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06월 2022-06-01   1732

[인터뷰] “기억이 기적을 만든다” – 영화 〈공기살인〉 조용선 감독

“기억이 기적을 만든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다룬 영화 〈공기살인〉 조용선 감독  

 

월간 참여사회 2022년 6월호 (통권 296호)

ⓒ박영록

 

휠체어에 앉은 채 산소 호흡기를 안고 국회 회의에 참석하는 아이를 본 적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할퀴고 간 상처는 그렇게 뚜렷했다. 상흔의 수치를 보면 더 참담하다.「가습기살균제 노출 실태와 피해 규모 추산」이라는 논문을 보면, 국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약 95만 명, 사망자는 약 2만 366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조용선 감독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영화 예매와 정보 확인을 위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실제 피해자입니다. 그 이후 저는 지금까지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암 환자였던 엄마 옆에, 돌아가실 때까지 하염없이 (가습기를) 틀어놓았었던 과거 일에 지금도 후회와 한스러움이 밀려드네요. 꼭 많은 분들이 보셔서 사회적 공감과 관심으로 나쁜 기업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발 못 붙이도록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기대와 걱정을 모두 안고 영화를 만들었을 조용선 감독을 지난 5월 11일 서울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 영화 재밌다. 의외로 재밌다. 영화적 재미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자신 있다는 그의 말속에 어떠한 절박함도 있는 듯했다. 영화가 가져올 변화를 기대하며 그를 만났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6월호 (통권 296호)

공기살인 TOXIC

2022 | 12세 관람가 | 드라마 | 한국 | 108분  

감독 조용선 출연 김상경, 이선빈, 윤경호, 서영희 

 

–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영화의 원작 소설 『균』을 집필한 소재원 작가가 책을 주면서 ‘형이 꼭 해줬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꼭 나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끄럽게도 처음엔 ‘어차피 나와 관련 없는 사건이고 이런 종류 참사는 많이 있었으니까’라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아픈 사연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까 단순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하나씩 사건 조각을 맞추다 보니까 ‘공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계속됐던,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가 명확한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카르텔로 뭉친 최악의 인재’였다. 언론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위로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이 사건은 분명히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 범죄다. 그런 점에서 화두를 던질 필요가 있었다.

 

– 영화 연출 전에는 이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나?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한 기업이 무책임하게 유해한 상품을 개발했고, 일부 사람들이 많이 아프거나 죽었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 영화의 제목인 ‘공기살인’은 어떤 의미인가? 연출에서 어떤 부분을 신경 썼는지도 궁금하다.

 

이 사건을 보면 피해의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가해자는 공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런 의미다. 〈공기살인〉을 보신 관객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씀하시는데, 영화는 실제 사건을 굉장히 순화한 것이다. 사건을 나열식으로 설명하는 식의 연출은 지양했다. 재미가 있어야 전달력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쉽고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 자료 조사나 고증 등 준비 과정에만 6년이 걸렸다. 각본도 97회나 수정했다고 들었다. 이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관한 논문, 소장, 피해자들의 사연을 거의 다 살폈다. 촬영이 늦어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던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2011년이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흘렀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에는 폐 질환만 증상으로 지적됐지만, 지금은 다른 질환과의 연관성도 이야기되고 있지 않나? 우리 영화는 가습기살균제 유해 성분 가운데 PHMG1만 다루고 있다. CMIT/MIT2 등의 독성도 문제인데 아직까지 법적으로 위해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영화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연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PHMG 이야기만 하게 된 것이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6월호 (통권 296호)
영화 〈공기살인〉의 한 장면 ⒸTCO㈜더콘텐츠온

 

– 영화를 본 피해자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개봉하기 3일 전까지, 언론에 최초 공개되기 전까지도 여러 오해를 받았다. ‘피해자를 불쌍하게만 묘사하고 기업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시사회 때 피해자 가족들을 모셨는데 다행스럽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내 몸이 증거다’, ‘이 사건은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영화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신 것 같다. 

 

시사회 현장에서 영화를 보러온 피해 가족 한 분이 우리 아들 한번 안아줄 수 있겠냐고 말씀하셔서 아이를 안았는데, 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야윈 몸이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냥 다 같이 울었다.

 

– 극 중 등장인물이나 업체명은 가상이지만, 기업이 독성 실험을 조작하거나 위험성을 알고도 판매하려 했던 장면 등은 실제 사건과 거의 유사하다. 실화를 영화화하는 데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준비하는 6년의 시간 중 절반은 그것 때문에 고생했다. 시나리오만 보고 투자하겠다는 곳은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캐스팅 등 여러 벽에 부딪힌 것도 사실이다.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던 기업의 모기업은 광고시장의 큰 손이기도 하고…. 배우들도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주연 배우인 김상경 선배(정태훈 역)도 처음엔 사회적 영화에 거리를 두려고 하셨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보고 ‘나라도 괜찮겠냐. 같이 해보자’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결과적으로 김상경 선배가 출연을 결정하면서 동료 배우들이 부담을 덜고 참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영화 속에는 ‘빌런’이 하나의 기업으로만 등장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수십 개 기업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독성 실험을 조작하고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것,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다시 살균제를 판매하려고 했던 행태들은 여러 기업이 보였던 ‘현실’ 그대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형사재판 주요 일지

2016

05.31 검찰, 신현우 전 옥시대표 구속기소 

07.13 검찰, 존리 옥시대표 불구속기소 

 

2018

01.25 신현우 전 옥시대표 징역 6년, 존리 전 옥시대표 무죄 확정 

 

2019

05.03 검찰,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구속기소 

06.14 검찰,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불구속기소 

 

2021

01.12 법원,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및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 무죄 선고 

05.18 홍지호 전 대표, 안용찬 전 대표 항소심 시작 

2022

05.12 신현우 전 옥시대표 만기출소 

 

 

 

 

– 윤경호 배우(서우식 역) 인터뷰를 보니 촬영 현장에서 감독과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 특히 어떤 장면이 촬영하기 힘들었나?

 

사실 경호 형 같은 경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극 중 내부자이자 카르텔 집단의 하수인 역할이었다. 그런 빌런 역할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했다. 배우들이 많이 고생했다. 이선빈 배우(한영주 역)는 코피 쏟을 정도로 열연했다. 자신의 연기가 피해자들에게 실망을 줘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에서다. 서영희 선배(한길주 역)는 실제로 그 당시 가습기살균제를 쓸 뻔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더 공감하고 힘들어했다. 스태프 중에도 실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분이 있는데 그로 인해 가족들이 아픔을 겪고 있기도 했다. 김상경 선배는 ‘영화를 두 번 보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로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설정이 너무 비극적이라서다. 그러나 우리 영화는 실화를 그리고 있지 않나.

 

– 김상경 배우는 국회 특별 시사회(4/29)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영화 마지막 ‘정태훈’이 식약처,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관료들을 향해 가습기살균제를 뿌리고,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과 오버랩 됐다. 영화 마지막의 배경이 제조회사가 아니라 국회인 상징적 이유가 있나?

 

진상규명과 책임처벌에는 정치권의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에 같이 출연했던 성일종 의원과 전재수 의원 도움으로 국회 시사회를 열 수 있었는데 두 의원이 영화 얘기를 듣고는 ‘부끄럽다. 함께 할 수 있는 일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국회 시사회에서 30분만 보고 일어나려 했는데 결국 끝까지 다 봤다는 의원도 있었다. 다행히 최근 뉴스를 보니 이 사건에 관해 국회가 조금은 움직이는 모양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아닐까? 국회가 움직여야 실질적 정책 변화가 생긴다. 러닝타임 한계 때문에 영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덜어냈다. 내가 가진 시간은 고작 100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내용은 기자와 전문가들이 채워줬으면 좋겠다. 의학적으로 법률적으로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와 의미를 짚어주길 바란다.

 

– 지난 3월 28일 참사 11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피해구제 조정안을 냈지만 9개 기업 중 옥시와 애경이 거부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영화에선 ‘미국으로 재판 넘어가면 회사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제도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의도였다. 흔히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말하지만 우리가 정말 글로벌 스탠다드였다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연관된 기업은 다 망했어야 한다. 1994년 처음 가습기살균제가 출시될 당시만 해도 홍보 문구에 이런 표현이 등장했다. ‘세계 최초, 국내 유일, 엄청난 발견.’ 그리곤 2011년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17년 동안 1천만 병이 팔렸다.

 

그런데 왜 그 ‘좋은’ 제품을 수출하지 않았을까? 제품의 유해성을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기업체들은 법 제도와 독성 실험 기준이 미비했다고 항변하지만 의심스러웠다면 바로 중단했어야 했다. 가습기살균제로 무려 2만 명이 목숨을 잃고 95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있을까. 제조 기업들이, 책임 있는 정치·제도권 인사들이 자신들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미안하다’는 진솔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

 

월간 참여사회 2022년 6월호 (통권 296호)
지난 5월 10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유족,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이 1,774번째 희생자인 故 안은주 씨 추모와 옥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환경보건시민센터 

 

–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만들기 전후 달라진 점이 있을까? 

 

저도 엄청 성실하게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웃음) 예전에는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 ‘시끄럽다’고 느낀 적 있었다. 이제는 ‘왜 시끄러울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저 사람이 아우성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얘기라도 들어보자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전에는 영화를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특권’으로 생각했다면 이젠 내가 누군가의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명감이 조금 생긴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권한을 남용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상업 영화를 찍는 선배들에게도 ‘돌아가면서 한 편씩 (사회적 영화를) 하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잊지 말고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예방적 차원이지, 누군가를 질타하고 혼내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게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 극장 상영이 끝나면 OTT 서비스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영화 〈공기살인〉을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한 번쯤 영화를 보시면,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카르텔이 형성되고 어떻게 피해자들이 소외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거다. 원작을 쓴 소재원 작가 말을 빌리면, “기억이 기적을 만든다”. 1천만 병이 팔렸다는 건 국민 5명중 1명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거다. 관공서, 학교, 군대 등 곳곳에서 쓰였다. 큰 병에 걸리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간 분도 있고, 천식과 비염을 앓으면서도 가습기살균제 탓인지 모르는 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 참사는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당신들 때문에 사람이 죽은 거잖아” “우리가 증거다”라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먹고 사는 데 지치고 힘들다 보니 피해자 분들의 외침이 시끄럽고 불편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지켜봐주시면 좋겠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오늘처럼 진지하게 다뤄져서 그렇지, 우리 영화 재밌다. 의외로 재밌다. 영화적 재미도 충분하다. 많이 시청해달라.

 

1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olyhexamethylene guanidine 살균제나 부패 방지제 등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

2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Methylchloroisothiazolinone / 메틸이소티아졸리논Methylisothiazolinon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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