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4월 2016-03-30   1363

[통인] ‘페이스북’이라는  광장 너머를 향하여 – 구현모 청춘씨:발아 운영자

 

‘페이스북’이라는 
광장 너머를 향하여

구현모 청춘씨:발아 운영자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사진. 박영록

 

봄이다. 새로움의 계절이다. 새 출발. 희망. 인왕산과 북악 사이 참여연대 가는 길에도 봄기운이 완연했고, 도시의 나무들도 가지마다 봄의 꽃 폭죽을 터뜨리려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오늘의 통인 인터뷰는 대학생과 함께한다. 봄맞이 인터뷰로 참으로 걸맞지 않은가.

청춘이다. 독립미디어인 ‘청춘씨:발아’ 운영자 구현모 씨는 청춘의 한복판에 있고, 그래서 날카롭고 거침이 없으면서도 내내 흔들거린다. 대학 내 언론인 학보사, 교지 등의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모여 만든 ‘미스핏츠’에 참여해 그 유명한 ‘세월호 악플 반박 동영상’의 얼굴로 등장해 엄청난 조회수를 이끌어낸 장본인이 바로 그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미디어 활동가인 그를 만나 일견 되바라진 콘텐츠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뒤에 응축되어 있던 청춘의 고민들을 들었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미스핏츠, 청춘씨:발아, 쥐픽쳐스 등 젊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활동들을 하고 있는 그룹들이 많다. 
쥐픽쳐스 범근 씨는 미스핏츠 활동할 때 같이 만났으나 지금은 독립 1인 미디어 활동 중이고, 나는 이제 미스핏츠를 간간이 도와주고 청춘씨:발아 활동가로만 일하고 있다. 

 

    쥐픽쳐스 국범근 씨는 ‘최고존엄’이라는 근엄한 직함(?)까지 쓰던데, 현모 씨는 그런 거 없나?
최고존엄, 그거 재미없던데? (웃음) 청춘씨:발아는 그런 직함이 있는 구조는 아니다. 범근 씨는 10대에 코드를 맞춘 활동을 하고, 우린 좀 다르다. 아직 청춘씨:발아는 언론사 등록도 안 돼 있다. 미스핏츠는 되어 있지만. 

 

    청춘씨:발아가 20대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에 맞는 메시지, 그에 맞는 형식을 늘 고민하고 있겠다. 여러 콘텐츠들을 보니 형식 측면에서 꽤나 되바라져 보이던데, 왜 굳이 그런 형식을 고집하는지?
예의바른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별 반응들이 없었다. 치사하게 한겨레도 되바라진 것들만 공유해주고…. (웃음)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구조 개혁을 다룬 프라임사업 같은 경우는 예의를 차려 콘텐츠를 만들었다. 내용을 알리는 게 먼저라고 봤으니까. 그렇지만 이번 ‘총선꿀팁’ 같은 건 예의바르게 해봤자, “어리게 생긴 놈이, 네가 뭘 알아?” 이런 반응만 나올 거 같아, 처음부터 편하게 술 먹으며 하듯 만들었다. 내용마다 자세가 조금씩 달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클릭수 올리기에만 연연하는 인터넷 언론들과 동영상 위주의 되바라진 콘텐츠를 만드는 청춘씨:발아의 차이를 말한다면?
인터넷 언론의 (자극적 기사를 만드는) 그런 기자들은 ‘복사-붙여넣기-자극적인 사진 끼우기’만 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랑은 궤가 다르다. 우리처럼 새로운 것, 게다가 되바라진 콘텐츠를 만들지는 못할 거라고 본다. 중앙

일보나 한겨레 같은 데서 우리처럼 되바라진 걸 만들 수 있을까? 

 

    세월호 댓글러들을 욕설까지 곁들여 응징하는 동영상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특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원래부터 그런 사회성 짙은 뉴스의 가공에 관심을 두었던 건가?
이른바 대학 내 자치언론 중 하나이고 비교적 ‘빨간 매체’인 교지 만드는 일 할 때부터 고민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 아니면 독자가 원하는 얘기를 할까? 그 접점을 추구하더라도 종이 위에 할 수는 없었다. 다들 종이 매체는 안 보고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보니까. 그래서 페이스북 콘텐츠를 만들되, 재미있게 해보자는 거였다. 그때가 2014년 여름이었는데, 한겨레에서 막 궁서체로 돼먹지도 않은 카드뉴스 만들던 초창기였다. 그래서 카드뉴스부터 차근차근 시작했고, 친구들이 많이 모이면서 동영상 제작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동영상 뉴스는 성한용 선임기자가 정치인들 불러다 1시간씩 토크쇼 같은 거 하는, 완전 재미없는 것들뿐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유통하려면 무조건 짧게 하자! 길어도 3분~5분! 그때 세월호 1주기 집회가 있었는데 댓글이 정말 미친 듯 달렸다. 미스핏츠에서 전체 스크립트를 짜고 기획을 맡은 내가 보기에, 이거 재활용하면 백퍼(센트) 된다 싶었다. 조중동 같은 기존 언론과 달리 우리는 일상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기획에 매달릴 수 있었다. 

 

미스핏츠에 모인 세 사람 중 현모 씨는 교지 출신이고, 나머지 두 명은 학보사 편집장 출신이었다. 이들이 미스핏츠로 의기투합한 데는 세 가지 대학언론의 제약이 영향을 미쳤다. 종이언론뿐이라는 점(즉 뉴미디어를 아예 무시하거나 대응 속도가 느렸다는 점). 발행주기에 따라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언론의 주요 기능인 ‘듣기와 들려주기’가 교내에만 국한된다는 점. 그들은 보다 유연하게 학교 밖으로 나가 뉴미디어 환경에서 더 많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려주고 싶었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구현모 씨가 공동 운영하는 청춘씨:발아에서 제작한 영상 콘텐츠들. 

왼쪽은 ‘세월호 악플 반박’ 영상, 오른쪽은 총선 투표에서 유의할 점을 알려주는 ‘총선꿀팁’ 영상이다.

 

    미스핏츠의 출발은 청년 현실에 주목하지 않는 기성언론, 기존 질서에 대한 ‘협박’ 같은 거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도 종이매체와 다른 뉴미디어 매체만의 특성에 주목했던 건가?
글이 가진 힘이 있고, 모든 콘텐츠의 시작은 글이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엄청나게 좋은 기사라도 유통되지 않으면 뭣하나? 시각적인 게 중요하다고 봤고, 그래서 카드뉴스부터 했던 거다. 비주얼의 힘이라는 게 틀림없이 존재한다. 카드뉴스로 보다 많은 대중들을 우리 매체로 유입해 글로 된 콘텐츠로 안내하는 데 나름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퍼뜨리고 싶은 뉴스를 찾기 위해 주로 보는 종이매체, 혹은 글로 된 매체는?
CBS(기독교방송)의 ‘김현정의 뉴스쇼’ 같은 팟캐스트를 많이 들었는데, 친구들에게 “CBS 그거 좋더라” 그러면 “그거 미국 방송사 아냐?” 그랬다. 시사인 같은 주간지도 보고, 외국 언론사 뉴스를 많이 본 편이다. 뉴스레터 죄다 받아서 한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경제 관련 공부도 병행했다. KDI 같은 연구소 뉴스레터에서 나오는 경제변동 수치를 실마리 삼아 카드뉴스를 만들면 재미있는 게 나오고 그랬다. 

 

    모바일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가 뉴스 소비의 신속성일 거다. 
장자연 카드뉴스 때도 그랬고 최경환 ‘정규직 과보호’ 비판 대자보 때도 그랬고 나름 신속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걸 그렇게 할 수는 없고, 팩트 체크가 필요한 건 물론 시간이 걸릴 거다. 건바이건이다(그때 그때 다르다).

 

    학교 밖으로 나가 사회를 향해 더 많은 청년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해보자. “청년들이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훈수들, 어떻게 보나?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같은 책도 이런저런 문제를 통계치로 짚은 다음에 “그런데, 너네 왜 가만있냐?”고 청년들을 몰아세운다. 20대 애들 돈도 없다. 교통비 500원 올리면 “아 자살하고 싶다” 이런 얘기가 막 나온다. 분노할 힘이 없다. 분노는 생존한 다음에나 가능한 선택지다. 그리고 얘들이 분노한 다음에, 가령 녹색당 다 찍었다 치자. 그럼 좋아할까? 1번 말고 2번 찍어야 제대로 분노하는 거라는 소리 아닌가? 아직도 자기들 원하는 대로 훈수 두는 분위기가 많다. 

 

    그럼 그런 훈수들을 넘어서는 청년들의 자기 목소리 내기, 어떻게 가능한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기는 하다. 일베도 나름, 그런 훈수 지겹다는 데서 나온 거고. 독립미디어 활동하는 친구들도 여러 입장에서 그런 비판적 시각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자기 목소리 낼 처지가 못 되는 친구들의 경우는 또 별개다.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크게 들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미스핏츠부터 청춘씨:발아까지 독립미디어 활동하며 그런 들리지 않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겠다는 생각이 컸겠다?
생각이 참 많다. 막상 대신하겠다고 나서면 “네가 뭔데?” 그럴 거다. 자칫 훈계로 들릴까 싶어, 늘 “야 저거 ×새끼 아냐? 죽이자!” (웃음) 이렇게, 쿡쿡 찌르기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청년들의 처지가 이러하다는 진단, 그리고 당신들이 이런 처지를 개선하지 않으면 우린 이렇게 할 거라는 그런 협박이 실제로 가능할까?
애들은 모두 억하심정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 분노에 기반 한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 싶었다. 비수도권 지역 청년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거기 청년 일자리는 더더욱 없다. 그런 점에서는 ‘진실함의 성지’ 대구도 사양도시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비수도권 지역 도시 특유의 분노가 틀림없이 존재한다. 고졸 친구들의 분노도 그렇다. 70%가 대학엘 간다 해도 나머지 고졸 친구들도 많지 않은가. 마이스터고 출신들이 임금 차별에 빡쳐서 다시 대학 가야 되는 실정이니 분노가 없겠는가? 남녀 차별, 비정규직 차별도 마찬가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이 어긋나는 순간 분노는 생겨난다. 그런 지점들이 아주 많다. 

 

참여사회 2016년 4월호 (통권 233호)

 

    왜 매스컴은 그런 차별의 지점들과 소외된 목소리들에 무관심한 걸까?
기존 미디어가 다루는 청년들의 분노는 ‘수도권/남성/4년제(대학)’에 치중해 있다. 그런데 거기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매스컴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닐 거다. 하지만 그들 자체가 수도권 남성에 명문대 출신들이어서 모르는 게 많을 수 있다. 또 출입처를 돌며 트레이닝 받는 과정에서 그 언론사의 조직문화에 스며들다 보니 다른 목소리를 담아내기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을 거다. 또 하나, 사람들이 그런 콘텐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수도권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이 그런 콘텐츠를 접하면 ‘나도, 그럼, 기득권?’이라는 생각에 은근 불편한 심정이 된다. 그러니까 좋아하지 않는 거고, 나도 ‘수도권/남성/4년제’라 내 이해관계에 반하는 혹은 상관없는 얘기를 할 때면 늘 자기반성 같은 걸 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수구 전통이 보기보다 훨씬 뿌리 깊다는 진단 같아 암담한 심정이 든다.
정말 동감한다. 사법고시 대 로스쿨 문제를 보면서도, 난 고시 열망이 신분제 열망 같았다. 고시 패스하면 “와, 나 용 됐다!” 그러는데, 용? 그거 양반 귀족이잖아! 고시는 양반제의 합법화된 버전이고, 신분차별을 내재한다. 7급과 9급,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런 차별이 너무 노골적이다. 비정규직이라면 고용안정성이 낮으니까 그만큼 돈을 더 많이 줘야하는데, 실제로는 돈도 덜 받고 온갖 차별 다 당한다. 한번 그런 신분에 떨어지면 고착된다.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진짜 새로운 신분제 같은 수구의 전통 맞고, 아주 뿌리 깊다 싶다. 

 

    총선이 코앞이다. 그간 잠재되어 있던 이슈들도 불거질 테고, 또 그런 민의를 가장 잘 대변할 정당에 투표하는 정치과정이라야 마땅하다. 이념형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전국적으로 까이던 정동영이 목포에 가서 “여러분, 목포의 아들 정동영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지지도가 확 올랐다는데, 정말 이해 안 된다. 한국에서 특히 강한 이런 지역주의가 계급적 이익에 충실한 투표를 가로막는 걸까?

 

    기존 언론들도 그런 지역주의에 빌붙어 성장한 측면이 크다. 뉴미디어 대안언론 쪽에서 그런 기성체제에 균열을 내는 메시지를 던져야 할 텐데?
총선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백날 떠들어봤자, 국회의원이 법 하나 툭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니까. 청년정치인들 얘기를 보면 너나없이 흙수저라고 얘기하는데, 다 잘라버리고 싶다! (웃음) 자기가 흙수저든 금수저든 그게 중요한가? 흙수저를 위한 활동을 이러저러하게 했다고 말하는 청년정치인들이 한 명도 없다. 흙수저 레토릭만 쓰고 있는 거다. 청년 레토릭도 그렇다. 스물다섯 비정규직과 마흔다섯 비정규직, 이해관계가 다른가? 이젠 똑같다. 정말 할 말 많은데, 아직까지 청년 레토릭이 너무 잘 먹히는 거 같아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 얘기를 함으로써 낙선운동 같은 걸 하고자 한 ‘총선꿀팁’을 꾸준히 만들 거고, ‘공천’이나 ‘컷오프’도 모른다고 하는 청년들 많은데 선거와 총선 제도에 대해 기본적인 걸 알려주는 일도 할 거다. 

 

참여연대에 바라는 건 없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니 “개나 소나 떠드는 그런 이슈파이팅 말고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내놓는 결과물로 전선의 싸움을 뒷받침하는, 선전선동 잘하는 그런 진보 싱크탱크 같은 역할 좀 해주면 안 될까?”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욕설이 난무하는 통인 인터뷰는 처음이지만, 이런 묵직한 주문을 내놓는 인터뷰도 또 처음이다. 
연대라는 게 그런 거다. 나 혼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뜻에 함께해주는 낯선 타인들이 확인되는 순간, 그 연대감이 우리를 움직이고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페이스북 모바일뉴스라는 새로운 거점에서 그런 연대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대학생 독립언론인들의 바람처럼, 사회관계망의 연대의식은 과연 투표장까지 이어질까? 아니면, 기존 세대 간 갈등이나 괴리와 맞물려 그곳도 또 하나의 외딴 섬, 차별받는 (자들이 모여 떠드는) 지역으로 낙인찍히고 말까? 독립미디어들이 펼치는 모바일 진지전의 결과는 사뭇 중차대할 수도 있겠다 싶다. 페이스북이라는 광장 너머, 얼굴을 서로 맞대는 진짜 페이스-투-페이스 광장까지 가는 길 중간에, 청춘씨:발아 같은 자생적 이정표들이 살랑살랑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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