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6월 2016-05-30   364

[역사] 국정화 재검토를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자!

 

국정화 재검토를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자!

 

 

글.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데 관심이 많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등의 저서가 있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19대 국회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탓인지, 현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지난 총선 이후 그 기대감은 대체로 협치라는 말로 대변되고 있다. 그만큼 박근혜 정권과 19대 국회의 소통부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문제였던 것이리라.

정책을 달리하는 여야가 다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싸우지 않고 대국적으로 협의하고 미래를 위해 타협할 부분은 과감하게 결단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일,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보육예산을 확보하는 일,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공동의 역사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역사교육과 같은 일에서 바로 그러한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여소야대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있었지만, 나는 국민들이 바로 그 같은 일에 대한 불통의 책임을 집권여당에게 더 크게 물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가지 일 중에 시급하지 않고, 대화와 소통이 필요치 않은 일이 없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는 미흡하지만 특별조사위원회라는 교두보가 있다. 보육 대란은 예산 재조정의 과정 에서 타협의 길을 찾을 여지가 있다. 그런데 역사교과서 문제는 최소한의 소통 공간조차 없이 갈등 재연의 요소만 가득하다.

 

교과서 논의 위한 사회적 협의 기구 필요
국정교과서는 이미 초고완성 단계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집필자는 고사하고 집필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집필자와 원고가 공개되면 논란은 불가피하다. 참여인사들의 전공이나 성향도 문제가 되겠지만, 공무원 또는 준공무원의 신분 때문에 위협을 느껴 어쩔 수 없이 참여한 사람의 하소연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서술이 발견되어 논란이 일어나면 집필자와 교과서 편찬의 책임을 자임한 정부 중에 누가 책임지고 내용을 수정해야 할 지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90%가 좌파로 몰린 역사연구자들이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의 오류를 수정하는 일에 적극 나설지도 의문이다. 결국 시간에 쫓긴 부실 교과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선생님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예견된 논란을 중재하고 조정할 기구가 없다. 교과서 편찬의 책임을 수행하는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미 유신홍보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던 경력 때문에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식민지배와, 독재 미화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사의 정치도구화에 활용되고 있는 현실은 비판을 넘어 해체 요구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다. 결국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아 독립적으로 역사교육의 장기전망을 수립하고, 다양한 교과서 제작을 지원할 별도의 기구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중립적 기구의 설립이나 사회적 협의기구의 필요성은 이미 논쟁의 와중에 제기된 대안이었다. 다만, 소통의 의지가 없어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국정제는 오래갈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 여소여대 국면에서 지속적인 정쟁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만약 정권이 바뀌면 당장 국정제 찬성론자들이 반대운동을 벌여야 할 판이다. 국정제 채택이 교과부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실현 가능한 고유권한임을 보여줌으로써, 국정교과서 사용을 중단하거나 새로 쓰는 일쯤은 교과부 장관이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 역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국정교과서의 내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쓰는 일이 용납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역사교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협치
정쟁을 최소화하면서 역사교육의 정치도구화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2015년 역사교과서 논쟁을 다시 들여다보면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찬반 양측 모두가 공감을 표시한 인식에서 출발하면 된다. 비록 현실은 국정제로 귀결되어 있지만 역사교육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은 찬반 양측 모두 공감하는 바이다. 내용면에서도 식민지배와 독재 미화는 안 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심지어 대통령도 국정 교과서가 그렇게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이 교과서 내용에 개입하겠다는 위험을 내포한 발언이지만, 교과서 서술 기준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와 인식을 반영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출발은 이 두 가지 합의만으로도 충분하다. 여야와 시민사회,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그 두 가지 원칙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를 두고 머리를 맞대면 된다. 세계의 대부분 국가는 역사논쟁의 경험이 있거나 진행 중이다. 그리고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은 대부분 역사교육의 정치적 독립과, 공동의 역사 가치에 대해 오랜 기간 사회적 협의를 진행했다. 때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행제도를 연장하면서까지 논의를 지속하기도 했다. 우리 상황에 적용하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 질 때까지 현행 교과서와 새로 나올 교과서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하고 학교 현장에 선택권을 주는 방식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국정제만을 고집한다면 결국 힘의 대결이 반복될 것이고 교육현장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할 것이다. 여야는 2002년에 이미 ‘역사교과서 진상조사소위’를 설치 운영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초보적이고 정치적인 기구였지만, 참여범위를 넓히고 장기 전망을 가진다면 그 경험을 밑거름으로 더 나은 사회적 협의기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의 야당이 여당으로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협치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특정 정치세력만을 위한 역사교육이 아닌, 모두를 위한,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역사교육 논의로부터 협치가 시작되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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