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책장] 여행의 이유

여행의이유_표지
여행의 이유
김영하 | 문학동네 | 2019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김영하 작가는 책에서 자기 경험을 통해 왜 사람들이 여행을 그토록 갈구하는지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인생은 곧 여행이고, 삶은 낯선 이들의 신뢰와 환대로 작동한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 치여 잊고 살던 여행의 기억, 정확히는 환대의 기억을 꺼내주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생 때 프랑스 니스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무슨 일인지 열차가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멈춰선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지루해진 나는 우연히 옆 칸의 한국인 대학생 남자 넷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이 어린 내가 심심해하는 게 마음에 쓰였는지 트럼프를 꺼내 카드 마술을 보여줬다. 내가 고른 카드가 무슨 카드인지 맞히는,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마술이었지만 열차와 함께 멈춰있던 시간이 마술 하나로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헤어질 때 아쉬워하자 한국 가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인사해줬던 그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야간열차를 탈 때면 우연한 만남을 기대한다.

그렇게 힘들 줄 미처 모르고 떠났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한 카페에서 2유로짜리 아침을 먹었는데,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동전이 나오지 않았다. 잔돈이 없어 100유로짜리 지폐를 손에 들고 고민하자 카페 주인은 내게 그냥 가라며 쿨하게 “부엔 카미노Buen Camino!”(당신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길!)를 외쳤다. 순례자에게 베푼 주인의 친절 덕에 나는 그날 온종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라시아스Gracias!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환대의 연속이다. 내가 낯선 이로부터 받은 환대는 또 다른 낯선 이에게 돌아간다. 어쩌면 나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타인의 도움과 신뢰를 만끽하러 여행을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 이 책을 통해 오래된 여행의 기억을 꺼내 읽고, 환대의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조희흔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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