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2월 2016-11-30   745

[듣자] 박근혜와 투란도트 공주

 

박근혜와 투란도트 공주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이 경악하고 분노하는 지금,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떠오른다. 노래 제목으로 말장난하려는 생각은 없다. 너무나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한몸이기 때문에 꼬리 자르기가 불가능하다. 박근혜가 악착같이 버티는 것은, 나라가 거덜 나든 말든 원래 신경 안 쓰는 사람이며 국민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정관계, 재벌, 검찰, 언론,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가 얽힌 부패의 카르텔이 드러났다. 이 모든 영역에서 한 치도 남김없이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투명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리 모두의 과제로 떠올랐다. 

 

얼음처럼 차가운 투란도트 공주는 남성에 대한 증오에 빠져, 자기에게 청혼하는 왕자들에게 세 개의 수수께끼를 내고, 다 풀면 결혼에 응하겠지만 하나라도 못 맞추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수많은 왕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칼라프 왕자가 마침내 세 개의 수수께끼를 모두 풀었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새벽이 오면 유령처럼 사라지지만 밤이 되면 모든 이의 가슴에서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희망’이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렬한 기운으로, 그대의 심장이 멎으면 차가워지지만 무엇인가 간절히 원하면 다시 활활 타오른다. 이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뜨거운 피’다. 마지막 수수께끼는 “타오르는 불과 같지만, 그대를 얼어붙게 하는 얼음이기도 하다. 그대는 이것의 노예가 되겠지만 반대로 이것이 그대의 노예가 되면 그대는 왕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투란도트 공주’다. 

 

칼라프 왕자가 수수께끼를 다 풀자 투란도트 공주는 당황하여 궁궐 깊은 곳, 자기 방에 숨어 버린다. 약속을 지킬 수도 없고 안 지킬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가 된 것이다.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의 진실한 사랑을 원했기 때문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날이 밝을 때까지 자기 이름을 알아맞히면 목숨을 내주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자기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 투란토트 공주는 침묵하며 혼자 방에 있고, 성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이 순간에 칼라프 왕자가 부르는 노래다. “아무도 잠들 수 없습니다. 공주님,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그 차가운 방에서 보십시오. 사랑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저 별들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로 들어보자.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Pavarotti nessun dorma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RdTBml4oOZ8

 

흔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고 번역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잠들 수 없다’란 뜻이다. 이 모든 패륜 상황의 몸통인 박근혜는 ‘잠이 보약’이라 했지만, 정작 아무 죄 없는 국민들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이다. 노래 끝부분의 “빈체로vincero~”란 가사가 뚜렷이 들린다. 이탈리아말로 “승리하리라”는 뜻이다. “이 밤이 지나고 별빛도 사라져 아침이 밝아오면, 마침내 내 사랑, 승리하리라!” 

 

날이 밝자 투란도트 공주가 광장에 나타난다. 칼라프 왕자의 수수께끼에 대한 그녀의 답은? ‘칼라프’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함으로써 칼라프의 목숨을 구했고, 오히려 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참극으로 끝날 뻔한 위기가 해피엔딩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박근혜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국민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청와대가 ‘대응책’을 내놓을 때마다 박근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형국이다. 어차피 퇴진해야 하는데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무리수를 두지 않을까,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를 사람이니 최악의 비극을 자초한 뒤에야 물러나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이번 사태에서 떠오르는 오페라가 하나 더 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에서 늘 ‘화해와 용서’를 노래했지만 <돈 조반니>에서 악행을 끝까지 뉘우치지 않은 돈 조반니는 결국 처절하게 심판받는다. 돈 조반니는 귀족 돈나 안나를 겁탈하던 중 그녀의 비명 소리를 듣고 나타난 아버지 기사장을 살해한다. 자기가 버린 돈나 엘비라와 마주치자 다양한 방법으로 그녀를 속여서 위기를 모면한다. 심지어 그는 시골 결혼식장에서 새 신부 체를리나를 유혹하기도 한다. 돈 조반니를 정의의 법정에 세우겠다고 다짐하는 돈 오타비오(돈나 안나의 약혼자)의 아리아를 들어보자.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 돈 조반니를 심판한 초자연적인 힘은 바로 ‘민심’ 아니었을까. 

모차르트 <돈 조반니> 중 돈오타비오의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안나를 위하여’ (테너 안톤 데르모타)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Dermota Il mio tesoro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vf11YleTETs

그는 선남선녀(돈나 안나와 약혼자 돈오타비오, 체를리나와 신랑 마제토, 그리고 돈나 엘비라)에게 쫓기지만 용케 속여서 탈출한다. 그를 심판하는 것은 선남선녀가 아니라 초자연적 존재인 기사장의 대리석상이다. 자기의 영혼을 염려하는 엘비라를 무참히 모욕한 돈 조반니는 “참회하라”는 기사장의 요구를 거절한 뒤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 죽는다. 

모차르트 <돈 조반니> 중 ‘대리석상의 심판’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Commendatore Don Giovanni를 검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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