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3월 2021-03-01   1724

[떠나자] 격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 – 인도 고아

격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인도 고아

 

지난가을 무렵부터다. 연재처마다 “작가님은 괜찮아요?” 하고 물어온다.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는 건가 싶었는데 좀 복잡한 사정이 담긴 질문이었다. 벌써 1년여 가까이 출국이 불가하다 보니 다른 작가들은 여행 소재가 메말라 본의 아니게 청탁을 사양하고 있다고 한다. 한 달씩 머무는 여행이 이럴 때 빛이 날 줄이야! 빈둥거리며 지냈어도 한 달을 지내다 보면, 하나 이상의 사건은 있게 마련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3월호 (통권 283호)

대낮부터 칵테일에 취해 해변에 누워 있는 거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곳. 고아는 그렇게 한 달을 보내도 충분한 곳이다. ⓒ김은덕, 백종민

 

세계 ‘주당’들의 성지로 불리는 곳  

인도 서남부에서 우리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한 달을 보냈다. 아라비아해 앞에 위치한 고아Goa라는 이름의 자치주였다. 유럽 사람들은 ‘뜨거운’ 연말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한겨울에도 섭씨 30도가 넘는 이곳까지 찾아온다.

 

이 지역이 유럽까지 이름을 알린 데에는 언젠가 비틀스가 이곳 해변 어딘가에서 지내다 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히피들의 성지였다가 최근에는 밤새 열리는 해변의 EDM 파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여기에 주류세가 없는 지역이라 물보다 싼 술까지 있으니, 연말의 고아를 설명할 단어로 ‘흥청망청’이 적절하다.

 

관광객들이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현지인들까지 그렇게 지내진 않는다. 현지인들은 대체로 성실하다. 상점마다 적절한 가격표가 붙어 있으며, 외지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기회를 노리지도 않는다. 유명한 여행자 거리, 델리Delhi의 빠하르간지에서 만날 법한 사기꾼 캐릭터를 고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은 1960년대까지 ‘포르투갈령 인도’였던 곳이라, 델리나 바라나시Varanasi로 대표되는 인도와 정서적으로도 매우 다르다. 현지인의 절반 이상은 힌두교가 아닌 가톨릭 신자이고 동네마다 성당이 하나씩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면 집 앞에서 캐럴을 부르는 무리도 만날 수 있다. 아마 포르투갈에 인도인 집단 거주지가 있다면 고아 같은 분위기가 아닐까한다. 

 

‘여기선 다들 그렇게 지내는데 뭐’

성실함과 종교 외에도 고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와 다른 점이 또 있다. 우선 보통의 인도 식단과 달리 해산물을 주재료로 하는 ‘고안푸드Goan food’를 메인 요리로 내놓는다. 또한 여기 사람들은 자신을 ‘인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신 ‘고아 사람’이라는 뜻의 ‘고안Goan’이라고 칭한다. 

 

고아가 이런 지역색을 띠게 된 데는, 포르투갈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인도를 외부 세계로 두었던 역사와 외세로부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한 노력 그리고 힌두교와 가톨릭이라는 신앙, 그 사이에서 생겨난 독특한 태도와 영향인 듯했다.

 

고아에서 지낸 한 달은 동네 사람들 관찰이 주된 일과였다. 아침에 일어나 서핑을 한 뒤 식당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병으로 된 칵테일을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집 앞 논두렁에 앉아 고랑 매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해변으로 가서 석양을 보다 들어와 잠들었다. 인도양의 흐릿한 바다와 잔잔하고 긴 수평선은 지는 해를 더욱 붉게 만든다. 석양으로 붉게 변해가는 하늘색을 한 시간 정도 바라보고 있으면 ‘여기 온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지내는데 뭐’ 라는 안도감 같은 게 절로 생겼다. 

 

1.5리터짜리 페트병의 정체는? 

단순한 일과여도 한 달이나 지내다 보면 이야기로 풀어낼 사건들은 생기게 마련이다. 이곳의 대중교통은 하루 세 번 다니는 시외버스가 유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내는 동안 스쿠터를 한 대 빌렸다. 스쿠터 연비라는 게, 시쳇말로 ‘기름 냄새만 맡아도 달리는’ 수준이라 첫 시동 후에도 한동안 주유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주유소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만 연료 경고등이 들어온 뒤에야 동네에 주유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빨간 경고등이 반짝이는 스쿠터를 집 앞에 세워 둔 채, 주유소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큰길 슈퍼마켓으로 걸어가는데 꼬마 둘이 ‘왜 오늘은 걸어가요?’ 하고 물었다. 도로와 가장 인접한 집 현관에 앉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이었다. 그럼 우리도 매번 손을 흔들며 ‘헬로~우’ 하고 인사를 하곤 했었다. 그 눈망울로 환하게 웃어주면 무시하고 지나갈 재간이 없다. 

 

아이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둘 중 조금 더 큰 아이가 옆에 있는 1.5리터 페트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옆에는 늘 1.5리터짜리 페트병이 놓여있었는데, 만약 먼저 인사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떠나는 날까지 그 페트병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병에 담긴 액체는 다름 아닌 가솔린이었고, 그 집이 동네 주유소 역할을 하고 있던 거였다. 그제야 옆집 러시아 사람도, 윗방 우크라이나 사람도 왜 거기 멈춰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다른 외국인들처럼 꼬마들의 단골손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떠날 무렵에는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무의미하게 보낸 것 같은 날 속에도 기억할 만한 사연이 하나 남았다.

 

이쯤에서 우리가 고아에서 빈둥거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서핑에 재미를 붙인 나는 아침마다 바다에서 한바탕 파도를 타고 나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있던 이는 대낮부터 칵테일에 취해 해변에 누워 있는 거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아는 그렇게 한 달을 보내도 충분한 곳이었다. 

 

➊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 클럽이나 DJ가 주최하는 댄스파티에 어울리는 전자 음악의 총칭

 


글·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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