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레임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다 – 박정진 참여사회 표지 디자이너

박정진 참여사회 표지 디자이너 ⓒ박영록

300호 발간을 맞은 참여사회에는 숨은 공신이 한 사람있다. 10년째 표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박정진 디자이너다. 그는 간결한 도형 등을 활용해 복잡한 시사 이슈의 맥을 집어내고, 결국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시사 잡지의 표지 디자인을 이렇게 오랜 기간 소화하는 디자이너는 제도권 미디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디자인으로 사회 운동을 하는 국내 디자이너도 희소하다. 그는 어떻게 이런 좁은 틈새시장에 안착한 것일까. 매호 보여주는 디자인 감각은 어떻게 수련하는 것일까.

여러 궁금증을 품고 지난 10월 13일 경기도 수원의 작업실에서 박 디자이너를 만났다. 디자인을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 갖던 그가 참여연대를 만난 것은 서로에게 행운과 같은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관심 가는 것들을 좇다 보니 이렇게 됐다”며 웃으며 말했다.


– 기록상으로 2012년 5월 처음 참여사회 표지를 작업한 것으로 나옵니다. 어느덧 꽉 찬 10년이 넘은 셈인데. 이렇게 오래 할 줄 예상했나요?

사실 5월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한 것은 그해 1월이었어요. 원래 참여사회 표지는 인물 사진으로 내보냈었는데, 주제를 담은 디자인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제가 일종의 ‘시범 타자’로 결합했는데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죠(웃음).

어떻게 처음 표지 디자인을 맡게 됐나요?

원래 디자인으로 하는 NGO 활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근데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외국 NGO들은 디자인을 곧잘 쓰는 데 반해, 국내 NGO들은 도통 그런 데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무작정 참여연대 홈페이지 회원게시판(활기차)에 제가 작업한 이미지들을 하나씩 슬쩍슬쩍 올리기 시작했죠.

‘너희를 위한 디자이너가 여기 있다’는 일종의 신호를 준 거네요(웃음)?

그렇죠. 마치 좋아하는 애 집 초인종 ‘띵동’ 누르고 도망가는 것처럼요(웃음). 그러다가 어느 날 평화군축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전시를 할 건데 당신 이미지를 좀 써도 되느냐고. 성공한 거죠. 그 이후로 비슷한 활동을 몇 번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참여사회 표지 디자인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 ‘좋아서 한 일’이었던 셈인데. 10년간 꾸준히 좋았나요?

어떤 때는 몹시 좋고, 뿌듯함을 느끼고 어떤 때는 약간 끌려가듯이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게 10년을 하면 매달 열과 성의를 다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얼추 세어보니 10년 동안 144점의 표지 디자인을 작업했습니다. 한 번도 안 쉬고 하신 건가요?

두 번 정도 쉬었던 걸로 기억해요. 한 번은 작년에 생업이 너무 밀려있어서 시간상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그러고 참여사회를 받았는데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작업한 표지가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주제가 ‘동물권’이었는데. 저는 도형이나 기하학적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니까 감성이 좀 배제된 느낌이라서 그런지 일러스트레이터의 표지 느낌이 따뜻하고 좋더라고요. 또 한 번은 2015년 회사에서 안식 휴가를 받아서 유럽 여행을 좀 길게 가느라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웠습니다.

10년 동안 참여사회 표지를 그렸으니 그 기간 한국에서 벌어진 사회 이슈는 거의 다뤄본 셈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베스트 표지를 뽑아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표지는 2015년 4월호예요. 주제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는데, 사고 당시 기록된 실제 희생자의 말을 인용했었죠. 어떤 학생이 “엄마 미안해. 아빠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고 했던 말이요. 그때 작업하면서 많이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는 2017년 4월호. 이재용과 박근혜 얼굴이 중첩되는 이미지를 사용했었어요.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이렇게 하면 잘 어울리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려서 좋았던(?) 기억이 있고요.

마지막은 2019년 11월호. ‘검찰개혁’이 주제여서 검찰 로고를 왕관처럼 디자인했어요. 그땐 그냥 흔한 풍자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예언이 되어버렸죠. 진짜 검찰이 이렇게 왕국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 지난 10년간 이명박부터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까지 정권이 네 차례 바뀌었어요. 대통령을 풍자한 표지들도 많았는데, 가장 영감을 줬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죠. 이건 제 편견이기도 한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 같은 경우는 주체적이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뭔가 권력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덤으로 껴 있는 듯한? 반면 MB는 주체적인 느낌이 강하죠. 이를테면 MB한테 제가 욕을 하면 그는 움찔할 것 같은 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응? 나한테 왜?’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참여사회 표지를 포함해서 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요즘엔 지면광고가 잘 안 나오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면광고 중에 단순하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디자인들이 많았어요. 뭔가 크게 건드리지도 않고 단순하게 조금 틀었을 뿐인데 많은 얘기가 담겨있는. 일간지 삽화나 만평 그리는 분들이 그런 내공을 많이 보여주셨는데, 거기서 영감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최근엔 포털 사이트 댓글에서 상당히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천재적인 댓글들이 워낙 많잖아요. 참여사회 표지 중에도 몇 개는 포털사이트 댓글에서 영감을 받았어요(웃음).

표지 디자이너가 꼽은 베스트 표지 중 하나. 이재용 삼성 전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 묘하게 닮아보인다
1989년 캐나다 벤쿠버 기반으로 설립된 문화운동 네트워크이자 동명의 격월간 잡지 〈애드버스터스Adbusters〉. 무분별한 소비와 다국적 기업의 횡포, 상업주의에 저항하며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추구한다

– 원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나요?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때는 언제인가요?

먼저 좀 바로잡았으면 좋겠는데 디자이너가 그림을 잘 그려야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물론 한국에서는 고3 때까지 그림을 잘 그려야 디자인 관련 학과에 갈 수 있지만요. 저는 어렸을 때 마냥 그림이 좋아서 미대를 간 경우였어요. 그런데 대학 가서 그 이상의 목표를 찾지 못했고 시간만 흘려보내던 중에 ‘애드버스터즈Adbusters’라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을 접하게 됐어요. 아 멋있더라고요.(웃음)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rnbrook이라는 그래픽 디자이너도 접했는데, 그걸 보고 나도 저런 멋진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 그래서 디자이너가 되었군요.

네. 그리고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고 며칠 안 돼서 깨달았죠. ‘아 그런 멋진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아주 소수구나.’ 그렇게 회사 생활 5~6년 하다가 참여연대 게시판을 통해서 NGO 디자인의 세계(?)로 도전장을 내밀게 된 거예요.

– 디자인을 안 하고 있을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자전거와 수영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자전거는 좋아한다기보다는 마트 갈 때 이동수단으로 자주 타고요. 걷기랑, 수영은 좋아합니다.

–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이 좋기도 하고… 뭔가 생활에 리듬과 반복을 만들어줘서 좋아요. 회사 관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다보니까 일정하게 반복되는 리듬이 없었거든요. 수영을 하기 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만 있던 적도 있어요. 수영을 하면서는 뭔가 균형이 맞춰진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다니는 수영장 근처에 큰 마트가 있어요. 그래서 보통 오전에 수영 갔다가 장을 보고 돌아오죠. 그리고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합니다.

박정진 참여사회 표지 디자이너 ⓒ박영록

– 전에는 ‘아토피atopy’라는 닉네임을 썼는데 지금은 ‘프레임워크framewalk’로 바뀌었더라고요. 뭔가 특별한 계기나 의미가 있나요?
아토피는 그리스어가 어원인데 ‘기묘한’이라는 뜻이에요. 그땐 뭔가 의미가 있었는데, 만들어놓고 보니까 사이트에 검색하면 병원만 나오는 부작용이 있더라고요.(웃음) 프레임워크는 언제부턴가 관점을 옮겨가면서 대상을 바라보는 게 디자인에서 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짓게 됐어요. 아주 진지하게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느낌이 괜찮다 싶어서 그때부터는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 자유롭게 관점을 옮겨가면서 대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려면 매번 본인의 위치를 인지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좀 뻔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제 옷장을 열어보면 옷이 다 스트라이프stripe, 줄무늬입니다.(웃음)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스트라이프죠. 처음 디자인 회사 출근했을 땐 동료들이 제가 옷을 안 갈아입는 줄 알았대요. 사실은 똑같은 옷을 몇 벌 사서 돌려 입는 거였는데 말이죠. 제 나름대로 정체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들을 규정을 하는 편입니다. 나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든가, 생계유지에 필요한 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편이고요. 그런 게 저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데 아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삶에도, 디자인에도 뭐랄까. 대상과의 간격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아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인가요? (그의 작업실에 캣타워가 있었다)

네. 제가 엉겨 붙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가족은 저와 아내, 고양이 둘, 이렇게 4명이에요. 이 4명이 서로 적절한 관계를 이루면 공존하기 참 좋은 것 같더라고요.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좋은 것도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강아지 여럿 키우는 집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어휴 정신없더라고요. 물론 그 집은 그게 행복일 테지만요.

고양이 ‘랑이’와 ‘꽁이’는 서로 영역을 지키며 공존할 수 있는 그의 소중한 가족이다 ⓒ박정진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즐겨입는 그의 빨랫대에 줄무늬 티셔츠가 가득하다 ⓒ박정진

– 박정진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란 어느 정도 정답이 존재하는 영역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요?

모든 디자인에 정답이 있지는 않겠지만, 하다보면 정말 딱 들어맞는 디자인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1960년대, 1970년대 만들어진 디자인 중에서 아직까지 회자되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무슨 재능의 여부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오히려 그 디자인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꾸준히 정답을 좇으면서 만들어내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진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계속 고민을 해야죠.

– 좋은 디자인과 안 좋은 디자인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좋은 디자인은 내용에 대해서 파악을 잘 하고 그걸 잘 담아내고 재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보기엔 멋있는데, 뭘 이야기하는지 모르겠고 트렌디한 느낌은 있지만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 ‘프레임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이너로서 참여사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것 같나요.

표지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 기획을 왜 지금?’ 이란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어요. 월간지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약간 시기적으로 늦다는 거죠. 하지만 이걸 쌓아두고서 찬찬히 읽어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관점이나 내용 자체는 꽤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걸 사람들이 쌓아놓고 읽을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올해 개편하면서 이전보다 더 라이트하게 읽을 수 있는 잡지 분위기가 됐어요. 아마도 사람들이 요즘 긴 글을 잘 읽지 않는 분위기니까 그런 점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재밌고 인쇄 매체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변화를 계속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김동환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진 박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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