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3월 2021-03-01   882

[만남] 글 쓰는 소방관 아빠 – 김종하 회원

글 쓰는 소방관 아빠

김종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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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참여사회 편집부로 책 광고를 의뢰하고 싶다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알고 보니 그는 참여연대 회원이자 15년 차 소방관으로, 그동안 틈틈이 쓴 글을 모아 『소방관 아빠 오늘도 근무 중』 책을 낸 저자였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아들 셋을 키우는 ‘글 쓰는 소방관 아빠’ 김종하 회원. 책에는 소방관이자 남편, 그리고 아빠라는 역할 사이에서 스스로를 탐색해온 흔적이 담겨있다. 15년간 치열하게 고민한 만큼, 내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김종하 회원을 2월 9일, 경기도 양평소방서에서 만났다.

참여연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2011년 당시 사촌 형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형이 참여연대를 후원하는 걸 알고 저도 따라서 후원을 시작한 기억이 나네요.

시작은 형을 따라서였지만, 벌써 11년째 후원하고 계세요. 

11년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대단하네요.(웃음) 사실 후원하면서도 참여연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몰랐어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싶어 2019년에 ‘참여사회 읽기’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었죠. 거기서 다른 회원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겠다 싶었고, 마지막에 참여연대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신 것도 정말 좋았어요. 아카데미느티나무의 드로잉 강좌도 관심이 많았는데 집이 멀어서 아쉬워요.

참여사회에 직접 책 광고를 의뢰하셨잖아요. 작가가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는 드문데(웃음).

요즘 책 홍보는 작가가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참여사회에서 가장 즐겨보는 코너가 ‘날개’거든요. 저처럼 참여사회를 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광고를 내기로 했죠. 실은 목표가 3쇄였는데 벌써 2쇄를 찍었어요. 거기다 인터뷰라는 큰 선물까지 받게 되었네요.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셨나요. 

올해로 제가 소방서에 근무한 지 딱 15년이 됐어요. 사실 소방서도 똑같은 직장생활이거든요. 입사했을 때부터 항상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 싶었죠. 그러다 3년 전 119상황실에 근무할 때, 10년 넘게 일했는데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제 자신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그동안 (소방관의) 오렌지색 유니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로 유니폼은 그저 근무복일 뿐이라고 여기고 나니까 오히려 신고 전화를 받는 일도 수월해졌죠. 그즈음부터 119상황실 업무와 일상을 글로 적어서 블로그와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3년 정도 지나니까 책 한 권 분량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모아서 작년 5월, 부산 협성문화재단의 ‘뉴 북 프로젝트’ 공모전에 지원했고 무려 8: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출판하게 됐습니다.

원래부터 소방관이 꿈이었나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소방관이셨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알고 있었죠. 지금은 3교대지만 그땐 24시간 근무였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소방관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웃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소방공무원 시험이 있어서 먼저 시험을 봤고, 합격해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물여섯, 한창 유행에 민감할 나이였는데 입사 첫날부터 머리에 젤을 발랐냐며 지적을 받고 사표 쓸까 진지하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소방관이 된 걸 후회했다’는 표현이 종종 눈에 띄더라고요. 

제 일기장은 늘 이직을 고민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어요. 한때는 다른 일을 해보려고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고요. 소방관도 똑같은 사람인지라 남들 하는 고민을 똑같이 하거든요. 사명감만으로 살긴 어렵잖아요. 책에도 그런 고민과 마음을 솔직하게 담았어요. 그래서 책 내고 나서도 괜히 욕먹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됐죠. 다른 소방관들은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나는 오늘 누구를 구했다’고 책을 쓰는데, 저는 ‘여기는 아닌 거 같아’ 이런 얘기를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솔직한 글을 더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소방관 후배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다고, 이런 얘기를 써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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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대 근무를 하며 육아를 병행하는 ‘소방관 아빠’ 김종하 회원과 세 아들 

책을 쓰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2020년 당시 새해 목표가 책을 내는 거였는데요. 안방 옆의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설마 되겠어?’ 하며 목표를 적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정말 책이 나와서 대형 서점에 제 책이 꽂혀 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사실 그전에는 남들 앞에서 제가 먼저 소방관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책을 쓰고 나선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됐죠. 예전에 어떤 분이 제게 ‘당신에게 소방관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땐 선뜻 대답을 못 했어요. 근데 어느 날 새벽에 근무하다 갑자기 답이 떠오르더라고요. ‘소방관은 저를 계속 고민하게 했지만, 그 고민 덕분에 15년 동안 저를 성장시켜준 직업입니다’라고.

15년이면 웬만한 업무는 다 해보셨겠어요.

행정 근무, 119상황실, 화재 진압 등 여러 업무를 맡았어요. 하남소방서에서 11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에서 3년을 근무하고, 작년 7월부터는 양평소방서에서 화재 진압과 현장 출동업무를 하고 있어요. 사실 소방차 운전은 여기서 처음 해봤는데, 5톤이나 되는 큰 차를 잘 운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출동할 때는 도착하기 전까지 현장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니까 굉장히 떨리더라고요. 소방차를 어떻게 대야 하는지, 호스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동료들이 안 다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죠.

위험한 직업이라 가족들이 걱정하지는 않나요? 

실은 제가 자뻑이 좀 심해서요(웃음). 집에 가면 “나 정말 잘하는 거 같아. 진작 운전을 해야 했는데!” 너스레를 떨죠. 저는 가족들에게 직장에서 있던 일을 다 얘기해줘요. 상황실에서 근무할 때 둘째가 “아빠, 오늘 불 끄고 왔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아빠는 불 잘 안 꺼.” 그랬더니 “그럼 아빠는 불은 못 끄지만 전화를 잘 받는 소방관이네!”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책 부제가 ‘불은 잘 못 끄지만 전화는 잘 받는 아빠와 세 아들 이야기’가 됐어요.

서브

소방관이 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나요.

119상황실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신고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숨을 안 쉬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바로 구급상황관리사를 연결해주는데, 하필 그날은 모두 상담 중이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지도했어요. 같이 구령을 붙여가며 심폐소생술을 도와주는데 저보다 더 침착하게 잘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선 저도 정말 긴장되거든요. 다행히 그 친구가 응급처치를 잘해준 덕분에 구급차가 도착해서 (어머니를) 병원까지 이송할 수 있었죠.

또 한 번은 밤 열 한 시쯤 전화가 왔는데 여섯 살짜리 아이였어요.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 아빠가 집에 없다는 거예요.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왠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아동 방치인가 싶기도 하고요. 잠시 고민하다 아이한테 세수부터 하고 오라고 한 다음, 이름을 물어보고 “무섭지? 텔레비전 켜봐, 어디 어린이집 다녀? 레고는 있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얘기를 하면서 15분 정도 통화했어요. 그러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구급차를 보냈고, 경찰에 요청해 부모님께 연락했죠. 다행히 아동 방치는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방관 아빠’시잖아요. 교대근무에 세 아이 육아까지, 힘들지 않으세요? 

제가 교대근무를 하니까 쉽게 피곤해져서 금세 ‘헐크’로 변하거든요. 피로도가 올라가면 별것도 아닌 거로 짜증도 내고, 그럴 땐 가족들한테 좀 미안하죠.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힘을 가장 많이 얻어요. 일부러 아이들과 여행도 다니고, 매주 도서관 가서 코코아도 한 잔씩 마시고요.

한 번은 큰아이 가정통신문에 “나는 집안에서 필요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스스로를 10점 만점으로 체크했더라고요. 제가 큰 아이를 불러 안아주고 있는데 그 뒤로 쌍둥이가 줄을 서더니 저를 안아주면서 “아빠도 필요한 존재예요” 그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아이들은 부모 등을 보며 자란다고 하는데, 내가 아빠로서 그래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서로 보듬어주고 안아 줄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죠. 책이 나왔을 때도 아이들한테 제일 먼저 한 권씩 나눠줬어요. 너희들 덕분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앞으로 어떤 ‘소방관 아빠’가 되고 싶으신가요.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인데요. 앞으로도 저는 아빠로서, 또 소방관으로서 끊임없이 고민할 거고요. 고민의 해답은 못 찾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길을 찾아내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제 모습을 보면서, ‘김종하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공통질문 드릴게요. 김종하 회원에게 ‘참여연대’란? 

참여연대는 119다. 시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신속하게 정책을 만들어서 도와주니까!


글. 금민지 

시민객원기자. 다큐멘터리, 상담, 명상, 자연 치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 주한독일문화원 온라인매거진에서 도서관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길을 찾아 글이나 강의, 다른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꿈이다.

사진. 미디어홍보팀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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