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6월 2016-05-30   1433

[만남]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 김지은 회원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김지은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 장소는 참여연대 노래모임 ‘참좋다’의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 현장. 
“나중에 남편에게 저의 어떤 면이 좋았냐고 물었더니 가수 유리상자의 노래를 불러주더군요.”

바로 그 노래, <사랑해도 될까요>를 바탕으로 둘의 만남을 재현해 보자.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첫눈에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사람임을 알아본다. 여자가 다가와 살짝 고개를 숙이던 순간, 남자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부셨고 그렇게 온 마음을 빼앗겼다. 얼마 후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을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척 조심스럽게.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지란지교를 꿈꾸며

 

두 남녀가 처음 만나고 두근거리는 고백의 순간을 거쳐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된 이 달콤한 이야기의 시작점에 ‘참여연대’가 있다. 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그녀의 친구가 있다.
“이미현이라고 참여연대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친구가 있어요. 중학교 때부터 쭉 친하게 지냈는데 공부든 뭐든 다 잘 하는 친구예요. 제가 참여연대의 회원이 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다 그 친구 때문이죠.”

둘 사이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다. 
“부채춤 춘 거요? 하하하. 그게 사실 미현이가 자전거가 갖고 싶다고 해서요. 연대회의 송년회 장기자랑에 자전거가 상품으로 걸렸다고 해서 함께 나갔는데 자전거는 못 타고 재롱상 받았어요. 상품은 녹차였죠, 하하하. 근데 그거 아세요? 부채춤 출 때 입었던 한복, 미현이가 손바느질로 만들어준 거예요. 대학교 졸업 연주회 때는 드레스도 만들어줬어요. 대단하죠? 그날 그 한복을 온통 구겨진 채로 갖고 왔다고 잔소리 좀 들었죠.”

둘은 많은 걸 함께 해왔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졸업 후엔 여행도 많이 다녔다. 어릴 적 꿈을 좇아 시민운동을 시작한 친구를 따라 그녀는 강정마을 행진에도 갔고 참여연대 노래소모임 ‘참좋다’ 활동도 시작했다. 
“작년 8월부터 ‘참좋다’ 활동을 시작했어요. ‘참좋다’의 매력이라, 시크한 거?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던 사람이건 일단 ‘참좋다’에 들어오면 다 똑같아진다고 해야 하나?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옳은 거 옳다고 얘기하고 한 마디로 사람들이 좀 세죠.”

무서운 곳이군요, 하고 농담을 던지자 한참 웃던 그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미현이를 통해서 혹은 참여연대나 ‘참좋다’ 활동을 통해서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많이 알게 되었는데, 이쪽에 있는 분들이 사회의 부정적인 면들을 많이 보고 또 그런 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잖아요.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너무 예의 없게 행동한다든가 스스로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지나친 선민의식을 내세우는 건 좀 보기 불편해요. 비판하는 건 좋은데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강한 것과 예의가 없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니까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던 니체의 말이 입 안에서 곱씹어졌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하긴, 그런 센 단체에 들어와서 센 사람들 하고 어울리고 있는 저 또한 센 사람이죠. ‘참좋다’ 사람들이 간혹 지나치게 직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계속 노래하고 싶어요. 어쨌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이 강하고 올바른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게 작년 8월.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를 만난 게 작년 11월.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게 올 4월. 인생의 대형 이벤트들이 엄청난 속도로 단기간에 치러졌다. 
“결혼준비를 4월부터 했으니 연애기간은 총 5개월 정도? 사귀는 첫날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왔어요. 둘 다 나이가 많았던 터라 남편이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고해서 저도 동의했죠.”

 

남편분의 첫 고백은 뭐였나요?
“제가 오디션을 보러 문을 열고 들어섰던 그 순간부터 좋았데요.”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를 떠올려야 하는 순간은.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서고, 남자는 눈이 부시다….
“남편이 착해서 좋았어요. ‘참좋다’ 공연 준비하면서 쭉 지켜봤는데 화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결혼식 준비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저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음, 연애와 결혼 포함해서 아직 채 1년이 안되신 걸로 압니다만….
“하하하, 이런 얘기를 하기엔 너무 짧게 살았나요?”

제가 연애와 결혼 포함 25년차인데, 신혼이신 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을 아끼겠습니다. 
결혼 발표 후 ‘참좋다’ 멤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귀는 동안 알리지 않았으니 청첩장 내밀었을 때 당연히 배신감을 느꼈겠죠. 우리 둘이 잘 안 어울린다는 반응이 제일 많았고요, 아무리 나이에 밀려 하는 결혼이라지만 좀 더 만나보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조언(?)도 들었어요.” 
청첩장을 돌리는 커플에게 그런 소신발언을 하는 걸 보니 ‘참좋다’ 멤버들은 역시 참여연대 회원다운 기백(?)을 지니신 것 같아요.

결혼 후의 삶이 전과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나요?
“남편이 좀 느려요. 착하긴 한데 답답할 때가 많죠. 아! 하하하, 오래 살다보면 많은 점들이 이렇게 뒤집히겠군요!” 
평소 돈은 아껴도 결코 말을 아끼지 않는 나는 그러나 이 순간 또 한 번 말을 아꼈다.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가라앉는 아이들

 

결혼생활은 채 한 달도 안 된 초보이지만 직장에서만큼은 베테랑인 그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이 올해로 무려 14년째다. 
“교사로서 제 철학은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에요. 교실에서도 권력구조가 있어요. 거기서 멀어지는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고 소외되는데 아직 초등학생들이라 담임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거든요.”

그녀가 말하는 교사의 기본은 잘 가르치는 것. 그러나 지식전달자를 넘어서는 ‘선생님’으로서의 소명 또한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예의바르게 행동하려 애쓰며 아이들을 접하는 매순간 일관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교사가 공평해야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장엔 개인의 노력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이 자꾸 쌓여만 간다. 
“교사생활 초기에 만났던 아이들과 요즘 아이들은 분위가 너무 달라요.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도 많고 왕따도 많고 공격적인 아이, 분노를 참지 못하는 아이 등 문제가 너무 많아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들을 몽땅 다 짊어지고 가장 심하게 아파하고 있는 존재, 아이들. 그러나 정작 어른들은 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장기 결석하는 아이가 한명 있는데 부모님하고 아무리 얘기를 해봐도 답이 없어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오히려 교사가 문제라는 식으로 나오고 교육청에 고발하기도 하고. 또 교사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학부모들도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바닥을 칠 때, 그 위기의 순간마다 그녀의 곁을 지켜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아이 하나가 어느 날 제게 장기 결석하는 친구가 걱정된다면서 자기는 그런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자기가 그 친구 집에 가서 같이 놀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또 소풍 갈 때 그 결석하는 아이가 혹시 온다면 어느 조와 함께 가야할까 물었더니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말썽꾸러기들이 모인 그룹의 아이들이 자신들과 함께 가면 좋겠다고 먼저 나서는 거예요. 그럴 때면 아이들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다시금 단단해지죠.”

지난해까지 그녀는 안산에서 근무했다. 어쩔 수 없이 세월호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온 그녀의 대답엔 ‘세월호’가 없었다. 그 대신 세상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 사회의 바닥을 향해 가라앉고 있는 또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제가 근무한 곳은 안산의 외곽에 있는 학교였어요. 작은 도시의 변두리는 아파트촌과는 분위가 무척 달라요. 돈이 없어서 학원 못가는 아이들도 많고 제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긍지가 더 컸는지도 모르죠.”

이 기울어진 운동장 구석에서 바닥을 향해 계속 가라앉고만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뒤처지는 아이들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정말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해요. 안산의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학원도 못가고 그렇게 계속 경쟁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해요. 또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위해 미술치료사나 놀이치료사들이 학교에 상주했으면 좋겠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부모들을 위한 코칭프로그램도 더 강화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아이가 이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우리들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얼마나 눈이 부셔했는가. 막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두근거렸던 마음과 조심스럽기만 했던 첫 손길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되물어야 한다. 
“그대를 어떻게 사랑해야 될까요?”

 

 

손을 잡는다는 것

 

“어느 핸가 6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 중 한 아이가 몇 년 후 절 찾아왔어요. 소위 학교짱이라 불리던 문제학생이었는데 공부가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이들 졸업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나중에라도 혹시 공부가 하고 싶으면 선생님을 찾아와라. 그때 선생님은 너희들이 내민 손을 꼭 잡을 것이다.’ 그 아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가정환경 때문에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가난해서 학원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아이들, 성적 때문에 비난받고 친구들한테 왕따 당하고, 그 분노를 폭력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 세상이 너무 쉽게 잊어버린 이 아이들을 향해 그녀가 한쪽 손을 내민다. 

 

“제가 생각하는 선생님이란 그런 존재예요. 아이들이 어떤 곤경 속에서 어렵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사람. 그리고 한번 저와 인연을 맺은 아이들에게 전 늘 선생님으로 남을 거예요. 언제든지 아이들이 다시 절 찾아왔을 때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어요. 충분할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주면 아이들은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전 믿습니다.”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대답이 눈에 띄게 길어진다. 앞으로도 그녀는 그 대답 속에서 무수히 긴 시간을 헤맬 것이다. 그 짙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어 그녀와 같이 헤매는 동안 나는, 그녀가 꼭 그러쥐고 있는, 아이들의 작은 손을 또렷이 보았다.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