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 2022-11-30   96

[오늘하루 지구생각] 10만 년 갈 핵쓰레기 대책 없이 ‘녹색’에 포함된 원전

“여러분, 아파트 평수 늘리지 마세요. 제발 냉장고도 큰 걸로 바꾸지 마시고요.”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 한 분이 지난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외쳤던 말입니다. 탄소중립을 말하며 한쪽에서는 여전히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철학자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소비를 넘어 필요를 만들어 소비하고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오늘날, 라캉이 말한 ‘타인’이 내 안의 무의식이든 아니든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과잉 소비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그게 결국 우리 생존을 위협할 거란 사실을 눈치채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여름 서울 도심에 쏟아진 폭우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내 집’에서 목숨을 잃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반면 그 여름 서유럽은 가뭄과 폭염으로 라인강 수위가 절반 아래로 내려가 물류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고요. 주로 적도 근처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올해는 북위 26도가 넘는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힌남노가 그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태풍입니다. 이 모두가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할 기후 위기의 맛보기 재난인 것만 같습니다. 때마다 찾아오는 재난에 둔감해지기도 하고 당장 내가 본 피해가 아니니 무관심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뎌지고 무관심해지는 것이 기후 위기보다 더한 위기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위험이 도사리지만 무관심해진 게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력의 30%가량을 담당하는 핵발전소입니다. 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전 정권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핵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고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유럽연합EU이 논란 끝에 가스와 핵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자 정부는 발 빠르게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2022년 9월 21일 환경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카드 뉴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 포함

녹색분류체계란 어떤 경제활동이 친환경 활동에 해당하는지를 규정하는 기준입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는 핵발전 핵심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노후 핵발전소 계속 운전 등 핵발전 관련 3가지 경제활동이 새롭게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유럽의 녹색분류체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이 녹색분류체계에 핵발전을 포함하며 내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하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준비 조건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열과 방사능 수준이 매우 높아 10만 년 동안 생명체와 완전히 격리해야 하며, 영구처분장을 마련해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1978년부터 핵발전소의 상업 운전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면적대비 세계 최고 밀집도를 자랑하며 26기의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지만,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은 고사하고 중간처분장의 부지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핵발전소마다 쏟아져 나오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발전소 내부 임시 저장시설에 쌓여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내년 4월 설계수명 40년을 다하는 고리2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이럴 경우 향후 5년 동안 고리3·4호기 등 설계수명이 끝나는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은 불 보듯 뻔합니다.

또한 한수원은 고리 1~4호기 부지 안에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 저장시설인 캐니스터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안전을 우려하는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은 당연합니다. 한수원이 주민 의견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추진하고 있는 이 임시시설은 사실상 영구처분장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 노후 핵발전소가 모두 한 지역, 부산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정상 사고’ 가능한 핵발전소

더구나 고리 2호기는 지난 5월 말 정기 점검을 마치고 재가동을 시작했다가 사흘 만에 원자로 내부 손상으로 자동 정지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외부 충격도 아닌 발전소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건 사회학자 찰스 페로Chales Perrow가 말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입니다.

핵발전소는 워낙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여서 정상 상태에서도 언제든 사고 발생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가동 연수가 증가할수록 급격한 온도 변화 때문에 원자로 용기의 파손 가능성도 증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고요.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위험을 확장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이 아니라 안전한 영구 정지와 전기 소비자인 시민들의 관심입니다. 전력 소비를 줄이고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젠 전기를 뺀 문명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전기를 쓰면서 그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 하고, 그 전기를 만드느라 우리의 미래가 저당 잡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안전을 경시하다가 참사를 겪는 일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시청 앞. 부산, 울산, 경주, 영광 지역의 탈핵 및 원전 안전을 위한 환경 단체들과 탈핵시민행동,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일방적인 핵 정책으로 발생한 핵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경주와 부산 등 핵발전소 지역에 떠넘겨선 안 된다고 밝히며, 핵 전기를 사용한 모두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출처 환경운동연합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란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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