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지하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지하 주거의 양면성

반지하 주택에 사는 자매의 일상을 다룬 웹툰 〈반지하 셋방〉에서 작가는 반지하 주택의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수압이 강하고, 여름과 겨울에 덜 덥고 덜 추워 냉난방비가 절약되니 ‘꽤 살만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간 욕실이 없던 집이라든가, 너무 낡아 난방이 잘 안되던 집, 비만 오면 전기가 나가던 집 등등 불편했던 많은 집들을 전전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두 자매에게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9만 원으로 반려견 순애, 루비와 함께 살 수 있는 반지하 주택은, 상대적으로 꽤 살만한 집이다.

서울의 높은 민간 전·월세 주택가격을 생각하면, 지하 주거는 열악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도시 저소득층이 선택할 수 있는 쪽방·고시원 등보다는 상대적으로 넓고 양호한 공식 주택의 유형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지상의 방 한 칸’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이들에게 반지하 주택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선택지일 수 있지만,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주거라는 점에서 적정 주거라고 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 8월 초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집중 호우로 관악구 신림동 일가족에 이어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던 사람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이는 지하 주거의 열악함을 비극적으로 보여줬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애초 1962년 제정된 ‘건축법’에서는 지하에 방을 설치는 것을 금지했다 출처 네이버영화

지하 주거의 역사와 현황

반지하를 소재로 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불어, 영어 자막을 만들 때 반지하에 해당하는 정확한 단어가 없다는 걸 알았다’라고 말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흔치 않은 지하 주거가 우리에게는 도시의 가난한 서민들의 집으로 사용된 지 오래다.

애초 1962년 제정된 ‘건축법’에서는 지하에 방을 설치하는 것을 금지했다. 당시 건축법 19조에서는 ‘주택의 거실은 지층에 설치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해, 지표면 이하에 거주 등을 위한 방을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 1월 1일 개정된 ‘건축법’을 통해 지하층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면서, 지하층 설치를 의무화했다. 1968년 소위 ‘김신조 사건’으로 알려진 북한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이후 강화된 안보적 조치로 피난용 지하층 설치가 의무화된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도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건축된 것은 아니었다. 1986년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처럼 도시 서민들이 단독주택의 일부 공간에 셋방살이하던 시절, 단독주택의 피난용 방공호가 가난한 도시 서민들의 지하 셋방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러다가 다세대 주택과 다가구주택이 1985년과 1989년에 각각 도입되면서, 1980년대 주택 부족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으로 다세대·다가구 주택 건설이 촉진되었고, 주택의 지하층 건축 규정이 완화되면서 지금의 지하 주거가 확산하였다. 다시 2000년부터 주차장 설치 기준이 강화되면서 지하 주거의 신축은 거의 사라졌다.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한국도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지하와 반지하에 거주하는 일반가구는 약 32만 7천 가구로 인구수로는 약 60만 명이 지하에 거주하고 있다. 이중 서울에 약 20만 가구, 35만 5천 명이 지하에 살고 있다. 서울 24개 자치구 중 20만 가구 넘는 곳이 5곳에 불과하니, 웬만한 자치구의 가구 수보다 많은 가구가 서울의 지하 방에 사는 것이다.

지하 주거의 열악함은 이번 폭우 참사처럼 장마철 집중 호우로 침수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반지하 등 지하 주거는 지대가 낮아 침수 등 자연재해 위험에 취약할 뿐 아니라, 지상층보다 공기의 이동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환기에 문제가 있고, 햇볕도 거의 들지 않아 채광이 부족하며 창문이 있어도 유명무실하다. 집의 일부 또는 전부가 땅속에 위치한 이유로 벽면 온도가 낮아 결로 발생이 쉬워 습도가 높고 곰팡이와 세균이 쉽게 번성한다.

기록적인 폭우를 제외하곤 평소엔 단번에 생명을 삼키는 극단적 열악함이나 위험이 가시화되지 않아 주목받지 못했지만, 건강을 위협하는 지하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조금씩 삼키고 있다.

정부 정책의 한계와 대책 방향

반지하 재난 참사 이후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 주거 형태가 지속되는 것은 저소득층이 도심 생활권에 머물 수 있는 적정하고 저렴한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지하 거주 가구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에 포함해 공공임대주택 지원 대상을 확대했지만 정작 물량은 턱없이 부족해 ‘신청만 할 수 있을 뿐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서울시는 이들에 대해 주거 상향을 돕겠다고 하지만, 서울시가 지급한다는 주택바우처 등은 지원금 수준(가구당 20만 원, 2년간)에 불과한 것으로, 지상으로 올라갈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물리적 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접근하고 있어, 도심의 저소득층이 거주할 수 있는 소형·저렴 주택의 대규모 멸실에 대한 우려가 크다. 또한 SH공사는 도심 생활권 내 기존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축소하고 있어, 지하 가구의 주거 상향 정책에 역행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지하 주거의 규모만 보더라도 지하 주거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적정 가격의 안전하고 충분한 주거공간 보장과 슬럼 개선(SDGs 11-1)’을 목표로 설정한 만큼, 이러한 시간 계획에 따른 주거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현행 주거기본법에서 정하고 있는 최저주거기준은 주택으로 적용 대상을 설정하고 있는데,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거처를 포괄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또한 기준 미달 가구에 대한 조사를 정기화하여 주거지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특히 주요 선진국에는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주택에 대한 규제가 일반화되어 있듯이, 최소한의 주거·안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에 대한 강행 규정화 등 규제와 지원을 통해 공간이 전환되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도심 생활권 내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가 절실하다. 자치구별 공공임대주택 의무공급 비율 목표를 도시계획으로 설정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과 정부의 예산 투여를 통해, 도심 생활권 내 장기공공임대주택이 고르고 충분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평등에 잠기는 우리의 주거권을 끌어 올리기 위한 적극적이면서도 전략적인 계획과 실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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