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6월 2016-05-30   917

[통인] 테러가 벌어졌다! 국가는 어디에 숨으려는가?

테러가 벌어졌다! 
국가는 어디에 숨으려는가?

강찬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

 

글. 박유안
사진. 박영록

 

 

2011년이다. 정체 모를 폐질환으로 죽어가던 어린 생명들을 앗아간 것이 밤마다 엄마 아빠가 정성스레 물을 갈고 넣어주었던 가습기살균제 탓이었음이 최초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지금껏 밝혀진 피해자만 해도 수천 명이고 사망자가 수백 명에 이르는 이 참사는, 작년 말 정부가 피해 접수를 그만둔 뒤로도 높은 관심 속에 피해 접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이하 가피모)도 2011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은 최근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개시된 검찰 수사 덕분이다. 가피모로서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전개과정과 그 피해 규모가 널리 알려졌고, 그에 따라 크게 알려지지 못했던 가피모의 목소리도 언론과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가피모 강찬호 대표의 딸 나래 양도 2011년(당시 5세) 원인불명의 간질성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다 의료진의 온갖 항생제 처방 끝에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으나 폐기능 저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피해자 가족들의 하소연을 귀담아 듣는 일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참사의 재발을 막는 일의 첫 걸음일 터. 강 대표를 만나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하고픈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아 달라 부탁했다.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따님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지금은 학교도 다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앞으로 어찌될지 조마조마하다. 정부에서 하는 모니터링이란 게 일반검진 때 따로 의사를 만나서 10분 정도 폐기능 검사를 하는 정도다. 우리 애는 한 발 먼저 병원에 갔던 것뿐이다. 그 한 발의 차가 생사를 나누는 것일 줄 어찌 알았겠는가. 

 

처음 병원 갈 때, 증세가 어땠나?
겉으로는 그냥 기침감기 같았다. 동네병원에서 비슷한 약 바꿔가며 처방하느라 시간만 보내는 바람에 애는 약물에 노출되고 습도 맞춰주느라 가습기를 더 틀어줬다. 폐가 희한한 게 애가 계속 기침을 하는데도 뛰어놀긴 했다. 그러다 마르기 시작했는데, 확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걸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간호사인 애 엄마가 밤에 애가 잘 때 호흡이 빨라지는 걸 보고, 이건 그냥 흔한 증상이 아니라고 해서 그제야(2011년 6월 15일) 서울대병원엘 데려갔다. 두 번의 겨울 동안 애한테 가습기살균제를 쏘아준 거다.

 

당시 서울대병원에서도 병의 원인을 모른다고 했을 테고….
이런 증상의 환자 10명 중 6명은 예후가 좋지 않았다, 원인 모르니 치료법도 없다고 하더라. 그게 곧 애 죽는다는 얘기 아닌가. 우리도 초비상이 걸렸다. X-ray와 CT 상의 소견에 따라 단계별로 말라리아 치료, 항암치료 등을 거쳐 스테로이드제 처방으로 한 달 입원 끝에 겨우 염증의 확산을 잡았다. 폐는 일회용품이라 망가진 부위는 회복이 안 된다. 딱딱하게 굳어버려 화석화라고 하지 않나. 다른 성한 부위만으로 호흡하며 평생 살아야 하는 거다. 

 

많은 분들은 그런 증상으로 아이를 잃고 유족이 되셨다.
8월 31일에 정부 발표가 나왔고(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9월경에 환경보건시민센터 분들이 불러서 첫 피해자 모임에 갔더니 죄다 아이들을 잃은 유족이었다. 한 시간 정도 다들 울고만 있었다. 난 그래도 아이가 그만큼이라도 버텨준 게 힘이 되어 “우리, 뭐라도 합시다”라고 나설 수 있었다. 

 

피해자모임, 즉 가피모가 그때 생겨난 건가?
그렇다.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가습기살균제의 수거가 이뤄지지 않아 우리는 즉시 수거를 요구했고, 정부가 발표한 “원인 모를 산모의 피해”가 아닌 가피모에 모인 대부분의 영유아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가피모 유족들의 경우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더불어 “내가 그걸 애한테 썼다”라는 죄책감에 동시에 시달렸다. 그런 이중고 탓에 기자들 앞에 떳떳이 얼굴 내밀기를 꺼리는 경우도 많을 정도였다. 초창기 “조용히 소송이나 해야죠”라는 입장이 대다수였다. 그 중 “나가서 뭘 해야 한다”는 몇몇 분이 모여 가피모가 만들어졌고, 환경단체와 손을 잡고 활동을 시작했다. 가피모의 모태가 된 정보공유 카페의 가입자 수는 현재 4,500명 수준이다. 

 

잠시만 2011년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2011년의 역학조사 이전에는 정말 아무 이유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의 사태가 마냥 방치되었던 건가?
그 전에는 학회나 개별 의사들을 통해 이 의문의 질환이 세균성, 감염성은 아니라는 보고가 나오고 있었다. 2007년 무렵 정부의 역학 관련 당사자들 모임에서 이 사태가 논의되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건 청문회 등을 통하지 않으면 그 진위를 알 수 없다. 만약 그때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어 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원인불명의 영유아 사망이 잇따르는데, 보건 당국의 구태의연한 늦장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말씀인가? 
그럴 개연성이 크다. 세월호를 봐라. 떼죽음이 일어났는데도 안 움직이지 않나.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2016. 5. 19.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운동연합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참사와 대규모 피해의 책임을 방조한 정부와 각 정부부처의 법률적·행정적·사회적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참여연대 회원이신데, 참여연대가 도움 드린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처음에 저희들한테 달려와 준 시민단체는 환경보건시민센터라고, 상근자 겨우 2명인 작은 곳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벅찼겠나. 사안이 이렇게 위중하고 방대한데. 모든 시민단체가 연대해 대책기구를 꾸려야 할 정도 아닌가. 그래서 한번은 참여연대 신입회원 모임 자리에 가서 약간 비공식적으로 가피모에 대한 도움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세월호 사태가 일어나고 국면이 바뀌는 속에서, 우리는 다시 그간 해왔듯 소리 소문 없이 활동하는 상태를 이어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옥시를 중심으로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어난 거다. 

 

최근 알려지기 시작한 피해 사례들을 접하면서, 어쩌면 이게 또 다른 ‘빙산의 일각’ 아닌가 싶어서, 엄청난 참사로 밝혀지지 않을까 싶어 섬뜩해질 때가 많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가습기살균제 재난에는 세월호나 삼풍 같은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전국민을 상대로 팔린 제품이 목숨을 끊어놓은 것 아닌가. 일어나서는 안 될 전근대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단일 사업장, 단일 사건이 아니라 전국민을 상대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 사건이라는 게 원래 파헤칠수록 점점 커지는데, 이 사태가 어찌 흘러갈지 생각하면 정말 섬찟하다. 이런 사건을 그냥 묻어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지난 5년을 무관심하게 지나온 게 사실이다. 피해자들이 열심히 싸우고 환경단체가 애를 썼지만 사회적으로는 무관심했다. 올해 들어 이 사건이 “떴다”고 하지만, 이게 우리가 띄운 게 아니다. 검찰이 띄운 거다. 

 

검찰이 왜 갑자기?
알 수 없다. 지난 4년 내내 수사관 1명, 검사 1명이 진행하던 사건을 갑자기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달려들었다. 검찰 수사가 언론에 전해지면서 사태가 알려졌다. 그러고 보니 거기 피해자단체가 싸우고 있었고, 그 옆에 자그만 환경단체가 하나 붙어 있었던 것도 알려졌다. 국회도 정치적 상황에 밀려 뒷짐지고 있었고 참여연대도 큰 힘을 못 싣는 가운데, 검찰 전담팀 덕분에 커다란 정치적 사안으로 다시 재조명되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그렇다고 검찰의 행보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권력형 비리의 고리를 푸는 일, 정부나 국회 등 여러 기구들이 잘 협력하여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일 등 참여연대가 맡을 수 있는 몫이 분명히 있다. 내일 관련부처 공무원 감사 청구를 참여연대와 가피모가 함께하는데, 그런 게 좋은 사례 아니겠나. 그전에는 감사원에 가서 피해 접수 계속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조차도 우리한텐 버거운 일이었다. 정부 업무에 대한 참여연대의 꾸준한 모니터링 내공 덕분에 이번 감사 청구도 일사천리로 해결될 수 있었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다. 큰 사회적 논란임에 틀림없는 이번 가습기 사태에 참여연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 같다.

 

전국민을 향한 독극물 테러 같은 건데, 왜 정부가 나서지 않고 개별 피해자들이 소송을 진행했던 건가?
처음부터 골치 아픈 사태란 걸 알았던 것 아닐까? 그래서 정부는 역학조사 발표 이후 손을 떼버린다. 사람 엄청 죽었고, 일어난 지 한참 지났고, 산업자원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세 개 부처나 관련되어 있고, 여러 모로 골치 아파 보이니까 즉시 핑퐁게임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처음부터 이번 재난을 교통사고 취급했다. 당사자들이 소송을 통해 피해 보상 받으라며, 자기들은 손을 털어버린 거다. 아까 말했듯 이중고를 겪는 피해자들이 경제적 피해와 가정 파탄 등의 후속타를 연신 얻어맞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기 비용 대서 소송하라니? 100% 이기는 소송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규제의 공백’이 있는 사건이었고, 기업은 정부 허가 없이 불법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김앤장을 고용한 옥시랑 개별적으로 싸운다? 쫄 수밖에 없다. 위축된 상황에서 소송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보니 피해자들이 김앤장에게 당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가피모를 통한 집단공동소송을 하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엊그제 민변과 함께 1차 원고 436명을 모집해 소송을 시작했다. 2차 소송도 진행할 예정이지만, 법적으로 쟁점이 많고 즉각 대응을 못해 가뜩이나 많던 사각지대가 더 벌어져 손쓰기 어려운 지경이다. 4~5년의 허송세월 탓에 말이다. 그 기간 동안 약자인 피해자가 자기 돈을 들여 자기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갈 데까지 간 나라의 모습’이 민낯으로 드러났다. 

 

참여사회 2016년 6월호(통권 235호)

 

국가가 제대로 일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나?
이 사건은 국가적 재난이다. 국가적으로 벌어진 사회적 재난! 국가가 선제 조치를 취해서 피해구제를 해주고, 인과관계 규명을 통해 사후에 기업에게 구상권 청구를 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구상권 청구가 명료하지 않은 부분은 국회에서 여러 차례 토론해 사회적 기준을 만들면 된다. 나머지 경우, 즉 피해는 명백한데 구제방법이 없는 경우엔 국가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 이런 재난에 당면해 이런 체계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그런 노력이 없었다. 화학물질 담당하는 환경부장관이 아직도 교통사고로 취급하니, 이런 사태로부터 대체 뭘 배울 수 있겠나. 

 

20대 국회에 요청한 가피모의 ‘피해대책 및 재발방지 촉구’ 안을 보니, 윤성규 환경부 장관 해임 건의와 더불어 정부의 사과, 특별대책기구의 대통령 직속 설치 등을 요구하더라. 
2011년 당시 국무총리실에 대책기구가 마련되었고, 우리는 피해구제 및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을 기대했다. 그런데 고작 한 게 살균제 수거와 의약외품 지정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국무총리실에 만들어 무슨 실효가 있겠나.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해 제대로 파헤치고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하고, 새 국회에서 그런 결의를 해주길 바란다. 

 

정부뿐만 아니라 검찰 수사, 기업에 대해서도 요구하시는 게 있으면 회원들에게 일러달라.
일단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 게 중요하다. 4년의 공백을 잘 메워야 한다. 4년간 증거 인멸 다 했을 테니 더 속속들이 파헤쳐내야 한다. 관련 기업은 민사소송 과정을 통해 김앤장을 내세워 합의 보게 만들었는데, 아마 틀림없이 그간 그런 노력 많이 했으니 정상참작 해달라고 요구할 거다. 그러니 더 철저하게 수사해 모든 가해기업에게 정확한 책임을 물어달라는 거다. 하나하나 사망사건이다. 과실치사 시효가 7년이지만, 유해성을 알고도 제조했다는 고의성이 인정되는 살인사건이 되면 시효가 없어진다. 철저하게 수사하면 그렇게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 
검찰이 여전히 손 놓고 있는 건 정부의 몫이다. 이 제품이 개발되고 유해성 심사를 거쳐 17년 동안 유통되는 동안 정부의 책임은 과연 없을까? 왜 행정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안 한다는 걸까? 곧 이에 대해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을 접수하려고 민변과 준비 중이다. 아까 얘기했듯 참여연대와 함께 진행한 감사 청구에서도 떠넘기기 등 행정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캐물을 거다. 
우리는 일차적 책임과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본다. 이런 가해 제품을 허가해놓고 가해 기업을 방치한 점, 자국 국민이 당한 이런 재난적 사고에 대해 피해 구제를 해야 하는 데 이에 나서지 않은 점, 왜 초기에 적극 대처를 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는지 등등 의혹투성이이다. 오히려 여당을 통해 법 못 만들게 한다든지, 피해자 분열 조장이라든지, 피해접수 중단이라든지, 정부가 나서서 방해하지 않았나. 이쯤 되면 우리 세금으로 만든 이 정부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망연자실해진다. 

 

 

인터뷰 도중, 강 대표는 해임을 요청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억울해 하는 이유를 한참 설명했다. 듣는 내내 서글펐다. 왜 황당한 전근대적 피해를 입은 국민이 공무원의 처지까지 헤아려야 하나? 뭔가 바뀐 거 아닌가? 국가가 나서서 먼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정녕 이 나라에선 틀린 건가? 
행정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독극물 테러.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한 줄 요약하면 딱 그렇다. 그런 테러가 백주대낮에 버젓이 행해졌다는 사실에 경악한 우리들 사이에서 지금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들불 번지듯 번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테러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하지만 테러 앞에 굴복할 수는 없다. 공포를 딛고 분노로 힘을 모아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조차 마음놓고 할 수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참팟 36회 : 강찬호씨를 모시고 현재 피해자들의 상황, 10여년간 규제없이 제품이 판매될 수 있었던 상황 등에 대해 파헤쳐봤습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963302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dm8F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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