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먹물과 쇳밥을 잇는 글쟁이 – 천현우 《쇳밥일지》 저자

천현우 전 용접노동자, 《쇳밥일지》 저자

언젠가부터 청년담론을 말할 때 자주 보이는 이름이 있다. 용접 노동자 출신 기자 천현우 작가다. 1990년생인 그는 ‘요즘 노동자’다. 경남 마산의 실업계 고등학교인 경남전자고를 졸업했고, 대학 2학년 때 실습 나간 창원 공단의 한 하청기업에서 산업재해 사고를 당했다. 2015년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지원을 받아 용접자격증을 땄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8월 《쇳밥일지》를 출간했다. 8월 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쇳밥일지》를 소개하며 “청년 용접공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이 시대 청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상찬하기도 했다.

천 작가의 독특한 인생 경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3월부터 그는 미디어 스타트업 기업 ‘얼룩소alookso’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경남 창원의 블루칼라 용접공에서, 서울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전직한 셈이다. 그의 살아온 얘기를 통해 우리 사회는 요즘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 블루칼라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갖는 인식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본지와 인터뷰 후 조선일보에 기고한 그의 칼럼이 격론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1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 작가는 더 이상 일선에서 용접 일을 하지는 않지만 관찰자, 중계자의 신분으로 더 깊숙이 노동 현장에 들어가 얘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쇳물 말을 먹물 말로 번역하는, 먹물과 쇳밥을 잇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 용접 노동자가 쓴 칼럼은 초반부터 화제였습니다. 어떻게 처음 칼럼을 쓰게 되셨나요?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20대 투표율이 기존 투표들과 좀 다르게 나왔는데, 꽤 여러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얹었어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좀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SNS에 글을 썼죠. 당신들이 말하는 20대가 도대체 누구냐, 20대는 당신들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걸 계기로 칼럼 제의를 받았어요.

– 전에도 기고 제안을 받는 편이었나요? 제안을 받고 어땠나요.

글 자체는 꾸준히 써오긴 했는데, 돈을 받고 쓴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사실 사회정의를 구현한다거나 공적 활동을 한다는 인식은 없었어요. 첫 칼럼 쓰고 여러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블루칼라 노동자) 현실 자체를 거의 모르더라고요. 제가 아는 20대의 세계가, 기자들 세계엔 아예 없는 것 같은 느낌?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현실을 알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들에게 낯선 세계일 테니까 재밌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제가 실제로 겪고 본 얘기를 쏟아내는 거니까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다만 반응들이 좀 천편일률적이라 의외였죠.

– 어떻게 천편일률적이던가요?

‘우리가 이걸 모르고 살았구만, 우리가 잘못했네’ 같은 느낌이요. 오히려 그 반응들 보면서 20대 삶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알게 된다 해도 뭔가가 크게 바뀌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타인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을 가기는 어렵겠다 하는.

– ‘그 이상’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실질적인 변혁이요. 그냥 다들 반성만 하고 구체적인 얘기로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열악한 노동 현실이 문제라는 얘기들 정말 많이 해요. 그런데 보세요. 당장 올해 51일 파업한 대우조선해양도 결국 4.5% 인상안에 합의하잖아요. 현실을 바꾸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 지난 8월 말 《쇳밥일지》를 출간했어요. 책은 어떻게 집필하게 됐나요?

출판사에서 제 칼럼을 보고 제의가 왔어요. 다른 작가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나요. 사실 ‘문재인 픽2’보다 책 내자는 연락이 더 기뻤던 것 같아요.

– 노동 이야기를 다룬 책치고는 빠르게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심상정, 이탄희 의원 등이 SNS에 감상평을 올리기도 했는데, 많은 이들이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스트셀러는 사실 ‘문픽’ 덕분이죠(웃음). 굳이 책 자체에서 의미를 찾자면, 지금까지 노동에 관한 책들은 대체로 옳고 그름에 방점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방식의 서술은 노동의 ‘힘듦’을 묘사하는 데만 매몰되게 해요. 우리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인데, 정작 삶에 대한 얘기는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불행한 과거사도 섞고, 초등학교 동창과 썸을 탄 얘기도 쓰게 됐어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보여준 게 성장소설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요?

… 우리가 공장 바닥 전전하며 보낸 이십대는
그저 통장에 찍힌 얄팍한 숫자 따위가 대표할 수 없다.
사회에서 ‘못 배운 놈년들’로 통칭당하며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는, 자존감을 찌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저항한 결과,
삶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쇳밥일지》 중에서

– 책을 읽어보면 작가님이 겪은 산업재해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필체로 서술했어요. 반면 그 배경에 깔리는 풍경이나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소설처럼 세세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산재 얘기는 일부러 간단하게 썼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듣는다고 생각해서. 인물이나 풍경에 대한 묘사는 제가 소설가 지망생이었던지라 머릿속에 그런 메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록해둔 걸 옮겨 적은 거죠. 언론에 칼럼 쓸 때는 오로지 노동 얘기만 했는데 해보면서 알았거든요. 아 이건 이렇게 쓰면 안 되겠구나. 노동 얘기를 이렇게 풀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삶에 노동 얘기를 섞어서 물을 타자(웃음).

– 천 작가는 용접공 출신 작가이면서 동시에 지금은 미디어 노동자입니다. 노동 현장을 글로 옮길 때 염두에 두는 직업윤리가 있다면요?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읽을까를 많이 생각합니다. 솔직히 현재의 한국에서 블루칼라 노동자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블루칼라 노동자를 꺼리거나 그런 일을 하면 ‘인생 실패’라고 여기는 인식은 바꾸고 싶어요. ‘블루칼라 노동직은 가지 않아야 할 곳’이라든가, ‘거기 가면 인생 끝이구나’하는 식으로는 읽히지 않게 쓰려고 합니다.

–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법과 제도가 실제 현실에서는 잘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산재를 겪는 대상들을 분석해보면 숙련공은 잘 없어요. 크게 두 가지인데, 막노동을 안 해본 사람이 노년이 되어 막노동을 하다가 사고 나는 경우, 그리고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현장이나 학교에서 이런 걸 잘 가르쳐주지 않아요. 제가 산재를 당한 게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산재 처리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어요. 교육의 문제인 거죠. 회사에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화나 접근 자체가 블루칼라 현장일수록 익숙지 않거든요. 맞는 말 하면 바로 잘리기 때문에(웃음). 한국 사회 특유의 위계가 작동하는 지점이죠. 위계 문제와 교육 문제가 가장 큰 두 가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에는 숨기고 싶을 법한 내밀한 개인사들도 많이 담겨 있어요. 평소 타인에게 자신의 얘기를 잘 하는 편인가요?

딱히 부끄러워하진 않아요. 가난에 대한 얘기가 좀 많이 나오는데, 지금은 가난을 콤플렉스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 그럼 어떤 게 콤플렉스인가요? 책에는 스스로를 ‘얼굴이 못생기고 키가 작다’고 쓴 부분이 있던데, 실제 만나보니 그런 느낌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하하(웃음). 예전에는 가난, 외모, 학벌 등등 콤플렉스가 많았어요. 지금은 대부분 많이 극복했는데, 최근에 새로운 콤플렉스가 하나 생겼어요. 출판사에서 오디오북을 만든다고 목소리를 녹음해달라고 했는데, 제 목소리가 생각보다 많이 굵고 위협적이더라고요.

– 콤플렉스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2017년부터 맨몸운동을, 2018년부터는 헬스를 시작해서 지금은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딱히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닌데 운동을 하다 보니까 외모적인 부분이 개선이 되고, 성격도 낙천적으로 변했어요. 아 내가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것도 아니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 됐죠.

– 원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실제 공모전 도전도 해봤나요?

제가 이래봬도 소설 공모전 17전 17패입니다. 막판엔 장르소설 공모전도 도전했었어요. ‘젊은이가 재주는 없으면서 하향 지원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류의 마음의 소리가 갑자기 들려서(웃음).

– 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꿈이었어요. 다들 어렸을 때는 한 번씩 같은 반 여자애들한테 어떻게 인기를 끌지 고민하잖아요. 하필 그때 ‘귀여니’ 소설이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나는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했죠(웃음).

천현우 전 용접노동자, 《쇳밥일지》 저자

– 《쇳밥일지》에 비교적 투명하게 삶의 궤적을 적은 것 같은데 유독 연애, 혹은 결혼의 그림자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시 비혼주의인가요?

음… 자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질문을 듣고 보니 예전에는 비자발적 비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이나 연애를) 생각할 기회가 없다 보니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의 셔터를 내려놓고 살았던 것 같은데. 이제부터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연애를 하자는 마음을 전해본 적도 있는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사실 지방에서 여성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일단 노동 시간이 기니까 시간도 없고, 지방에 여성 자체가 별로 없거니와 남아있는 여성들도 은행원, 교사, 간호사 등등이죠. 뭐랄까. 딱 봐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계급의 엇갈림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은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쪼들림을 막 벗어나는 단계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옷도 샀네요. 생각해보니 몇 년 동안 옷을 산 적이 없어요. 항상 엄마가 어디서 주워다주는 운동복 비슷한 걸 입었거든요.

– 옷은 무슨 옷을 샀나요.

젊은 남성들의 대중적 기본값인 무신사 스탠더드 아이템들을 좀 샀습니다. 제가 패션에 심리적인 장벽이 좀 있어서요(웃음).

– 얘기를 나누다보니 청년담론에서 지방 청년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는 것 같습니다. 청년담론에서 정치권이나 소위 ‘먹물’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끔 나오는 청년 정책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사람들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 일단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우리가 모두 대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걸 구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진짜 필요한 건 현실적인 타협점을 제시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현실적으로 하루 8시간 노동으로 월 250만 원 정도 가져가는 겁니다. 지방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워라밸’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이것조차 안 되는 현실에, 주4일제는 도대체 무슨 얘기란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 실현 가능한 정책보다는 선명성 위주의 정책이 많다는 지적일까요?

주4일제 제안을 심상정 의원이 띄웠는데.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심 의원이 저보다 노동 현실을 더 잘 알 거예요. 그럼에도 주4일제가 왜 튀어나왔을까요? 당심黨心이 그런 거겠죠. 아니면 그런 의제를 정하는 사람들이 주4일제를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요. 사실 하루 8시간 일하고 월 250만 원 주는 게, 그리 만들기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봐요. 그런 걸 맞춰 가다 보면 정책이 되는 게 아닐까요? 정치의 역할도 거기에 있을 거고요. 그런데 지금 누가 주4일 근무를 보편적인 제도로 만들 수 있겠어요.

– 주 52시간 노동제도 말이 많은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 정책 잘 한 거라고 봐요. 많은 지방 노동자들이 그 정책으로 삶이 나아졌어요. 주 60시간씩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애 키우는 일 다 해내던 강철 같은 경공업 누님들이 52시간제 도입된 이후에 너무 좋다고 해요. 물론 조선소처럼 사람을 사람답지 않게 막 굴려서 돈을 버는 곳들은 52시간제 도입 후 힘들어졌지만, 양쪽을 견줘 보면 주 52시간제가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 한 인터뷰에서 “먹물과 쇳밥을 잇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제가 경험한 건 이제 다 털었으니까, 앞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싶어요. 지금의 노동 현장 중계는 좀 피상적인 느낌이에요. 노동 전문기자라고 해도 결국 본인이 체험한 게 아니니까 다양한 맥락을 적확하게 풀어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제가 노동 현장의 공기를 그래도 조금 더 잘 아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쇳물’들의 말을 ‘먹물’들에게 번역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 천현우,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 〈조선일보〉, 2022.09.15
2 문재인 전 대통령이 SNS를 통해 책을 추천한 일 혹은 그 책을 가리키는 신조어


김동환
사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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