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5월 2017-05-02   655

[역사] 5월 정신과 헌법 개정

 

5월 정신과 헌법 개정

 

 

글.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 데 관심이 많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 등의 저서가 있다.

2017년 5월은 온 천지가 장밋빛이다. 이 장밋빛의 끝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헌법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을 시민의 힘으로 탄핵시키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일 자체가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런데 37년 전 1980년 5월은 온통 핏빛이었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흑 천지였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봄을 꿈꾸었다. 비록 권력 내부의 균열로 최고 권력자가 목숨을 잃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 봄은 오랜 겨울에 맞서 싸운 저항의 결과였다.

전두환을 위시한 군부세력이 봄을 짓밟고 권력의 전면에 나서고 총칼로 막아섰지만, 광주 시민들은 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스스로 총을 들고,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공수부대의 총칼에 맞선 시민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가 국가 폭력에 의해 붕괴되고 학살되는 공포에 맞서 싸웠다. 그래서 그들은 공수부대가 잠시 물러났던 그 기간에 서로에게 주먹밥을 해주고 서로를 위로하며 공동체를 확인하고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결국 그들의 싸움은 생존권 투쟁이었고, 인권투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독재와 국가폭력에 맞선 민주주의 투쟁이었다.

1980년 5월 27일 열흘에 걸친 투쟁은 진압되었지만, 수많은 숙제가 남았다. 무엇보다 미완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고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두 번째는 바로 미국이었다. 절대 우방이며 민주국가의 상징이라고 믿었던 미국이 시민들의 민주화열망을 외면하고, 공수부대의 이동을 묵인했다는 사실 앞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1987년 마침내 권력을 무릎 꿇리는 힘이 생겼다. 그렇지만 권력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요구는 수용했지만, 권력은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헌법이 개정되었고, 87년체제 또는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때 만들어진 헌법의 가치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시위현장이 일깨워준 헌법 1조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소송이 많은 나라다. 반면에 법이나 공권력에 대한 불신 또한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강하다.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보다 더 긴 독재정권의 지배를 받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경우 시민혁명을 거치며 시민의식이 반영된 법체계가 성립되면서 법과 공권력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이 어느 날 시위현장에 등장하고 노래로까지 불리기 시작했다. 헌법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존중 받은 적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법이 권력의 도구만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또는 권리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6년의 촛불시위에서 헌법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주장된 이유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교과서 논쟁이 진행되면서 한국근현대사를 자본주의 발달사로 인식하고 싶은 뉴라이트 세력이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촉발하면서 헌법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정치권력이 독재화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헌법 1조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조롱이 섞이긴 했지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아직 제대로 표출되고 의지가 모아졌다고 하기엔 이르지만, 이제 시민사회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헌법과 자신을 보호해주는 법을 가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헌법에 담아야 할 5월의 가치
시민사회의 헌법 1조 수호 요구를 일부 정치권에서는 권력 쟁취 수단으로 삼으려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 파괴적 통치행위의 공범 위치에 있던 집권세력이 궁지를 벗어나 보려는 시도였다. 그들은 그 이전부터 장기집권을 위한 도구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마치 현행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호도했다. 다른 한 편에는 야권세력의 일부가 헌법 개정을 현재 정치지형의 개편 수단으로 생각했다. 어떤 원로 정치인은 한 달이면 헌법 개정안을 만들 수 있다고 대통령선거전 개헌론을 주장했다. 또 어떤 대통령 후보는 헌법 초안은 국회의원이 만들면 되는 것이라며 조기 개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가들의 이런 주장들은 헌법이 시민들의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고 시민 스스로 헌법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다행히 대통령 선거전 개헌 주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렇지만 정계 개편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개헌안이 확정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또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수호를 내세워 논쟁의 본질을 흐리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헌법이 정치권의 전유물도 아니고, 지배 권력의 도구여서도 안 된다는 인식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전두환 씨는 자신이 사면 받았다는 방패를 무기삼아 자신의 과거 범죄행위를 부정하고 합리화시키고 있다. 일부 세력은 북한군이 참여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사상과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를 왜곡시킨다. 식민과 독재, 그리고 국가폭력을 미화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되어서는 안 된다. 장밋빛 5월의 성취와 함께 피로 물든 5월의 정신과 가치를 헌법에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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