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2월 2016-11-30   828

[여성] 여러분,  자, 이제 댄스타임

 

여러분, 
자, 이제 댄스타임

 

 

글. 손희정
<여/성이론>, <문화/과학> 편집위원.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고,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다.

 

 

 

지난 10월,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는 폴란드의 낙태죄 반대 집회인 ‘검은 시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지만, 임신중지(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반발한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나의 자궁, 나의 것”, “내 자궁에서 손 떼, 국가는 나대지 마라” 등의 피켓을 들었다. 그러면서 임신중지는 또 다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이 시위를 보면서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2013)을 떠올렸다.

영화는 흥겨운 뽕짝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시작된다. 중년의 여성들이 낙태에 대해 수다를 떠는 중이다. 나는 네 번 했고, 너는 두 번 했고, 건넛집 00이는 심지어 열댓 번도 했다는 이야기. ‘낙태 버스’가 산아제한 정책의 일환으로 운영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국가가 경제발전을 위해 제도적 차원에서 추진했던 일인 만큼 죄책감의 자리는 크지 않다. 곧이어 흔들리는 카메라는 세종로 사거리를 비추고, 20대 여성의 고백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낙태가 “무덤까지 가져가야만 하는 비밀”이 되어버린 시대.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토록 불안하게 흔들린다.

 

참여사회 2016년 12월호 (통권 241호)

 

태아의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
다큐가 효과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는 것처럼 ‘낙태’란 역사적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이해되고 경험되어온 유동적인 관념이다. 이때 그 유동성에 방향을 제시한 것은 가부장제와 만난 자본주의 국가의 시장논리였다. 즉, 국가의 노동력 및 소비력 관리가 여성의 육체를 경유해 시전되었던 것이다. 한때는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애국’이었던 낙태가 ‘살인행위’가 된 것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공포가 국민들에게 주입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임신중지를 당한 태아의 기억분자가 살아남아 여주인공 심은하를 숙주로 삼는다는 콘셉트의 납량특집 드라마 <M>(1994)은 낙태에 대한 죄책감이 여성들에게 강요되기 시작하던 때의 대중문화였다. 이와 함께 태아에게도 감정과 생명이 있다는 과학담론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통해 국민을 지배하는 국가의 ‘정동 정치’는 임신중지의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셈이다.

이런 강요된 죄책감은 특히 ‘태아의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왜곡된 프레임 속에서 강화된다.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의 대결에서 ‘결정’이 ‘생명’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생명은 분리되어 있는가?”를 질문함으로써 ‘생명’의 의미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태아의 생명은 임신한 여성과의 관계 안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자궁은 신체의 일부이고 다른 기관과 혈관 및 신경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신체를 연속으로 보지 않고 파편화된 공간으로 이해하는 근대적 과학은 여성을 ‘자궁 캐리어’로 치부해온 가부장제의 사고방식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자궁과 여성을, 그리하여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생명을 간단하게 분리해버린 것이다. 태아는 독립적인 생명이 아니라 여성 생명의 일부다. 그러므로 임신중지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명 전체에 대한 정당한 고려를 바탕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임신중지의 맥락과 관계 살펴야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임신중지를 ‘선택과 결정’이라는 자율성의 문제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임신중지를 구성하는 맥락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파트너와의 관계, 섹스와 피임, 그리고 임신 과정에서 여성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결정할 수 없으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강요당하는가? 폭력의 상황에서는 또 어떤가? 계획되지 않은 출산 이후 여성과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려해야 할 질문은 많다.

이처럼 임신중지는 시술이 행해지는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정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성별 위계와 성을 둘러싼 편견, 이중 잣대, 그리고 허술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다. “진짜 문제는 낙태죄”라는 피켓의 문구에는 이런 복잡한 맥락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댄스타임>은 이 짧은 글에서 다 다루지 못한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두루 이야기한다. 제목 “자, 이제 댄스타임”은 영화가 끝나고서야 화면에 뜨는데, 이에 대해 조세영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나눈 다음에야 비로소 ‘댄스타임’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언제쯤이나 “댄스타임!”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를 발전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  <자, 이제 댄스타임> 공동체 상영은 배급사 시네마 달(02-337-2135)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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