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5월 2017-05-02   8886

[통인] 촛불 이후를 고민하는 ‘괜찮으세요 아줌마’ – 박진 퇴진행동 상황실장

촛불 이후를 고민하는 ‘괜찮으세요 아줌마’

박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상황실장

 

글. 박유안  사진. 박영록

 

 

촛불혁명과 노조? 촛불혁명과 시민단체? 촛불혁명과 학교운영위원회? 촛불혁명과 반상회? 여기, 촛불 이후 우리 삶의 변화는 대통령을 누굴 뽑느냐가 아니라, 촛불의 일상 침투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맑은 목소리의 소유자 윤희숙 씨, 유연한 진행 스킬이 돋보인 김덕진 씨와 더불어 지난겨울 촛불집회 본무대의 3대 사회자 중 한 사람, 자칭 ‘못 말리는 격정’으로 시민들과 함께했던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상황실장 박진 씨를 만나 그의 인권운동 이야기, 촛불 이후 체제를 상상하는 법에 대해 들었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인권활동가로 20년 세월을 보냈다. 숱한 인권현장들을 지켜본 활동가로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소회가 남다르겠다. 
다산인권상담소(현 다산인권센터)에 들어간 게 1997년 1월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기를 거친 건데, 인권활동가들에게는 노무현 때나 김대중 때도 어려웠다. 다산에 막 입사할 무렵 김대중 정권 아래서 노동법 개악 싸움 중이었고, 노무현 때는 대추리 싸움이 있었다. 그러니 만만했겠는가? 하지만 권력과 싸우더라도 그때는 우리의 상상력이 자라던 시절이었다. 뭔가를 더 하고 싶다는 상상력 말이다.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다양한 의제를 가지고 싸웠다. ‘국기에 대한 맹세’ 거부 같이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고 싶은 의제 개발이 가능했던 건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새로운 걸 할 수가 없었다. 그간 쌓아온 기본권이 다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광우병 촛불집회 때 우리가 본 건 경찰국가의 탄생이었다. 1천여 명이 형사 입건되었는데, 지하철 이동경로나 CCTV 등을 추적해서 처벌했다. 경찰국가와 국정원이 전면에 나서면서 전선이 후퇴한 채로 거기서부터 다시 싸워야 했다. 굉장히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활동가로서 대중들의 인권 인식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지 않을 텐데?
인권이 사건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해고 등 특정 사건으로 불리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해고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존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는 그 사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드러난다. 대중은 사건으로만 기억하는데, 정작 기억해야 할 건 그 안에서 무너진 인간의 존엄 아닌가. 그게 제일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 일은 늘 ‘사건의 인격화’였다. “그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처럼 다 평범한데, 원치 않았던 운명적 사건을 만나면서 우리와 달리 비범해지고 특별해진 거다. 그래서 이들에 공감하고 이들을 지키는 건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거다.” 이걸 알려야 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가 가지는 절망의 깊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304개의 별, 304개의 존엄들, 그리고 그와 연관된 가족들의 삶이 무너진 걸 알았다. 처음부터 인격화된 사건으로 받아들인 거다. 

한국의 인권운동, 더 나아가 사회운동에서 재난 문제를 두고 이렇게 싸워본 적이 없었다.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때 인간이 얼마나 처참해질 수 있는지를 세월호가 처음으로 드러내줬고, 그걸 지키는 게 인권운동이고 사회운동이란 걸 내게 가르쳐줬다.

 

그런 큰 관심을 끌면서 세월호 참사는 ‘제도화’ 측면에서도 나름 성과를 거둔 것 같은데?
그렇다.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법(이하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낸 건 국가가 아니었다. 법 제정을 촉구한 600만 명 서명의 힘으로 제도화한 거였다. 박근혜 정권 초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일보한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시민의 힘 덕분이었다. 공감을 받는 투쟁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보여준 사례였다. 

 

지난겨울의 촛불혁명도 그런 공감대 위에서 가능했다. 
이번 촛불혁명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접민주주의의 힘으로 돌파한 일대 사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대선 탓에 우리의 운명을 다시 대의제에 의탁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시민권력, 민중권력의 형성과 더불어 정권교체가 되어야 하는데, 대선국면이 되면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에만 관심이 쏠리는 게 아쉽다. 그래서 촛불의 광장을 어떻게 일상으로 가져갈까, 어떻게 광장에서처럼 정치적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87년 민주화 이후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 “죽 쒀서 개 줬다”라고 평가하곤 하는데, 난 다르게 본다. 87년 투쟁 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노조 조직률이 크게 높아졌고, 완전히 다른 체제의 혜택을 보며 살았다. 고문과 독재권력이 더 이상 발들일 수 없는 체제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은 87년에 버금가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 첫 해이다. 이제 설령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새로운 시대는 벌써 시작된 것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촛불 이후 체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느껴진다.
새로운 시대에 일상의 정치, 그 힘을 어떻게 유지할까가 관건이다. 세월호 참사가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 건 평범한 사람들을 정치적 시민으로 단련한 거다. 참사의 비극성이 너무 생생해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오게 되고, 광장에 나오면서 생활 자체가 바뀌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노란 리본을 만든다거나, 매월 16일마다 모여 집회를 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이런 풀뿌리모임들이 굉장히 많다. 그걸 토대로 4.16연대도 만들어진 거다. 세월호 참사는 전혀 다른 가치동맹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그 촛불의 가치, 광장의 가치가 더 확장될 거다. 일상을 바꿔내는 풀뿌리모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그게 어마어마한 힘으로 자리 잡을 때 이 사회는 쉽게 뒤로 못 가는 상태로 진일보하는 거다.

 

87년 체제의 등장과 더불어 벌어진 게 상층 권력구조의 변화라면, 이번 4.16 체제의 등장을 통해서는 풀뿌리 수준의 변화들이 더욱 단단해질 거라는 기대로 들린다. 그런 변화들을 담아낼 수 있게 국민발의제 등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제도화도 가능한 것 아닌가? 
이번에 정치제도는 좀 바꿨어야 했는데 아쉽긴 하다. 18세 선거권이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등의 도입 말이다. 이번 촛불광장은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권력에게 퇴진하라는 것보다 더 정치적인 게 어디 있겠나. 이 정치적인 광장이 정치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건 정말 아쉽다. 5개월 동안 연인원 1,700만 명이 목소리를 모았는데, 통과시킨 개혁 법안은 ‘세월호선체인양법’ 딱 하나다. 우리 수준이 딱 거기까지인 거다. 퇴진행동이 낸 100대 과제 중 딱 하나라니…. 

 

이번 촛불광장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일반 시민으로, 퇴진행동 상황실장으로 매번 그 자리를 지켰을 텐데?
2,600개 단체가 참여한 퇴진행동이니, 매주 회의 참석인원만 해도 100명을 넘었다. 100명이 참여하는 회의니, 쉬울 리가 있겠나. 공동대변인까지 같이 맡았기에 하루 두 번 기자회견을 하는 등 매주 토요일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나날이었다. 

이번 대선을 두고 장미대선이니 벚꽃대선이니 그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장미나 벚꽃이 권력을 끌어내렸나? 촛불이 끌어내린 권력이다. 촛불대선인 거다. 자꾸 우향우하고 뒤로 가고 그러는 정치판에 또 따귀를 때려야 하나 싶다. 광장으로 모여든 우리들의 열망, 그 거대한 규모 자체가 위력적이었다. 나중에 내가 사회 본 집회장면을 영상으로 보는데, 그 규모가 좀 무섭더라. 박근혜는 정말 무서웠겠구나 싶더라. 정말 위력적이었다. 

 

지치고 힘들었을 법도 한데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나?
광장에 있는 시민들 덕분에 버텼다. 상황실은 서로 다른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긴급히 모인 프로젝트 팀이었다. 쓰는 언어도 다 다르고.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겹겹이 광화문역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던 어깨들을 생각했다. 창원에서 조퇴하고 뛰어왔다는 시민, 눈 때문에 얼어붙은 바닥을 한두 사람이라도 더 앉게 하자며 긁어내던 무대팀 등 n분의 1 시민들이 내게 준 감동의 힘으로 버텼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건,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세상 사람들은 이 고통에 공감을 못할까?’ 그런 의문이었다. 이번에 깨달았다. “기다리면 되는구나.” 내 일의 8할은 기다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정말 절실히 깨달았다.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힘이 생긴 거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무대에서 본 광화문 촛불(좌)과 본무대 사회를 보는 박진 퇴진행동 상황실장(우). ⓒ박진 상황실장 페이스북
 

광장에 나와 그런 세상의 고통에 새삼 공감하게 된 분들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을 ‘커다란 배움터’라고도 부르던데?
많은 분들이 광장에 여러 번 나오면서 유성기업 노조파괴자 구속하라는 데도 사인하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석방하라는 데도 사인하고, 모르던 것들의 의미도 새삼 깨닫고, ‘광장이 거대한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하더라. 시민들은 광장에서 어울리며 스스로 민주주의를 학습했다. 이런 학습을 거친 시민들이 뒤로 가기는 어렵다. 

 

본무대 사회자로서 집회 참여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스킬’도 있었을 것 같다. 
난 일방적인 선전선동 체질이 아니다. 200명이 모인 운동권 집회에서 ‘동지 여러분’이라 외치는 건, 길가의 행인들은 오지 말라는 말 아닌가? 우리끼리는 동지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집회 아닌가? 거리의 행인들을 포함해 ‘대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인데, 그럼 더 폭넓게 아우르는 언어, 최대한 편한 언어, 함께할 수 있는 언어와 분위기로 호흡해야 한다. 쉽지는 않다.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웃음) 진행자가 편안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노력을 많이 했다. 
운동권에서만 쓰는, 이른바 ‘운동권 사투리’가 있다. “동지 여러분”부터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등등. 난 그런 거 안 쓰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괜찮겠습니까?” 대신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방식이다. 그래서 내 별명이 ‘괜찮으세요 아줌마’였다. (웃음)

 

또 하나의 뭉클한 감동이 ‘후원금 누적금액 38억’이었다. 모금 제안자로서 그 감동이 남달랐을 텐데?
다시는 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늘 말하지만, 이건 n분의 1의 기적이다. 단 5일 만에 통장에 2만 5천 건이 입금되어 15억을 만들었다. “제가 너무 가난해서 적게 보내 미안하다”는 페이스북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마음만 보내셔도 너무 고마운데 말이다. 

 

이런 압도적인 경험이 시민 개개인을 바꾸었듯 본인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을 듯한데?
별로 안 바뀐 거 같은데? (웃음) 일단 죽을 거 같아서 헬스클럽 등록부터 했다. 건강해야 뭐든 하니까. 제일 큰 변화는 아까도 말했듯 사회를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은 거다. 안식년 중에 퇴진행동 일을 한 거였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주변에서도 쉬라고 권해서 안식년을 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세월호가 터졌다. 그때 그런 느낌이었다. 더 큰 고통이 내 고통을 덮었구나! 1~2년 동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했다. 그리고 나서 시작한 안식년을 깨고 퇴진행동 일한 거 두고 사람들은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고, 쉴 땐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후회 없다. 이런 역사적 광장을 내가 못 봤다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덕분에 난 굉장히 비관적인 인간에서 아주 낙관적인 인간으로 바뀌었다. (웃음)

 

뜻밖에도 광장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분이 여기 계신 셈인가?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큰 수혜자인 거 같다. 행복했다. 다섯 달 동안.

 

앞으로 인권활동가로서 중장기 비전이 있다면?
사람들이 인권운동 단체를 찾아올 때는 거의 복구불능의 상태일 때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완전히 내몰렸을 때,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미 누가 죽었거나 해고되었거나 곧 죽을 거 같은 그런 극한 상황인 거다. 그런 벼랑 끝에 몰려 있으면 복구하기 힘든 상황이고, 그래서 인권운동은 이기기 힘든 싸움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인권의 문제가 이렇게 극단으로 내몰리기 전에 힘을 갖추려면 어떡해야 할까?
삶 속에서 정치적인 시민들이 많이 등장하고 삶 곳곳에서 사유하는 공동체들이 자라나, 이들이 힘이 되고,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이 됐을 때, 국가와 자본은 마음대로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자리 잡게 하고, 이들을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다. 이번 촛불을 통해 나의 그런 전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요즘 강의를 다녀보면 촛불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많다. 이런 ‘포스트촛불’ 공동체들을 연결, 연결, 연결 시켜주면?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 모두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산다, 각자의 현장에서. 그러던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부정한 권력 퇴진의 외침으로, 긴긴 촛불혁명으로 하나가 되어 광장에 모였다. 지난겨울을 뜨겁게 달군 우리의 광장 체험이 새로운 정치적 유전자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유전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열심히 살면서도 촛불의 마음, 촛불의 힘이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새 시대를 사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박진 퇴진행동 상황실장이 꿈꾸듯 사유하는 풀뿌리 공동체들의 연대가 종횡무진 연결되어 진보의 터전으로 자리 잡는 때, 우리는 문득 지난겨울의 그 뜨거운 촛불혁명을 새 체제의 출발점으로 꼽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미 새 시대는 시작되었다. 노조 설립 문의가 늘어나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가입도 부쩍 늘고 있다. 일상의 진보, 내 삶을 바꾸는 촛불은 그렇게 일상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 오고 있다.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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