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사월에
글 진영종 참여연대 공동대표
매우 우울한 사월이다. 특히 이천이십이년 사월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탄하고, 아쉬워하고, 분노하고 이로 인해 우울함을 느낀다. 왜 우울한가, 아니 왜 우울해야 하는가? 우울함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다.
영국 시인 T. S. 엘리어트는 사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뒤흔든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망각의 겨울,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졌던 죽음의 계절에도 여지없이 봄은 온다. 이러한 나태와 망각과 죽음에 익숙한 만물에게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사월의 봄비는 너무나 잔인한 것이다. 하지만, 잔인함 가운데 생명이 있고, 죽음 속에서 삶이 키워지는 것이다. 새롭게 떨쳐 일어나지 않는 한 영원한 겨울이고, 무기력한 죽음 같은 겨울잠을 영원히 자게 될 것이다.
진지하게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순간이 전환기며, 순간순간이 의미 있고 특별한 법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사월은 매우 특별하다. 제주 4.3의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제주 검찰은 대통령 선거 바로 다음 날인 3월 10일, ‘4.3 일반 수형인들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하여 항고를 하였다. 우리의 사월을 우울하게 만든다.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8주기가 되는 날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바닷속에 침묵한 채로 있다. 아니, 진실은 바닷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다. 전국을 촛불로 밝혔던 열망이 진실을 어둠 속에 감추려는 자들까지 비추지는 못했다. 촛불 정부라고 자임한 정권에서도 밝히지 못한 어둠을 이제 우리는 다른 성격의 정부에서 밝혀내야만 한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월을 우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울함을 떨쳐야만 새로운 진실을 밝힐 수가 있다.

4월 19일은 혁명기념일이다. 시민들의 손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의미 있는 날이다. 비록 군사 쿠데타에 의해 뒤집혔지만, 그 정신은 이후 우리나라 민주화 투쟁의 뿌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87년 유월 항쟁과 촛불 혁명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4월 혁명의 정신이 퇴조한 것처럼 보이는 이천이십이년 사월이다. 그러나 계절이 변함없이 우리를 깨우듯이 우리도 우울함을 깨고, 봄비에 깨어나는 뿌리같이 새로운 날을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참여연대는 올해 대통령 선거로 인해 총회를 뒤늦게 치렀다. 코로나로 인해 3년 연속 온라인으로 참여연대 회원, 상근활동가,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열정적으로 헌신한 사람들 가운데 직책에서 물러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만큼 그 자리를 새롭게 떠안고 갈 용기 있는 사람들도 등장하였다. 대통령 선거 후 정치적인 조건이야 변화가 있었지만, 참여연대가 해야 할 역할은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해야 할 역할이 더 분명해졌으며, 우울한 정치적 조건이 우리를 더 냉철하게 만들어 준다.
대통령 선거 전 우리가 우울함을 느끼지 않았을 때 정말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는가를 성찰할 필요도 있다. 특히 가장 잔인한 이천이십이년 사월의 우울함 속에서 활기찬 생명력을 찾아서 만물이 소생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무기력에 빠져 잠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지만, 생기 없이 시든 뿌리에서 새 생명을 꿈꾸는 사람에게 사월은 가장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달이다. 참여연대는 활기찬 사월을 함께 열어나가길 바란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