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3월 2021-03-01   417

[읽자] 그럼에도 충실하고 아름답게

그럼에도 충실하고 아름답게

 

 

이 세상이 그리고 그 세상에 사는 어쩌면 인류를 포함한 생명은,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일까. 좁혀서 생각해보면 나는 생을 다해 흙으로 돌아갈 게 분명하고, 지금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인류 역시 지구에서 종적을 찾기 어려울 게 확실하다. 운명은 나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각자의 선택과 행동이 쌓여 모두의 마지막을 만드는 게 아닐까. 당장 운명을 뒤바꾸자고 말하는 게 부질없이 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는 자기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으니, 어긋나 보이는 둘을 겹쳐가는 데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하여 기대를 넘어서는 운명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명이 사라지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그렇지만 당대에는 빛나는 성취를 이룬 문명들은 어떻게 마지막을 마주했을까. 그들 스스로가 오늘에 널리 기억될 만한 이야기를 품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의 문명이 그들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살피지 못한 까닭일까. 세계 곳곳에서 명멸한 스물다섯 개의 문명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든다. 마치 수백 수천 년 후 어떤 문명이 오늘 우리를 바라보며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싶어진다.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억될지에 앞서, 그러니까 아직 오지도 않은 마지막을 떠올리기에 앞서, 눈앞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이 문제를 풀어갈 나름의 방법을 찾고 그 해답으로 마지막을 늦춰가야만 한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운명이 아닐까 싶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3월호 (통권 283호)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 | 글 하랄트 하르만 | 돌베개 

차탈회위크의 도시 역사는 매우 이례적인 종말을 맞이하는데, 그 이유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들볶은 모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기는 분명 도시가 형성되었을 때부터 줄곧 있었을 것이다. 습기가 많은 저지대와 강변 초지는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차탈회위크 주민은 수백 년 동안 모기에 잘 대처하며 살았다. 고고학자들이 확인한 바로는 도시의 건물 안 주거 공간은 눈에 띌 정도로 깨끗하게 유지된 상태였다.어쩌면 모기를 체계적으로 제거했을지도 모른다. 집 안 화덕에는 연기 배출구가 따로 없었고, 지붕에 난 구멍을 통해서만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었다. 화덕의 연기가 오랫동안 집 안 전체에 퍼지게 만든 구조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야 동시에 모기도 막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기원전 제6천년기 언제부터인가 어쩌면 기원전 5800년 무렵 발생한 기온 상승의 결과로 축축한 저지대에 말라리아모기가 서식하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에 걸렸다. (중략) 만연한 말라리아는 도시 주민의 삶을 몹시 힘겹게 만들었고, 그들은 고향을 영원히 떠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기원전 5600년 무렵 차탈회위크는 버려졌다.

 

끝 앞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

북극권에 자리한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에는 단단한 암반을 130미터나 뚫고 들어가 만든 터널이 있다. 그 터널 끝에는 세계 곳곳에서 도착한 종자 100만 종이 5억 개 넘게 보관되어 있다. 그간 인류를 먹여 살린 농작물이 기후위기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살아가기 어렵게 되자 이를 보존하려 만든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책을 가득 채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의 사진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풍경과 누구도 찾지 못할 것 같은 위치 때문일까. 왠지 사람이 없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기획과 시도는 너무나 인간답기도 하다. 어떤 끝에서도, 설령 그 끝이 우리가 자초한 일이라 해도,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서로를 살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모습 말이다. 이런 상상이 어쩌면 운명을 바꿔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3월호 (통권 283호)

 

세계의 끝 씨앗 창고 –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이야기 | 글 캐리 파울러 | 사진 마리 테프레 | 마농지

영속적 파급은 거울 같은 성질의 연마철로 만든 조그만 삼각형 조각 수백 개, 그리고 불투명 유리와 금속을 여러 겹 덧대어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내는 다이크로익 글라스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재질 덕분에 보는 각도에 따라 유리가 각양각색으로 빛난다. 우주에 떠 있는 조각처럼 보이는 이 조그만 판유리들 뒤로 200개의 광섬유 케이블이 푸르스름한 녹색 빛을 발하면서 맥박이 뛰듯 약하게 깜빡인다. 이 조명 작품은 여름의 백야에는 전기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씨앗이 몸 안에 제 환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듯, 스발바르의 환경을 그대로 비추어준다. 뒤베케가 보기에 이는 환경을 반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작품에 담긴 생각 혹은 아이디어 자체가 성찰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거울을 볼 때 마주하는 얼굴은 바로 나 자신이며, 누구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내가 해야 한다는 메시지인 거죠.

 

미래를 향하는 과거의 이야기

고고학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학문은 아니다. 모험과 탐험으로 그려지는 고고학자의 모습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들이 실제 어떤 일을 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연히 고고학의 내용과 의미도 생소하다.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고고학을 연구해온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이 당대의 삶에 가까워지는, 그리하여 인류가 주어진 환경과 당면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살펴보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지 못해 ‘미지의 땅(테라 인코그니타)’이라 부르던 곳에서 펼쳐진 일들은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인류라는 감각을 일깨운다. 물론 그렇기에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여 어쩌면 극복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오늘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에 이르렀고 내일을 기대하며 어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 희망은 여전하다. 우리가 언젠가의 그 증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3월호 (통권 283호)

 

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 글 강인욱 | 창비 

18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인 시베리아의 야쿠트에서 모피사냥꾼으로 활동하던 야코프 산니코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모피 동물을 찾아 북극권을 헤매던 중 동부 시베리아 노바야시비리섬 북쪽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난데없이 거위 떼가 날아가기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눈 덮인 빙하 북쪽으로 푸르른 숲으로 뒤덮인 땅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북극권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시절 산니코프의 발견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3세는 이 섬을 다시 발견하는 자에게 섬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수많은 탐험가들이 경쟁적으로 이 섬을 찾아나섰고, 그 중에는 산니코프 자신도 있었다. (중략) 산니코프의 섬은 현재로서는 전혀 증명되지 않았지만, 몇 년 더 지나면 밝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그에 따라 북극해에 풀들이 우거지는 지역도 늘어가고 있다.

 

➊ 터키 중앙아나톨리아 지역 코니아에 있는 신석기 시대 초기 도시 유적으로, 대략 기원전 7500년에서 기원전 5700년 사이에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글. 박태근

알라딘MD.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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