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03월 2022-03-01   981

[회원인터뷰] 낮은 곳을 향하는 사제의 마음 – 양두승 회원

낮은 곳을 향하는 사제의 마음

양두승 회원

참여연대_월간참여사회_2022년03월호_37
ⓒ 박영록

매년 연말이면 참여연대에 달력이나, 수도원에서 빚은 포도주 등을 보내주시던 양두승 회원은 올해 1월 사제 서품을 받은 새내기 천주교 신부님이다.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으로 처음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신부님은 오랜 시간 힘든 수련 과정에서도 어떻게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을까? 미카엘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인천 석남동성당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것저것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내주시는데 그중 밀레의 〈만종〉이 그려진 엽서 크기의 초청장이 눈에 띄었다.

사제 서품식과 첫 미사 날짜가 적혀 있네요. 종교적인 그림이 아닌 밀레의 〈만종〉이 그려진 게 인상적인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그림 속 바구니에는 원래 농작물이 아닌 죽은 아기가 그려져 있었대요. 밀레의 친구가 그걸 보고 사람들이 혐오감을 가질 테니 바꾸라고 해서 감자를 새로 그려 넣었다고 해요. 사람이 살면서 가족을 떠나보내거나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면 절대자인 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다가 결국 신을 떠난다고 하잖아요. 근데 이 그림에서는 그런 원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편도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이죠. 그래서 저는 이 그림으로부터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결국 돌아갈 곳은 절대적인 존재자, 곧 신이겠구나 하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 마음을 새기고 싶어서 이 그림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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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제 서품 상본’이라는 이름의 엽서는 사제들에겐 출사표와 같다. 평생 자신이 선택한 사제의 길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 양두승

교사로 재직하다가 늦깎이 신부님이 되셨어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러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교직 생활 중 듣게 된 교감 선생님 이야기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어요. 아들이 삼수인가 사수를 해서 교대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 굳이 내가 아니어도 (교사를) 할 사람이 차고 넘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교사나 공무원 등 비교적 안정적 일자리에는 사람들이 많고, 성당이나 종교 관련한 곳에는 일하려는 사람이 부족하니까 제가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수도원 생활이 나와 맞는지 일정 정도 살피는 기간이 있었는데, 경험해보고 나니 형제적인 공동체 생활 안에서 가난하지만 즐겁게 사는 모습이 좋았어요. 수도자의 생활이 기도하고 노동하고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은 다 비슷한데요, 저는 성직을 지망해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사제직을 맡기 위한 과정을 거치게 된 거죠.

지난 1월 사제 서품을 받으셨는데, 소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사제가 되기까지 고비였던 순간은 없었나요?

사제가 되려면 우선 신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요, 7년간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해야 했어요. 학기 당 18~20학점씩 수업을 듣고 철학과 라틴어, 히브리어, 희랍어 등 낯선 외국어 공부도 해야 하고, 설교 수업이나 본당 운영을 위한 행정분야도 배워야 해요. 

또 하나는, 수도자로서 ‘가난, 순명, 정결’ 세 가지 서약을 하게 되는데요, 함께 소유하고 함께 나누기에 개인적 소유가 없는 가난, 하느님과 교회, 수도회 장상에 대한 순명, 독신 생활에 대한 정결을 의미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제가 되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때문에 힘들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정말 힘든 건 공동생활이었어요.(웃음) 가족끼리도 부딪히는데 몇 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160~170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그것도 남자들끼리 모여사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도 지향점이 같고 동일한 양성 과정을 받으며 다듬어져서 그나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같이 살면서 즐겁고 힘이 될 때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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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록

참여연대와 2017년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으로 인연을 맺으셨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수도원에 입회하면 1~2년 정도 ‘지·청원기’라고 해서 촘촘히 짜인 시간표에 따라 통제된 생활을 해요. 하루 5~7번 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맡은 집안일과 노동을 수행하지요. 그리고 또 다시 1~2년 정도 수련기를 거치는데요, 외출이나 휴가 없이 외부로부터 고립돼서 기도와 노동만 하는 단순한 생활이에요. 그리고나서  5~6년은 1년마다 서약을 갱신하면서 수도원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때 비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본인의 관심 분야를 정해 바깥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죠. 

다른 형제들은 공부방, 노동사목회관, 서울역 쪽방촌, 노인요양원 또는 알코올중독병원 등에서 봉사를 하는데, 저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서 종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과거 전교조 활동 때 접했던 참여연대를 선택했어요. 

다른 신부님들도 미카엘 신부님의 참여연대 활동을 알고 계신가요?

이곳에선 모두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데요.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우편물이 오는 걸 보면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형제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참여연대에 후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죠?(웃음) 후원뿐만 아니라 수도회 형제 대부분이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도 경남 산청 수도원에서는 다같이 모여 기후위기, 생태에 관한 연수를 진행하고 있고요. 

정식 사제가 되셨는데, 앞으로 어떤 사제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종신서원 하기 전에 방문했던 인도 북동부 롱저리에서 만난 브라이언 신부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신부님은 그곳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 얹은 곳에서 나무판에 글씨를 쓰는, 아주 열악하고 가난한 곳이었죠. 저희가 3년마다 인사이동이 있어서 신부님이 마침 그곳을 떠나게 되면서 저한테 그러더시라고요. 몇 년 후에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요. “여긴 전기도 물도 없고 시설도 열악한데 왜 이런 곳에 다시 오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아무도 롱저리에 안 오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라도 와야 한다는 거예요. 이곳의 신자들에게도 신부가 필요하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참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그 뒤로 신부는 신자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곳에서 먹고 입고 자고,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돼 있잖아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보호 받는 입장이기도 하죠.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좀 교만한 것 같고요, 우선 제가 서있는 위치에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미카엘 신부님에게 ‘참여연대’란? 

로봇청소기요.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이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 다른 일을 하더라고요.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참여연대는 국회나 정부를 감시하고, 민생, 노동인권 등을 위해 일해주시잖아요. 참여연대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다양한 분들이 함께 활동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그런 참여연대에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또 참여하겠습니다.


글 이은주

사진 박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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