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9월 2019-09-01   1364

[통인뉴스] 25년을 함께 커온 우리

25년을 함께 커온 우리

참여연대, 나, 참순이의 연결고리 

 

글. 김정인 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참여연대가 탄생을 준비하던 1994년 여름, 정말 무더웠다. 나는 만삭이라 곱절의 더위에 시달렸다. 신기하게도 서초동에 자리한 병원에서 딸을 낳은 9월 5일 아침부터 선선해졌다. 며칠 후, 9월 10일에는 역시 서초동에 있는 변호사 회관에서 참여연대가 탄생했다. 그 순간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참여연대도 딸도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인연에 마냥 기분 좋았다. 그렇게 태아 시절부터 엄마와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준비한 딸에게는 ‘참순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5년 세월 동안 참 많은 이들이 참여연대를 드나들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건 1994년 9월의 행복한 기억 때문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참여연대 마스코트였던 ‘참순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이 곧잘 부모를 따라다닌다. 딸이 엄마를 따라 참여연대 모임에 자주 나타난 것도 그때였다. 쥐가 들락거리던 용산 사무실을 벗어나 참여연대가 안국동에 자리 잡았을 때, 그러니까 유치원 시절의 참순이는 청년모임 답사와 창립기념 행사의 단골손님으로 활약했다. 참순이라 불리며 듬뿍 사랑을 받으니 더 신나게 엄마를 따라 나선 듯하다. 

 

10대가 된 딸은 더 이상 모임에 따라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있을 때면 참여연대 깃발 아래 있었다. 2004년 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위에는 동생과 함께 매주 열심히 참석했다. 그해가 참여연대 창립 10주년인지라 촛불시위에 나온 ‘참순이 가족’ 사진이 「참여사회」 표지를 장식할 뻔 했으나 아쉽게도 성사되지는 못했다.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난 2008년, 참순이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중2’가 되었다. 촛불시위가 막 시작될 무렵 참순이는“이명박이 벌써 바닥을 보이네. 그런데 그 바닥의 끝이 안 보여서 더 문제야”라는 신박한 말을 하며 촛불시위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날로 참순이는 엄마 차로 친구와 함께 서울까지 원정시위를 왔다. 당시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 직전까지 시위대 맨 앞에 있던 참순이를 안전하게 대피(?)시켜 준 간사들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1998년 참여연대 안국동 사무실에서 열린 회원한마당 행사에서 김정인 운영위원장의 딸, ‘참순이’가 박수를 치고 있다

 

참여연대와 함께 성장해온 ‘나’

춘천에 사는 동안 월요일 아침마다 기차를 타고 참여연대 회의에 참석했다. 많은 분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먼저 주일에 교회 가는 것과 같다고 짧게 답했다. 현재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자격으로 상임집행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여러 임원, 간사들과 토론하다 보면 머리는 깨고 눈은 밝아지고 마음은 따뜻해지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계급장 떼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최선 혹은 차선의 대안을 고민하며 합의를 존중하는 상집의 토론 문화는 참여연대가 튼튼하게 자라는 영양분이었고 나에게는 민주주의적 감수성을 키워 역사를 민주주의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다. 참여연대와 함께 나도 성장하는 듯했다. 

 

춘천에서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딸은 자신의 별명을 ‘유연’이라 지었다. “왜”라는 질문에 딸은 짧게 “유연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원칙적인지, 유연한 편인지 물었을 때 “원칙을 유연하게 관철하면서 살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로 참여연대가 가르쳐 준 삶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딸의 짧은 대답을 들으며 나와 참여연대, 그리고 딸이 이어져 있는 듯 해 흐뭇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참여연대 팟캐스트 진행자로 녹음 중인 김정인 공동운영위원장. 그는 창립부터 지금까지 참여연대 25주년을 지탱해온 산 증인이다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참여연대의 25년을 축하하며

2016년 12월 31일에도 나와 딸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새해를 맞았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순간이면 늘 참여연대 깃발 아래서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을 딸은 훗날 어떻게 기억할까. 어릴 적부터 참여연대에 대한 엄마의 절대적(?) 사랑과 믿음을 보고 자랐고 자신이 참여연대와 동갑의 ‘참순이’라는 걸 알기에 아직은 참여연대 회원이 되는 것을 오히려 쑥스러워 하는 듯하다. 

 

참여연대 25년, 어엿한 청년이 된 딸은 지금 취업준비생이다. 무한 경쟁 속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성실히 준비하는 여느 청년 세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곧 참여연대 회원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25살 그녀를 힘껏 응원한다. 나 또한 역사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삶에 자족하지 않고 시민답게 사는 길로 이끌어주고 있는 25살 참여연대를 응원한다. 그렇게 우리 셋, 참여연대와 나 그리고 참순이는 어제처럼 오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 글은 참여연대 창립 25주년을 맞아 개설한 카카오같이가치 기념일 모금함의 스토리를 옮겼습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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