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12월 2020-12-01   546

[회원생각] 건강한 관계, 보살피는 마을

회원생각❷

건강한 관계, 보살피는 마을

 

글. 조계성 회원 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자문위원·일신연세의원 원장

 

 

저는 관악에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에 참여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관악정다운의료사협은 스스로의 건강 자치력을 높이고, 관계로 맺어진 마을 공동체가 건강과 돌봄 기능을 회복하기를 꿈꾸며 2019년 6월 창립했습니다.

 

관악은 독거 어르신과 청년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난곡이나 봉천동, 삼성동 등 높은 지대가 많은 지역입니다. 높은 지역에는 모순적이게도 주로 장애인이나 거동이 어려운 독거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병원이나 복지관을 이용하고 싶어도 마을버스조차 오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사협은 돌봄네트워크를 만들고, 어르신들에게 주 1회 청년 자원활동으로 ‘마을마차’라는 이름의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정의하는 ‘건강’이란 아프거나 질병이 없는 것뿐 아니라 아프고 장애가 있어도 가족, 이웃, 그리고 제도적 지원으로 이를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은 작게는 돌봐줄 이웃과 마을 공동체가 필요하고, 크게는 제도와 법이 중요합니다. 

 

그다음, 내 건강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건강 문제를 상의할 수 있는 주치의가 있어야 합니다. 주치의와 더불어 간호사나 약사, 사회복지사 등 가까이서 건강과 돌봄의 문제에 도움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원을 찾아오기 힘든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방문 진료나 가정 간호서비스 등 찾아가는 의료도 기본 진료 활동에 포함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의료사협은 왕진시범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것들이 코로나 이후 의료사협이 더욱 강조하는 일차 지역의료의 ‘공공성’입니다. 

 

방문 진료는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다 보니 환자에게 당장 해드릴 수 있는 치료는 제한적이지만, 환자가 처한 환경, 식생활, 주거 상태, 가족관계 등 환자의 생활 여건에 대해 더 파악할 수 있고 의료를 넘어 보다 환자의 삶에 주목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가 왜 약을 잘 챙겨 먹지 못했는지, 왜 감기에 잘 걸리는지, 왜 기분이 우울한지 등 삶의 맥락에서 건강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오랜 입원과 중풍 등으로 절대 병원을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혼자 움직이시다 넘어져서 다리에 멍이 들었는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방치하고 계시더군요. 왕진을 가보니 골절 과거력과 오랜 와상臥牀 생활, 다리 부종 등 경골 골절이 의심돼 방사선 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할머니께 검사의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해드리고 병원에 가실 방법도 구체적으로 알려드렸더니 그제야 이해하시고는 촬영 후 다발성 골절로 입원하셨습니다. 이 사례처럼 방문 진료를 통해 환자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신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건강 돌봄의 관계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의료사협의 소모임 중에서 참여연대 마라톤 모임 회원들도 함께하고 있는 ‘건강한 달림이 모임’(건달이)이 코로나 상황에도 가장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달리기로 체력과 면역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 간 지지와 격려를 통해 건강한 열정을 주고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의료사협은 지역 조합원들과 이런 마을 건강 활동의 거점이 될 의료기관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 의료기관은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 활동, 교육 등에서 건강 약자는 물론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의료기관의 주치의는 생활습관병으로 알려진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데 있어 약의 의존성을 줄이는 대신,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관계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또한 의료기관을 공동 소유, 공동 운영하며 함께 이용하는 기관, 지역주민이 주인인 사회적 의료기관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조합원 스스로 건강을 생산하는 일에서부터, 이웃의 건강을 살피는 일로 관심을 확대해 나가면서 관계에 기반한 건강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예로 ‘마을마차’를 운전하는 청년들이 독거 어르신 댁 마루의 전기 스위치를 고쳐드린 일은 어르신의 밤눈을 밝혀, 낙상과 골절을 예방하는 외과의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따로 있지 않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헨리 나우웬은 진정한 돌봄은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뜻 나서기 두려울지 모르지만, 돌봄의 부담이 공유되고 사회적,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때 돌봄을 받는 사람도 존중받고, 돌봄을 하는 이들도 돌봄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현재 전국 26개의 의료사협이 지역 조합원들의 염원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논의하는 자리에 의료인과 정부의 목소리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의료 이용자이자 보험료 납부자, 지불자이기도 한 주민과 시민들의 목소리도 주요한 이해관계 당사자로서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의료사협은 보건의료 정책 제안의 민간 파트너로서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성숙한 의료이용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주민을 조직하는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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