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골목에서 인생길을 바라보네

 

골목에서 인생길을 바라보네

 

 

글. 정지인 여행카페 운영자

전직 참여연대 간사. 지금은 여행카페 운영자가 되었다. 매이지 않을 만큼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자유가 많은 삶을 지향한다.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여행을 꿈꾼다. 

 

 

주말마다 광화문을 헤매느라 연말이 더 정신없었다. 가는 해를 마무리하거나 새해를 계획하는 차분함을 갖기도 벅찼다. 할 일은 많고 뭔가 정리되지 않는 이 때 헝클어진 마음을 다독이는 하나의 방법으로 겨울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새해를 시작하는 겨울에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짧은 여유를 주는 것으로도 답답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미지의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 그리고 청량한 한줄기 바람이 나를 위로해 줄지 모른다.

겨울여행은 다소 황량하고 스산하다. 대신에 잎 떨군 겨울나무처럼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 색다른 감흥이 다가올 수도 있다. 흰 눈이라도 펄펄 날리면 덤까지 얻는 기분일 것이다. 혼자하는 여행은 대중교통이 제격이다. 자가운전은 편하지만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다.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구경하며 머리를 잠시 비워볼 수 있는 여유, 옆자리에 앉게 될 타인과의 낯선 긴장도 여행의 일부분으로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골목 위로 해가 뜨네/ 담장 위로 해가 지네/ 담장 위로 달이 뜨네/ 골목으로 달이 지네/ 골목에서 사람을 보네/ 골목에서 삶을 보네/ (중략) 골목에서 큰길을 보네/ 그 골목에서 인생길을 바라보네                  

– 오정미 / 대구의 골목길 중에서

 

역사가 흐르고, 사람들 살아가는 흔적이 묻어나고, 삶의 문화가 녹아있는 골목길 여행은 그만의 멋이 있다. 그런데 골목길과 함께 골목길 문화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골목길이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근대로의 시간여행, 대구근대골목 
대구근대골목2

대구에는 골목길이 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공구골목, 오토바이골목, 약전골목, 진골목, 야시골목 등 흥미로운 골목이 이어진다. 그중에서 근현대사의 역사적 흔적이 잘 남겨진 근대골목 구간은 길 안내도 잘 돼 있고 볼거리도 쏠쏠해 혼자 걷기 괜찮다. 

대구 근대골목은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져서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준다. 100년 전 대구 동산동 일대에 정착한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대문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골목길은 100년 넘은 동산병원 선교사주택, 학생들이 3.1만세운동에 참여하러 가던 계단,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던 계산성당, 현제명이 쉬어가던 현제명 나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진다. 박태준 선생의 추억이 어린 청라언덕의 시비 앞에서 가곡을 읊조려 볼 수도 있다. 두어 시간 슬슬 둘러보기 좋은 코스다.

다리가 아플 때쯤 100년 넘은 한옥식당에 들러 대파 가득 들어간 육개장을 먹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대구 골목투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대구 중구청 홈페이지에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다양한 코스별로 해설투어도 가능하다. 

 

사람 사는 훈훈함, 양림동 골목
양림동골목2

예향의 도시, 광주에도 개성 넘치는 골목이 있다. 광주 남구의 양림동 골목이다. 이곳 역시 외국 선교사가 처음 자리를 잡고 학교와 병원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근래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양림동으로 속속 모여들면서 그들의 아지트와 갤러리가 늘어 아트투어의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

근현대사의 굴곡이 오롯이 담겨 있는 선교사 주택과 최초의 여학교, 신학교를 돌아보고 나면 골목은 일제강점기 반공호 공간인 뒹굴동굴로 이어진다. 반공호의 용도가 폐기된 후에 마을사람들은 그 안에 김치를 보관하기도 했다. 조선말기 전통가옥, 양림동이 고향인 시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시비, 그의 호를 딴 다형다방도 눈에 띈다. 걷는 내내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작은 갤러리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전시작품도 수준 이상이다. 

양림동 근대골목이 끝나는 부분에 펭귄마을이 나온다. 지역주민과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꾸민 정크아트작품과 오래된 생활용품들로 골목을 채운 작은 마을이다.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확 느껴진다. 양림동 골목길은 100여 년 넘는 긴 역사의 흔적만큼이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더해져 더욱 따뜻하고 훈훈하게 다가온다. 양림동 골목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광주 남구관광청에서 얻을 수 있다.  시간이 맞으면 해설투어도 가능하다.

 

최북단 섬, 교동도 대룡시장
교동도1

인천 교동도 대룡시장 골목길은 겨울바다의 운치까지 더할 수 있는 곳이다. 강화도와 연육교가 놓이면서 출입이 쉬워진 교동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황해도와 직선거리가 불과 2.5km밖에 안 되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는 최북단 섬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외부의 발길도 더디고 그만큼 발전도 더뎠던 곳이다. 그래서 황해도 실향민이 정착해 만들어진 교동도 대룡시장은 1970년대에 시계가 멈춰 있다. 지금은 드라마세트장에나 가야 볼법한 옛날 약국 간판과 잡화가게들이 작은 섬마을에 펼쳐져 있다. 

시장골목을 벗어나면 섬 곳곳의 포구를 잇는 바닷가로 이어진다. 회색빛 갯벌과 저 멀리 아스라한 강화도의 풍경을 친구삼아 혼자 걷기 좋은 길이지만 겨울에는 바닷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바닷길은 산으로도 이어진다. 저 멀리 북한 땅을 조망하는 화개산 정상까지 다녀올 수도 있고, 야트막한 숲길을 가볍게 걸어 마을로 넘어갈 수도 있다. 교통편은 서울에서 갈 경우 먼저 버스로 강화도에 도착한 뒤, 교동도 들어가는 시내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교동도 도보코스는 강화나들길 정보에서 도움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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