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국가 간 ‘경쟁’ 아닌 ‘공동체’를 상상할 때” – 김형종 교수

“국가 간 ‘경쟁’ 아닌 ‘공동체’를 상상할 때”

김형종 회원ㆍ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월간 참여사회 2022년 7-8월호 (통권 297호)

국제 정세가 어지럽다. 국제관계는 정말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일 수밖에 없을까? 신뢰와 협력의 관계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와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1과 같은 신뢰와 협력의 모델을 만들어왔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오랜 기간 아세안에 주목해온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국제관계학과 교수, 김형종 회원에게 아세안과 국제연대에 관해 물었다. 더불어 지난 5년간 참여연대 아시아 전문 팟캐스트 <아시아팟>을 진행해 온 그에게 100회를 앞둔 소회와 의미도 함께 들어봤다. 

2012년부터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 한국에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열렸는데 그때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중대회를 진행했어요. 저는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던 중이라 자원봉사로 참여했고요. 이후 10여 년간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셈 회의 때 만났던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이 저를 찾아오셔서 함께 하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참여연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최초로 말레이시아 말라야 국립대학UM, Universiti Malaya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말레이시아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는데 한국은 너무 강대국 중심 외교에 치우쳐 있잖아요. 동남아를 우리보다 아래로 보고 부정적인 선입견을 품고 있죠. 그래서인지 오히려 동남아에 관심이 갔습니다. 처음엔 공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관심 있는 친구들과 모여서 동남아 뉴스 찾아보고 발표하는 소모임을 하는 정도였는데요, 생애 두 번째 배낭여행을 말레이시아로 다녀오면서 본격적으로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바람이 생겼어요. 

2016년부터는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계신데 어떤가요, 어려움은 없나요?

국제연대위원회는 참여연대의 다른 활동 기구들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위원장은 실행위원이 해야 할 기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현안도 파악하고 부서의 입장도 정해야 하는 역할이다 보니 처음엔 부담이 컸어요.(웃음) 하지만 다른 실행위원들께 많이 배우면서 활동해왔고요, 아시아 지역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국제개발협력 관련 법안이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에도 주의를 기울여 왔어요. 

국제연대가 어떤 하나의 이슈에 집중해서 성과를 만들고 매듭짓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작더라도 의미 있는 대응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을 알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아시아팟>도 시작하게 됐죠. 

어려운 점이라면 국제연대를 할 때 현지의 요구와 우리의 방향이 다를 때예요. 예를 들어 현재 우크라이나는 당장 무기 지원을 원하는데 궁극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관점에서는 무기 지원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미얀마 쿠데타가 터졌을 때도 비인도적 상황이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막으려는 1차 목표는 같았지만, 논의가 깊어질수록 개입 수준이나 방법에 대한 격차가 생기더라고요. 이 부분은 아무래도 국제연대 활동이 갖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로힝야 문제, 라오스 댐 붕괴 사고, 홍콩 민주화 시위, 미얀마 쿠데타 등에 꾸준히 연대해오셨어요.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국제연대’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우선은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 등 위기를 겪는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대로 알고 널리 알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 공동성명에 연명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국제 여론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거든요. 미얀마 군부 비즈니스와 관련된 여러 세계적 기업들이 투자나 비즈니스를 철회하게 된 것도 결국 국제적 여론 압박의 결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각 나라의 사정을 알려주는 <아시아팟>은 큰 성과인 것 같습니다. 진행을 맡으시면서 어떠셨나요? 

처음 기획 의도는 언론 보도로 접하는 국제 뉴스들을 시민들이 잘 파악하도록 배경이나 맥락을 잘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평소 조금이라도 내용을 알고 있어야 관심과 연대의 폭이 달라질 테니까요. 그런데 <아시아팟> 진행하면서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홍콩 활동가나 재일교포 변호사, 국내에서 시리아 문제의 심각성과 국제적 도움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는 시리아 청년… 이런 분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과 생생한 고민을 들었을 때 울림이 매우 컸습니다. 공동 진행을 하고 있지만 청중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죠.

기억에 남는 초대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아시아 각 나라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코너 ‘아시아TMI’ 초대 손님들이 기억에 남아요. 같은 나라에 대한 설명도 누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다 보니 그 코너에 출연하셨던 모든 분이 기억에 남고 의미가 컸습니다. 특히 네팔 편에 출연하셨던 오영훈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 기억납니다. 히말라야 전문 산악인에 견줄 만한 경험을 갖고 계셨어요. 그리고 이유경 국제 분쟁 전문 기자도 떠오르네요. 분쟁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고 취재 열정도 대단하셔서 긴 호흡의 역사를 같이 느낄 수 있었어요.

<아시아팟>이 곧 100회를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팟> 애청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아시아팟>은 오랜 시간 특정 국가, 지역, 이슈를 직접 경험했거나 연구한 분들이 함께 만드는 팟캐스트인 만큼 그 나라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 또는 즐거운 시작점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시즌1은 마무리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의미와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서 N개의 ‘아시아팟’이 파생되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에피소드를 다시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 드려요. 이미 다룬 내용에서 특정 분야나 이슈를 파고들면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올 테니까요.

최근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신남방 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전략을 내겠다고 했어요. 앞으로 한국과 아세안은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할까요? 

한국은 그동안 아세안을 경제적 측면에서 많이 바라봤습니다. 이제는 ‘공동체적’ 관계로 나아가야 해요. 경제적 도움이 되면 손잡고 안 되면 손을 놓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 봐야 하는 것이죠. 동북아시아에 속하는 한국, 중국, 일본은 국익을 우선하며 서로 경쟁하고 심지어 지배-피지배 관계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공동체’ 개념이 생소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세안은 군사적으로 무한경쟁을 하진 않아요. 그들이 계속 모여서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동남아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서로 영토 분쟁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적대적인 정책도 있었고요. 영토 분쟁의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쟁으로 발전할 거라는 위협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상호 신뢰와 평화가 안착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역사적, 지정학적 여건에 발목 잡혀 있기보단 동남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차원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아세안이라고 보고요. 국제적으로도 아세안은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왔고, 아세안이 뭔가 하면 중국, 일본, 심지어 북한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공동체’로서 비전을 함께 품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김형종 회원에게 참여연대란? 

‘공동체’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는 개인으로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죠. 참여연대는 이런 문제들이 공동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그 해결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그간 국제 이슈나 국제관계에 대해 궁금하긴 해도 워낙 복잡하고 답답한 영역이라 관심을 소홀히 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가 내 안의 무언가를 꿈틀대게 했다. 한 사람의 세계 시민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 독자들도 올여름엔 <아시아팟> 정주행으로 세계 시민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1 1967년 설립된 동남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공동체.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10개국이 회원국이며, 한국은 대화상대국Dialogue Partners으로서 협력하고 있다.

참여연대 아시아 전문 팟캐스트 <아시아팟> 정주행 하기 ▶ bit.ly/3xRxXce


이은주
사진 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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