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5월 2017-05-02   642

[기획] 후쿠시마로부터의 소식3_자유롭고 위태로운 사람들

 

 

후쿠시마로부터의 소식3

자유롭고 위태로운 사람들

 

 

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봄의 첫날, 
나는 줄곧 가을의
끝을 생각하네
_ 일본 방랑시인, 바쇼(芭蕉)

 

바야흐로 대선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과 그들의 유세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이 선거가 지난해 늦가을부터 올 봄까지, 광장에 나와 끝내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킨 시민들이 일구어낸 ‘조기대선’이라는 걸 기억하긴 하는 걸까? 선거운동도 언론도 온통 ‘북핵’과 ‘안보’ 타령이다. 

 

분단 한반도에서 치러지는 대선에서 외교나 국방이 중요한 이슈가 되어선 될 수 있다. 하지만 선거공방의 초점이 ‘촛불대선’을 기대했던 민심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고약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동안 그토록 ‘멸사봉공’과 ‘진충보국’을 부르짖어온 정권이 정작 장막 안에서는 특권과 사리사욕의 잔치를 벌여온 것이 드러나 이제 막 국민에 의해 쫓겨난 터다. 상황이 그럴진대 새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이라면, 폐허만 남은 텅 빈 ‘국가’ 의 안위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그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해왔던 주권자들에게 ‘과연 안녕들하십니까’하고 묻는 걸 우선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래서 정치의 우선순위가 비로소 나라의 존립근거인 주권자 개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살피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이동했다고 느끼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무 것도 변하지 않게 하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만 한다”
_쥬세페 토마시 디 램피두사의 소설 <레오파드(THE Leopard, 표범)> 중에서

 

시대의 교체가 지체되면 혼돈과 고통이 가중되는 법이다. 올 봄의 초입에 쫓겨난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한국의 보수후보로서는 파격적으로 ‘경제민주화, 모두가 행복한 나라, 국민대통합’ 내세우고 당 색깔마저 빨간색으로 과감하게 교체한 결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재집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대선에서 보다 손쉽게 이길 방편으로 NLL 포기 논란 같은 신종 북풍몰이에 기댔고, 국정원과 군의 댓글공작을 동원했었다. 당선 이후에 부정선거 시비가 일자 통합진보당 해산을 강행하여 공안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도, 재벌개혁도, 국민대통합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십상시, 최순실, 우병우 등 문고리 권력의 국정농단과 공작정치가 판을 쳤다. 

“안녕들하십니까?” 2013년 늦가을, 대학가에 우리는 과연 안녕한 거냐고 자문하는 대자보가 나붙어 큰 호응을 얻었다. 마치 다음해 봄에 일어날 세월호 참사를 예고라도 하듯이,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겠느냐고 묻는, 조용하지만 통렬한 질문들이 그해 늦가을 전국으로 퍼져가고 있었던 거다. 돌이켜보면 그 대자보 열풍은 2012년 대선이 담아냈어야 할 시대교체가 낡은 정치에 의해 지체되는 ‘헬조선’에서,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주권자들이 보낸 일종의 경고메시지였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시민행동주의’

시대교체를 둘러싼 전환의 갈등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2009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가 일파만파 세계 금융위기로 발전하자, 한 세대 동안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옹호해왔던 신자유주의의 사령탑, 앨런 그린스펀 전 미美연방준비은행장은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신자유주의 제도, 특히 금융자본의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간과했다는 취지로 공개 반성했다. 미국을 비롯한 각 나라 정부들은 뒤늦게 ‘낙수효과’와 ‘민영화’에 기댄 경제정책의 패착을 인정하고 경제개혁과 복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주범인 금융자본은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회생하는 반면, 위기의 고통은 소수의 특권계층을 제외한 대다수 시민들에게 전가되었다. 세계화의 결과로 주변부 국가들은 더 극심한 불안정과 전쟁, 양극화와 결핍으로 고통 받았다. 

2011년 봄 아랍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 그해 여름 스페인과 그리스 등 유럽을 강타한 분노의 행진들, 가을의 월스트리트 점거시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악화시켜온 경제위기와 양극화, 자유주의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폭력과 특권과 반칙에 대한 저항이었다. 동아시아 주변국도 전환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13년 군대 내 의문사에 항의해 일어난 대만의 25만 명 시위와 2014년의 해바라기 운동(서비스 개방과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연이은 시위), 같은 해 일어난 홍콩의 우산혁명(홍콩 행정수반 직선제 보장 시위)등이 그것이다. 시위는 대상은 달랐지만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외친 구호는 대동소이했다. “우리가 인민이다!(We are the 99% People!) 사람이 우선이다!(Put People First!)”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행동주의’는 좌익 또는 우익 같은 전통적인 도식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전통적인 조직운동이 주도하고 있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기존 정당과 정치조직들은 극심한 위기와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에서의 티파티운동과 트럼프현상, 영국에서의 브렉시트, 스페인, 그리스, 이태리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의 기존 정치의 몰락과 새 정치세력의 진출…. 그래서 해석을 유보한 분석가들은 아예 이 현상을 ‘포퓰리즘(대중주의, 인민주의)’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일부 외신들의 전세계적인 현상인 포퓰리즘이 극적인 형태로 한국에 상륙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2009년 세계경제위기와 더불어 최근의 정치적 격변, 특히 시민들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관심의 우선순위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외부적 사건은 아마도 2011년 일본 동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일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일어난 국지적 사건이 아니라 전 지구적이고 역사적인 파장을 가진 사건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던 국가시스템과 테크놀로지, 우리가 대비하고 있다고 믿었던 전통적인 위협,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정치적 우선순위와 국가의 역할에 동일본대지진 이상의 거대한 균열을 가져왔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일본이 불안정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가장 체계적이기로 정평이 난 관료시스템을 보유한, 한동안 사회운동이 설 자리를 잃을 만큼 ‘안정적인’ 정치시스템을 가진, ‘만사불여튼튼’을 중시하는 노인들의 토목공화국이었다는 점이 더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정체된 일본 시민사회를 참사 이전과 이후로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방식의 사회운동이 일본열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난해 가을, 한국에서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가 일어나기 전 두 달 여  기간 동안 아시아리더십펠로우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도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새로운 사회운동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안녕한가?”를 묻는 대자보 열풍과 ‘기억하고 행동하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시민행동이 잇달아 던진 화두에 대해 사회운동적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오구마 에이지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 일본의 새로운 대학생 운동 SEALDs의 활동가들을 비롯한 일본 새로운 혹은 전통적 사회운동가들을 만나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자했다.

 

이미지4. 일본집회

일본의 새로운 대학생 운동 SEALDs가 집회를 하고 있다.

 

자유롭고 위태로운 사람들의 저항

『사회를 바꾸려면』이라는 책을 집필해 국내에도 제법 알려진 오구마 에이지 교수는 재밌는 사람이다. 록 가수처럼 긴 생머리를 기른 50대의 교수는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일본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박사논문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핵발전 재개 반대시위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 시위를 주도한 ‘아마추어’ 시민활동가들에 대한 영화 <총리에게 말하라(Tell the Prime minister)>를 제작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시민들이 스스로 찍어 유투브 등에 업로드한 비디오 영상을 편집하고 일부를 추가 촬영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 영화를 보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시위의 중심인물인 된 어느 무정부주의자 재즈연주자가 자신이 시민을 대표해 총리를 만나는 것이 무정부주의자로서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오래도록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결국 자신의 원칙을 접고 자신의 ‘아마추어 시위대’를 대신하여 총리를 만난다. 

오구마 에이지 교수의 관찰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2012년 이래 매년 한 번씩은 20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성사되고 있다. 핵발전 재개 반대(2012~), 평화헌법개정 반대(2013~), 특정비밀보호법① 제정 반대(2014),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안보법제 개정 반대(2015) 등이 그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거대한 대중행동은 60년대 ‘안보투쟁’이나 70년대 일본의 베트남전쟁 지원반대 운동을 능가하는 것이다. ‘사요나라(안녕) 원전’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평화인권환경포럼(Forum for Peae, Human Rights, and Environment) 후지모토 야스나리 대표는 전쟁법(안보법제) 폐지에는 1,580만 명,  핵발전재개 반대 서명에는 850만 명의 시민이 서명했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1억 인구를 고려하더라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650만 명의 서명에 비견되는 거대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이 새로운 각성과 행동은 전통적인 운동주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정당이나 언론, 그리고 노동조합 같은 전통적 조직들은 이 흐름을 예측조차 하지 못했고 이 행동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운동은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동경에서 만난 오구마 에이지 교수의 분석은 명확했다. 기존 정당과 사회운동에서 대변되지 못한 대다수 위태로운 시민들의 자구적 행동이라는 거다.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하는 이들은 국가와 기성의 사회조직에서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교육되고 자의식이 강한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들(Cognitive Precariat)②’이다. 이들이 SNS로 각자를 연결해 스마트 시민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 물결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사회엘리트들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위태롭게 느끼는가? 오구마 에이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단순히 핵발전소가 지진으로 폭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이 전통적인 공동체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그 공동체의 보호로부터도 ‘자유롭고’, 대의정치의 보호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기성정당이나 이념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보이지 않는 손이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지속적인 성장이나 안정적인 일자리로부터도 ‘자유롭고’, 그 밖의 사회조직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 같은 안정적인 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위태롭고 각종 보호로부터 자유롭다(free)고 느끼게 되는 이유라는 거다. 지난 늦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거리에 나온 한국의 ‘우리들’도 이런 존재 아니었을까?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퇴진 촛불 집회.

 

한국은 
정치의 지체를 극복했나

후쿠시마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대학생 오쿠다 아키(奧田愛基)는 후쿠시마 사고와 총리공관 앞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2012년 말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압승하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보면서는 앞으로 원자력 관련 정보도 더욱 감춰지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2014년 안보관련 법에 관한 각의결정을 보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인지 보다 분명히 깨달았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SEADLs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최대 400~500명에 불과한 회원을 둔 SEALDs는 2015년 20만 명 규모의 안보법제 통과 반대집회를 성사시켰고, 집권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사상 최소의 야권과 시민사회운동의 선거연합 창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쿠다는 기성 사회조직들이 ‘우리’라고 말하는 것이 불편해 자신들은 우리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고 개인을 강조했다고 했다. SEALDs 멤버들은 대표를 두지 않고 행동과제별로 담당자를 두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회원은 있었지만 회비제도도 두지 않고 일시적인 후원금으로만 운영했는데, 활동과제가 끝나면 해산한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SEALDs는 한복을 입고 다니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재일(재일조선인의 준말)’이라는 이유로 혐오행동의 대상이 되자, 모두 한복을 입고 시위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홍콩, 대만, 한국 청년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점에서 요즘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주의의 덫에서 보다 자유로움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사회운동이 정치를 바꾸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보기는 아직 힘들다. 역사상 처음으로 야권이 선거연합을 결성한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야권연합은 일부 지역구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의 개헌가능 의석 확보를 저지하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오구마 에이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결과가 도출된 이유는 집권여당에 못지않은 야당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다. 소선구제와 지역구 중심 선출방식을 취하는 불합리한 선거제도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당지지 비율을 의석에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다수의 투표를 사표로 만드는 낡은 선거구조는 기성 정당들의 낡은 의사소통 구조만큼이나 바람직한 사회변화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시민여론을 반영하지 않는 언론도 문제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일본은 최근 연이어 추락하고 있는 한국(70위)보다 낮은 72위를 나타냈다. 

정치개혁운동을 하는 일본의 활동가들은 적어도 한국 국민들이 대통령을 자기 자신의 손으로 뽑을 수 있지 않느냐고 부러워했다. 여소야대 혹은 야대여소로 변화무쌍한 한국정치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모두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과두정치를 보호하는 선거제도를 가졌다. 오히려 일본의 제도는 지역구:정당득표 의석배분(비례대표) 선출비율이 2:1로, 6:1에 가까운 한국의 그것에 비해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유리한 조건이다. 그 밖에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취약한 언론자유,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비정규직의 비율이나 이주민이나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 등에서도 양국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이제 일본시민운동이 힘겨워 하는 정치의 정체와 지체를 극복한 건가? 장미대선을 앞둔 봄날에 생각해본다.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그날의 분노와 슬픔이 우리를 크게 변화시킨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변화한 우리는 앞으로 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몇 번이고 반복합시다.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잊지도 맙시다.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_혼마 노부카즈, 특정 비밀 보호법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에서③ 

 

 


①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정보를 일본 정부가 특정 비밀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는 법안
②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
③    노컷뉴스, 2017.1.18. “일본의 새로운 정치운동, SEALDs(실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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