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5월 2017-05-02   1933

[여성] 콘돔은 섹시하다

 

콘돔은 섹시하다

 

 

글. 손희정 문화평론가
<여/성이론>, <문화/과학> 편집위원.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고,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다.

요즘 방송에 출연 중이다. ‘본격 젠더 토크쇼’를 표방한 EBS의 <까칠남녀>. 2회의 주제는 ‘피임’이었다. 그런데 녹화를 준비하면서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콘돔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10대들이 피임을 위해 콘돔 대신 랩이나 비닐봉지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성교육이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준다.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문화는 성을 은밀하게 만듦으로써 공적 장에서 지워버린다. ‘랩콘돔’은 하나의 예일 뿐, 제대로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이 위험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체외사정이 피임법이 될 수 없는 이유
그러나 성에 대한 무지는 1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남성 출연자는 “피임법으로 체외사정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40대 남성에게 체외사정이 왜 피임법이 아닌지 설명해야 한다니.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한 분이 한때는 한국의 대표적인 에로영화 감독이었다는 사실 역시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성에 대한 쓸모 있는 지식은 여성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음에도, 그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은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체외사정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절대로 피임법이 될 수 없다. 첫째, 성교 시 남성에게도 여성의 애액처럼 쿠퍼액이라는 윤활유가 몸에서 나온다. 여기에 정자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둘째, 외음부에 묻은 정액의 정자가 여성 질 내부로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셋째, 일부 남성들의 ‘자기 확신’과 달리, 사정은 그렇게 정확하게 조절되지 않는다. 특히 음주 후에는 절대로 체외사정에 확신을 가지면 안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피임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다. 피임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성병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 임신을 피하는 방법에는 경구피임약, 피임주사, 피하삽입형 피임기구, 루프 등이 있지만 성병 예방은 오직 콘돔으로만 가능하다. 특히 제대로 씻지 않은 남성의 성기는 질염 등을 유발하여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여성용 콘돔이라고 할 수 있는 페미돔도 있으나, 이는 한국에서는 시판되고 있지 않을 뿐더러 가격이 비싸고, 사용 방법 역시 매우 번거롭다.

남성 출연자들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성감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둘째는 분위기가 깨진다는 것이었다. 초박형 콘돔의 시대에 성감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위기’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많은 여성들이 사로잡혀 있는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분위기를 깰까봐 안된다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분위기는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섹스 판타지에서 벗어나 적절한 피임해야
우리는 섹스를 둘러싼 판타지에 대해서 질문을 해봐야 한다. 불같이 타오르는 욕정, 격하게 진행되는 전희,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열정적’인 삽입, 정신을 다 날려버리는(mind-blowing) 오르가즘. 마치 영화가 그렇게 하듯이, 우리는 섹스에 너무 많은 판타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잘 씻고 준비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꽤 자극적인 전희다. 때로는 꼭 오르가즘에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섹스가 되기도 한다. 섹스가 일종의 ‘몸의 대화’라고 한다면 그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막 진행되는 와중에 갑자기 멈추고 콘돔 끼는 건 안 섹시하잖아요”라는 남성 출연자의 말에 다른 여성 출연자가 대답했다. “왜요, 콘돔 끼는 것도 얼마든지 섹시할 수 있죠.”

콘돔만이 가장 적절한 피임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피임법’이란 없다. 피임률 100%인 피임법은 없을 뿐더러 각각이 부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내 몸, 그리고 ‘우리’의 몸에 가장 잘 맞는지 함께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권장하는 피임법은 ‘듀얼 프로텍션(Dual Protection, 상호·이중 피임)’, 즉 관계에 동참하는 두 사람이 모두 각자 몸에 맞는 피임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이르면 2020년 안에 남성용 경구피임약이 시판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는 콘돔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자기 몸에 대한 보호,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리고 관계에 대한 책임이라는 의미에서 콘돔 사용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 18세에서 69세에 이르는 한국 남성의 콘돔 사용률이 11.5%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 좀 부끄러운 일이다.

콘돔이 번거롭고 분위기를 깨며 성감을 저해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훨씬 더 안전하고 그래서 더 즐거운 섹스가 시작될 것이다. 눈을 감고 남자가 콘돔을 착용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아, 정말 섹시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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