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6월 2021-06-01   2042

[보자] 혼자 사는 여자가 본 〈혼자 사는 사람들〉

혼자 사는 여자가 본 〈혼자 사는 사람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극적인 사건이 몰아치거나 화려한 미장센을 전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 ‘진아’(공승연 분)의 조용한 일상을 덤덤히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초중반부 몰입감이 상당하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감정을 자극당할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에너지 절약형 인간의 관계 맺기

영화는 진아의 일터에서 시작된다. 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원 진아는 능력을 인정받는 사원이다. 그는 고객의 부당한 요구나 지나친 언사에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여유로움을 유지하며 ‘모범 답변’을 돌려준다. 일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다. 콜센터의 강도 높은 감정노동은 인간의 기력을 소진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래서인지 진아가 친구들을 만나 재잘대는 모습은 영화에 비치지 않는다. 밥도 매번 혼자 먹는다. 혼자 온 손님을 환영하는 조용한 식당에 가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 와 집에서 먹는 식이다. 나는 이것을 고객 이외의 다른 사람과 대화를 단절함으로써 직장 아닌 공간에서 감정노동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에너지를 보존하는 생존방식이라고 해석했다.

 

길을 걸을 때, 밥을 먹을 때, 휴식을 취할 때, 타인의 소음은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는 침입이다. 여기에 이어폰이 도움 된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도구. 그 덕에 진아의 일상은 적막하다. 연출은 절제된 음향효과와 음악의 활용으로 이를 강조한다. 영화를 보는 이도 어느덧 진아의 질서에 익숙해지고, 말을 거는 타인을 성가시게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혼자 못 사는 중년 남자

가장 거슬리는 존재는 진아의 부친(박정학 분)이다. 그는 자꾸 사망한 ‘엄마’의 휴대폰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딸이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고 살림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그가 17년 간 가족과 연을 끊고 살다가 불과 2,3년 전 모친과 재결합했으며, 그 짧은 기간을 대가로 사망한 모친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뻔뻔하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유산을 독차지하고, 진아의 성장 과정에 1도 기여한 것이 없으면서 노쇠하고 외로워졌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딸에게 기대려는 심보가 너무 괘씸하다.

 

이제 진아는 부친의 집이 된 그곳으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변호사가 동반한 자리, 변호사도 이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표정 없이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는 진아를 보며, 나는 진아가 그로써 부친과 ‘손절’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을까? 진아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몰래 부친의 집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종종 부친을 지켜보는 일이다. 

 

일화 하나. 부친은 진아의 관심을 얻고 싶어 “아파서 병원에 왔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진아는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부친이 병원이 아니라 집 안 거실에 있음을 안다. 기가 찬 진아가 전화를 거니 부친은 병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관심병자’그 자체다. 그 밖에도 춤바람 나서 혼자 스텝을 밟는 모습이라든지, 모친의 추모식을 연다는 핑계로 교회 사람들을 집에 불러들여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진아는 차갑게 관찰한다.

 

월간 참여사회 2021년 6월호 (통권 286호)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누구나 각자 1인분의 외로움을 감당한다

진아의 일상을 휘젓는 존재는 부친만이 아니다. 팀장은 우수사원인 진아에게 신입사원 교육을 맡긴다.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살가운 신입사원 ‘희진’(정다은 분). 하지만 진아는 싸늘하기만 하다(공승연은 탁월한 연기로 상대가 눈치 보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안 그래도 적응하기 어려운 업무에, 조직 내 마음 붙일 사람이 부재한 상황에서 신입은 출근을 멈춘다.

 

“그거 알아요? 담뱃불을 성냥으로 붙이면 연기가 다르대요.” 어딘지 초점 나가 보이는 눈빛과 말투의 옆집 남자도 진아에게 말을 건넨다.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나는 이 장면을 매우 경계하며 지켜봤다. 그가 성적 불쾌감을 주거나 지나치게 진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으나, 일주일 뒤 그 남자가 자기 방에 쌓아둔 포르노물에 깔려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남자가 살던 집에 새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 분)은 넉살 좋은 ‘인싸’로 보인다. 전에 살던 이를 위해 제사를 준비하기까지 한다. 그저 형식적인 ‘귀신 달래기’가 아니었다. 성훈의 고요한 옆모습을 보며 진아는 진심 어린 추모의 마음을 느낀다.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이를 추모하는 남자가, 아내를 추모한다는 핑계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고독을 벗어나려는 부친보다 훨씬 낫다고 진아는 생각했을 것이다.

 

옆집 남자가 일으킨 파문은 진아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여기서부터는 어쩐지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진아의 ‘급발진’에 머리로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으나 감정은 차게 식었다. 

 

특히 진아가 희진에게 사과하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매끄러운 대사를 줄줄이 말하는 것을 보며 대본 너머 창작자의 존재를 의식했다. 실제 있을 법한 인물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느낌을 주며 몰입감을 선사했던 영화의 미덕이 퇴색하는 순간이다. 또한 진아와 부친의 관계는 좀 더 ‘패륜’적이고 논쟁적인 방식으로 끝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인생사 ‘맺고 끊음’을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어떤 고통은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억압된 것이며, 응어리진 감정은 건강한 방식으로 제때 해소해야 한다는 것, 피곤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바싹 붙은 관계는 좀 곤란하다는 것까지.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5월 19일 개봉해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혼자사는사람들 포스터

혼자 사는 사람들 Aloners

2021 | 한국 | 드라마 | 90분 

감독 홍성은 출연 공승연, 박정학, 정다은, 서현우 

 


글. 최서윤 작가

〈월간잉여〉 편집장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시는데 휴간한 지 오래됐습니다. 가장 최근 활동은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한 것입니다. 화가 나서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화가 나면 창작물로 표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가 봅니다. 종종 칼럼이나 리뷰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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