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2월 2016-11-30   736

[역사] 박근혜 넘어서기는 박정희 넘어서기

 

박근혜 넘어서기는
박정희 넘어서기

 

 

글.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데 관심이 많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 주말에 광화문 주변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쉽게 1987년 6월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중·고생들도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역사의 힘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지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런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래 15~30년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농민운동 25년 후인 1919년에 3·1운동, 그 26년 후엔 해방과 통일정부 수립운동, 다시 15년 후인 1960년에는 4·19혁명, 또 20년, 27년 후엔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30년을 1년 남겨둔 2016년 이제껏 보지 못한 거대한 시민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사는 이처럼 거대한 민중운동, 시민운동에 의해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지배세력은 개량적 정치개혁으로 민중의 요구를 왜곡하거나, 더 큰 무력으로 억눌러 왔다. 지금 우리는 그 같은 개량의 정치를 반복할 것인지 결별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있다.

 

배신감에 분노하는 사람들
불과 5년 전 투표자 중 52% 달하는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런데 이제는 4%~10% 정도의 사람들만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사람들은 차를 마시면서도 박근혜와 최순실을 욕한다. 입에 담기 민망하거나 험한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간다. 도대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온갖 부정과 이해 불가한 행위들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연민의 정을 버리지 못하고 불쌍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원래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경유착, 그리고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정치사찰과 불통으로 대표되는 반민주적 정치행위에 분노한다. 이것들은 이미 대통령 선거 때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국가정보원을 통한 공작정치, 친기업·반노동자적인 노동입법, 민중을 개돼지로 폄하하는 논리와 맞닿아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 등에서 이미 예고되거나 드러났던 요인들이다.

그런데 정작 더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힌 것도 모자라 그 교주와 딸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점을 보고,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이사 갈 때는 길일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민속화 된 미신에 잠시 기대어 고단한 현실을 잊을 뿐이다. 그것이 국가의 운영이나 운명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아마도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를 원망해.”는 말일 것이다. 부정입학, 부정취업 등 끝없이 흘러나오는 권력과 부에 의한 부정한 행위를 보며 사람들은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빠 자식들에게 과외 한 번 제대로 못시켜주었던 부모들은 20억을 오르내리는 말 값과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주고받는 재벌과 사이비 권력에 분노한다. 가난하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며 책을 잡고 있던 학생들, 공무원이 되려고 고시원에 쪼그리고 있던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부와 권력의 세습구조로부터 기인한다는 자각에 이른다. 사라진 줄 알았던 계급사회의 망령이 되살아 난 듯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를 위한 시스템에 반대한 미국의 시위를 강 건너 불구경처럼 여기던 사람들, 우리 사회는 아직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다.

박근혜를 찍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우리를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믿는다. 그 신화의 한 가운데 청렴결백한 권력과 자수성가의 재벌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청렴결백한 지도자가 있어야 자신에게도 성공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신화가 깨지고 있다. 그 신화의 자리를 배신감이 파고들면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참여사회 2016년 12월호 (통권 241호)

 

박근혜 게이트의 역사적 몸통은 박정희 정권
그런데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고맙다. 그녀는 정경유착, 공작정치, 노동탄압, 불통과 독재, 비선정치, 드러나지 않는 부정축재 의혹까지 어느 것 하나 박정희 정권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과 권력의 결탁은 이미 전경련 창립과 동시에 이병철과 박정희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지식인들을 억압하기 위해 작성한 블랙리스트는 이미 1970년대 노동운동 탄압을 위해 박정희 정권이 만들기 시작한 것에서 진화한 것이다. 

최태민이 육영재단, 영남대 비리 등이 박정희, 박근혜와 얽히고 섥혀 있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최근에는 박정희 사후 뭉칫돈이 최태민에게 흘러들어갔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근 문제가 된 두 재단이 퇴임 후를 대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은 영남대가 박정희의 퇴임 대비용이 아니었냐는 의심과 판박이다. 검정 역사 교과서를 유신체제와 함께 국정으로 만들고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은 지금 그 딸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지금의 총체적 난국은 어느 것 하나 박정희 정권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여성의 사생활’로 은폐하려는 ‘7시간의 비밀’이나 ‘비아그라’ 소동 정도가 아닐까. 물론 이것도 박정희의 여성편력 논란과 닮은 꼴이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최순실의 몸통이 박근혜라는 사실을 넘어, 그 역사적 몸통이 박정희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고 있다. 사람하나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다. 썩은 어제와 결별하지 못한다면 다시 개량의 정치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 썩은 어제와 어떻게 결별할지, 새로운 권력에 시민의 목소리, 민중의 정치적 욕구를 어떻게 반영할 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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