이제 3주 됐는데, 이상한 전화도 많고 다짜고짜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요. 한 할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전화를 하시는데 저번에는 북조선이 핵폭탄 쏜다고 하니 감시 잘 하라고 하더니 오늘은 박근혜가 이렇게 잘못 하고 있는데 월급 받고 뭐하는 거냐며 막 욕을 하시더라고요. 또 아깐 정보과 형사가 전화를 해서는 누구를 바꿔달라고 해서 전화거신 선생님은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지금 자기 사찰하는 거냐며 성질을 피우더군요.” 
참말로, 참여연대가 경찰을 사찰할 정도로 한가한 줄 아나보다. 이 정권이 저지른 온갖 잘못들을 바로 잡느라 간사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인데. 정보과 형사님, 좀 알고 얘기합시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으세요?
“아직까지는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데 여유가 생기면 더 늘리고 싶어요. 안내 데스크에서 자원 활동하는 게 늘 집에만 있던 제겐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그녀와 인터뷰를 하며 나 또한 전업주부로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휴식의 공간이자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이 가사노동을 하는 이들에겐 일터이자 공적인 공간이다. 하여 가사노동자들은 집 밖의 공간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그 교수’의 사례에서 보듯 가족 구조에서 어머니의 노동이라고 간주되는 육아와 가사는 문화적으로 비하되고 경제적으로 보상받지 못한다. 말이 나온 김에 단순하고 반복적인 미숙련 노동으로 폄하되는 전업주부의 삶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으나, 늘 그랬듯이 내게 허락된 지면은 많지가 않다. 

 

“앞으로의 계획은, 참여연대에서 좀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나 하나가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서 더불어 같이 잘 사는, 약자가 존중받고 배려 받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지킬과 하이드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는 듯, 때론 한없이 소심하다가 때론 무척 강경하기도 한 그녀. 술은 하나도 못 하지만 노는 것 하난 자신 있는, 임신했을 때 노래대회에 나가 상금을 타오기도 했다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다음 생이 있다면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물었다. 
“싸움도 더 잘하고 태권도 같은 것도 잘 하는 사람이요.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생명의 등불을 밝히며

“요즘 들어 가장 행복한 일은 참여연대에 내가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에요. 그런 소속감이 느껴질 때, 아 나도 이제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그럴 때 참 행복해요.”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나라를 통치하는데 참여하도록 요구했다. 그러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정치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무이기도 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었다.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 참여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자들을 일컬어 ‘이디오타이idiotai’라 불렀다.
– 앤서니 그레일링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참여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자를 일컫는 ‘이디오타이.’ 영어에서 바보를 뜻하는 ‘idiot’라는 단어는 바로 여기서 왔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일을 게을리 할 때 우리의 이름은 바보고 백치이며 멍청이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건 바보라 불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붕괴될,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빛나는 가치들의 상실이다.
박목월이 노래한 4월은 빛나는 꿈의 계절이자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이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아이들의 영정사진 앞에 생명의 등불을 밝혀드는 4월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이름은 ‘바보’가 아니라는 걸, 끝끝내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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