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1-02월 2022-12-29   1871

[이슈] ‘적폐청산’ 담론을 넘어

한상원 참여사회연구소 운영위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민중의소리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분열 원리를 ‘적대’에서 찾았다.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은 모든 정치에 고유한 원리이며,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조정과 화해가 아니라 ‘적’을 규정해 그에 대항하는 ‘우리’를 구성하는 적대적 활동에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고로 그는 적대나 갈등이 존재하지 않고 마치 원자화된 개인만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근대 사회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 체제를 비웃었다. 

그러나 이런 적대의 원리는 모든 종류의 적에 대한 ‘낙인찍기’와 탄압, 그에 잇따르는 폭력행위들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지 않은가? 특히, 외부의 적이 초래하는 위협의 공포를 내부의 적에 투사하는 전체주의 논리 역시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본다면 실제 슈미트 자신이 (물론 실패하지만) 나치 정권에 가담한 것도 우연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적대적인 정치 지형에서의 대안 ‘정당한 적’

슈미트의 거의 마지막 저서인 『대지의 노모스』에는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이 방대한 저작에 등장하는 핵심적인 개념들은 ‘정당한 적’justus hostis과 ‘전쟁 길들이기’Hegung des Kriegs로 요약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슈미트의 주장은 이렇다. 국제질서는 도덕적 규범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따라서 (서구 정치사상이 추적해 온) ‘정당한 전쟁’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왜 그럴까? 자신을 ‘도덕적으로’ 정의롭고 간주하는 세력은 상대를 불의하고 부당한,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적으로 간주하게 되고 따라서 적에 대한 잔혹한 폭력을 악에 대한 응징으로 정당화한다. 정의로운 전쟁은 결국 폭력의 무제한 승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슈미트가 보기에 적대 그 자체가 불가피한 인간의 근본 조건이라면 그것의 폭력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대에서 도덕적 요소를 제거하고, 적대 당자사들이 서로를 자신과 동등하게 적대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정당한 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전쟁 길들이기’라고 부른다.

슈미트의 이러한 관점은 주권국가 사이의 국제관계를 무대로 전개된 것이지만, ‘정당한 적’과 ‘전쟁 길들이기’라는 그의 개념은 현대 사회의 정치적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많은 요소를 함축한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경합적 다원주의’1를 말할 때에도 이러한 ‘정당한 적’이라는 슈미트의 관점이 차용되어 있으며, 발리바르Étienne Balibar가 ‘반폭력의 정치’를 주장할 때 슈미트의 ‘전쟁 길들이기’를 반드시 인용하는 것 역시 적대의 실재성의 한가운데 폭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정당한 적’에 대한 슈미트의 사고는 한국 사회의 적대 지형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때도 일정한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특히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물음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 

‘적폐積弊청산이 과연 오늘날 타당한 정치적 구호가 될 수 있는가?’ 

서로를 ‘적폐’라 부르는 시대

‘적폐청산’은 2016년 촛불시위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대중적 구호였으며, 일정하게 여러 사회운동 부문의 공통적인 문제 제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와 대립하는 상대 세력을 ‘적폐’로 부르는 수사법은 상대방을 도덕적 관점에서 불의하고 부당한 세력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할 뿐, 그러한 불의와 부당함을 낳는 사회적 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분석하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상대방을 적폐로 부르고 청산 대상으로 보는 정치적 구호는 그러한 적폐를 응징해야 할 우리 편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신뢰를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민주시민’으로 불리는 세력은 지난 정부에서 터져 나온 ‘우리 편’ 인사들의 온갖 비리나 성폭력 의혹 등에 대해 일관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상대 진영의 조작’ 혹은 ‘언론의 가짜 뉴스’로 보는 프레임에 사로잡혔으며, 내부적인 성찰과 자기반성을 통한 혁신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는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정부여당과 그 지지자들을 ‘내로남불’로 칭하고 냉소하며 그들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통해 집권하게 된 현 정부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적폐청산’을 수행하고 있다. 검찰 권력을 동원해 야당 수뇌부의 부패를 집중적으로 캐내면서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적폐청산’의 이미지로 덧칠하고 있다. 오늘날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수많은 시민은 상대방을 ‘적폐’라고 부르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야말로 그러한 적폐를 청산할 응징의 적임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적수를 ‘적폐’로 부르고 청산을 주문하는 방식은 정치 세력들이 서로가 서로를 악마화하며 분노와 원한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메커니즘 속에서, 정작 지금 이 순간 던져야 할 질문들을 망각하게 만든다. 적폐로 설정된 악의 세력에 대한 도덕적 분노를 극대화하지만, 이 분노를 새로운 사회적 제도의 창출을 위한 의지와 역량 결집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왜냐하면 적폐로 설정된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 인격적, 도덕적 분노는 그에 맞서 싸우는 우리 편 정치인들에 대한 개인적, 인격적, 도덕적 찬양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적폐청산 구호는 필연적으로 ‘팬덤 정치’로 귀결된다.

‘적폐청산’을 넘어설 때 보이는 것들

이러한 악순환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상대방을 ‘적폐’가 아니라 ‘정당한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무조건 승인하라거나 상대에 대한 적대를 거두고 무조건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개념의 요지는 적대를 선악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이 개념은 슈미트가 제시한 것이지만 우리의 사고가 슈미트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슈미트를 넘어 필자가 여기서 제시하고자 하는 관점은, 적대 속에서 선악의 잣대를 거두고, 제도와 구조의 변혁을 위한 정치적 적대와 시민 주체화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적은 적이다. 그러나 이때의 적은 인격적으로 악마화된 적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구조의 담지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적대는 인격화된 특정 개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부패를 낳고 동시에 은폐하는 ‘구조에 대한 적대’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적폐청산과 사법적 보복이라는 선과 악의 적대 논리를 벗어날 때 우리에게 비로소 보이는 쟁점들이 존재한다. 법인세와 종부세를 인하하여 부유층의 세금을 낮춰주고, 노동시간을 연장해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정책을 어떻게 비판하고 막아낼 것인가? 이태원 참사에 보듯, 시민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볼 뿐 구해야 할 생명으로 보지 않는 행정 권력에 맞서 어떻게 생명에 대한 돌봄이 이뤄지는 공적 체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해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려는 시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가? 장기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학 청소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와 공정의 논리를 넘어서는 평등과 연대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처럼 적폐청산의 순환논리에서 벗어나 노동자들과 소수자들,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구조적, 제도적 변화를 위한 싸움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싸움들 역시 적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한과 인격적 분노의 적대를 넘어서는 구조의 변화를 위한 적대, 현재의 분노와 불만을 건설적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이고 공적인 적대의 출현을 뜻할 것이다. 기득권의 이익을 재생산하고 약자들을 더욱더 쥐어짜는 이 낡은 사회의 논리를 변화시킬 힘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적대’가 필요하다. 그건 지금의 적폐청산 논리로 이룰 수 없다.

기득권의 이익을 재생산하고 
약자들을 더욱더 쥐어짜는 이 낡은 사회의 논리를 
변화시킬 힘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적대’가 필요하다

1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치되지 않는 갈등이나 차이를 해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한다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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