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그침의 미학이 필요한 시대

여는글

그침의 미학이
필요한 시대

 

월간 참여사회 2022년 7-8월호 (통권 297호)

 

세간世間이 어수선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편치 못한 연유는 간단하다. 서로들 물어뜯고 싸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우는 이유나 모양새가 매우 민망하다. 한마디로 수준이 너무도 천박하다. 고급스런 언어는 생략한다. 그저 싸우는 짓들을 보노라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커가는 이 나라의 아이들이 그걸 보고 배울까 염려된다.  

 

서로 다른 견해와 가치를 가치고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어찌 다툼이 없겠는가? 다름과 다툼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툼의 이유에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다투는 모양새 또한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 허나 주장과 다툼의 명분이라는 게 대략 봐도 트집 잡기 수준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풍경은 그야말로 악다구니 수준이다. 우려를 넘어 슬프기 그지없다. 

 

보기에 민망한 다툼의 현장을 살펴보자. 대통령 선거 이후 전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집 주변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시위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가에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전임 대통령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고, 사가 주변에는 수갑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감옥에 보내자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증오와 저주의 음산한 기운이 넘치고 있다. 이에 맞서 현직 대통령 집 주변에 맞불을 놓는 사람들 소식도 들린다. 혐오와 보복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집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고통 역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략 봐도 이건 아니다. 나는 양비론의 위험성을 늘 염려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흔히 하는 말로 둘 다 천박하다. 양쪽의 풍경은 모두 옳지 않고 상식과 금도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여기에 우울하고 화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런 문제를 화합과 상생으로 풀어야 할 정치권의 태도다. 법의 정신과 사용이 몸에 밴 대통령이어서 그런가, 자유를 만능의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이어서 그런가? 마을 주민의 고통을 걱정하여 묻는 질문에 답은 역시 ‘법’이다. 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고 있다. 어디 대통령이 하실 말인가. 법을 다루는 법률가들도 법의 사용이 최소한일 때 최적의 사회가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화합과 상생의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 있는 대통령이 법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휘두르고 있다. 많이 염려되고 크게 걱정된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상식과 공정이 오로지 법조문에 묶여 있는 것 같은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매우 위험하다. “전임 대통령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평온하게 사실 수 있도록 배려하면 좋겠다”라는, 이 말 한마디 꺼내기가 그리 어려울까. 정작 본인은 대통령도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임을 말하며 빵집 가시고 팝콘 드시면서 영화 관람하시면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상식’과 ‘교양’이다. 트집 잡고, 가짜뉴스 만들고, 법의 테두리를 빌어 고래고래 욕설하고 저주와 증오를 쏟아내는 그런 모습들을 멈춰야 한다. 또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침’이다. 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식의 궤도에서 벗어난 모습을 바로 보고 그치는 일이다. 어떤 곳을 향해 잘 걷고자 한다면 우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내 편의 허물은 감추고, 다른 편의 허물을 부풀리는 그런 문화를 그쳐야 한다. 

 

수나라 왕통584~617은 『지학止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재주가 높은 것은 지혜가 아니다. 큰 지혜는 멈춤을 알지만, 작은 지혜는 꾀하기만 한다.” 지식과 논리, 법률과 행정 등의 재주를 지혜로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혜는 진실과 사실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상식이고 안목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며, 궤도를 벗어나거나 과잉일 때 멈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민 교수는 『점검』김영사, 2021에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말로 싸워 이기고 달변으로 상대를 꺾는 것은 잠깐은 통쾌해도 제 위엄을 깎고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보게 만든다. 어눌한 듯 아예 말을 멈출 때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힘이 생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듯한 논리를 갖춘 달변은커녕 증오심을 바탕으로 죽기살기로 남을 죽이려고 한다. 허나, 남을 이겨도 그 자리가 자기 죽을 자리다.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 한주, 실상사작은학교 이사장과 철학 선생님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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