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6월 2021-06-01   472

[여는글] 혜월 선사의 재테크

여는글

혜월 선사의 재테크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해남 대흥사 소속의 작은 암자에 머물고 있었다. 암자의 살림은 매우 곤궁했다. 그 암자는 신심이 깊은 어느 서울 불자가 사재를 보시하여 지어진 것이었다. 창건주는 수행하는 스님의 최저 생계를 위해서 몇 마지기 논을 암자 이름으로 마련해 주었는데, 논을 경작하는 사람이 해마다 얼마간의 사용료를 쌀이나 돈으로 지불하고 있었다.

 

암자의 소임자로 들어간 첫해 가을, 경작자가 얼마간의 돈을 사용료로 가지고 왔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놓인 돈을 보니 몹시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는 비바람과 뙤약볕을 감내하며 농사를 지었을 터였다. 나는 단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손발 한 번 움직이지 않고 돈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지주가 되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먼저 그에게 차와 과일을 대접했다. 그리고 조금 긴장한 듯한 그이와 농사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암자 소유 논의 소출량도 넌지시 물었다. 나는 전임자가 계약한 금액대로 납부영수증을 내어주고는 그가 가져온 돈에서 십만 원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드렸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불로소득은 사회의 공정한 질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가를 바라거나,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도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좋지 않다. 이른바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대박’을 꿈꾸는 세간의 풍조가 염려된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며 하루아침에 어마어마한 돈이 떨어지기를 꿈꾼다. 

 

이런 사회 풍조에서 문득 바보스러운 재테크를 했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절집에서는 그를 ‘천진도인’이라고도 부르고, ‘개간 선사’라고도 불렀다. 그의 법명은 혜월1861~1937이다.

 

혜월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평생 실천하였다. 가는 곳마다 불모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었다. 그래서 ‘개간開墾 선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또한 매우 천진하고 자비심이 넘쳤다. 까치와 까마귀 등 산새들이 날아와 혜월의 몸에 앉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1921년, 61세의 혜월은 부산 금정산 선암사 주지를 맡았다. 이때에도 그는 산지를 개간해 논으로 만들기 위해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 그 돈으로 일꾼을 고용하고 밭을 일구었다. 그런데 일꾼들이 그의 설법에 정신 팔려 일이 진척되지 않아 겨우 자갈밭 세 마지기가 개간됐다. 이에 제자들이 불평했다. “다섯 마지기를 팔아 겨우 세 마지기를 만들면 손해가 아닙니까?” 이에 혜월 선사는 이렇게 답했다.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자갈밭 세 마지기가 더 생겼으니 좋지 않으냐.”

 

내원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혜월은 대중들과 함께 황무지 2천여 평을 몇 해에 걸쳐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었다. 이를 욕심낸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그 가운데 세 마지기 논을 팔게 되었다. 그런데 돈은 겨우 두 마지기 값만 받고 팔았던 것이다. 제자들이 그를 힐책하자 혜월 선사는 이때도 이렇게 말했다. “논 세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여기 두 마지기 논값이 있으니, 논이 다섯 마지기로 불어버렸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도 많으냐! 중의 장사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

 

혜월 선사의 재테크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에 비해 우리들의 재테크는 어떠한가? 노력하지 않고 돈을 원한다. 노력한 것에 마땅한 돈을 원하지 않고 늘 그보다 넘치게 원한다. 주택, 부동산, 비트코인, 이런 것들을 놓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대박을 꿈꾼다. 단순 상식으로 묻는다. 땀 흘리지 않고 뭔가를 원하는 게 맞는 일인가? 노력한 이상으로 과도하게 원하는 게 맞는 일인가?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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