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3월 2023-02-24   795

[오늘하루 지구생각] 행복은 왜 오래가지 않을까?

제겐 손바닥만한 파우치가 하나 있습니다. USB 보관용인데 오래 사용했더니 모서리마다 닳아서 안감이 보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 물건이 쏟아지고 저렴하기까지 하니 사람들은 쉽게 사고 쉽게 버립니다. 이런 세태에 비싸지도 않은 파우치를 오랫동안 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물건을 만들어 쓰는 시대가 아니라 사서 쓰는 시대입니다. 물건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원료 채굴부터 제품의 제조·운송·사용·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광물 자원 사용으로 발생하는 오염물질총량을 정량화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ment’는 그래서 유의미합니다.

물건의 개수와 행복이 비례할까?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포스터 출처 ㈜영화사 진진

독일의 코미디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100 Dinge, 100 Things는 가벼운 듯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폴과 토니는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면서 개발한 앱이 대박을 터뜨려 하루아침에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릅니다. 축하 파티 중 둘은 취중 내기를 합니다. 모든 물건을 창고에 넣고 빈털터리 상태에서 100일 동안 하루에 한 개씩 돌려받으며 100가지 물건을 소유하기로. 먼저 포기하는 자가 지는 게임입니다. 알몸 상태로 잠에서 깼을 때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일단 뼛속까지 스며드는 칼바람을 막아줄 옷이 필요한데, 물건 보관 창고에 가려니 몸을 가릴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영화는 제로베이스의 인간이 어떤 이유로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는지 묻습니다. 또한 가치관에 따라 누군가에겐 절실한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물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완벽한 자기 관리를 중요시하는 토니는 하필 여자친구와 만나는 날 눈병이 납니다. 그는 입고 있던 바지와 선글라스를 맞바꿉니다. 폴은 할머니의 물건을 정리하려는 어머니에게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면서 어떻게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을 추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는 안데스 지역 케투아·아이마라 선주민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표현한 말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삶’이란 뜻이 담긴 케초아어1 입니다. 스페인어로는 ‘부엔 비비르’Buen Vivir라고 하며, 우리 말로는 ‘좋은 삶’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이 이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입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구소련의 몰락을 지켜본 진보 지식인들은 선주민의 세계관에서 대안을 찾기에 이릅니다. 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와 80년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에 몰아친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과 워싱턴 컨센서스의 반작용이랄까요? 1990년대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은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를 개발도상국가의 발전모델로 삼도록 강요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유입으로 각종 규제가 철폐되고 무한경쟁과 긴축 재정, 민영화 등이 시작됐습니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부엔 비비르’가 대안적 발전모델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불행한 우리를 위한 ‘부엔 비비르’!

올해 초 미국 CNBC 방송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통계를 인용하며 “한국인의 2022년 사치품 소비 지출은 168억 달러(약 20조 9천억 원)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1인당 324달러로 중국(55달러)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280달러)보다도 많습니다. CNBC는 한국인들이 사치품 시장에서 세계 최대 큰 손이 되었다고도 보도했는데요, 필수품도 아닌 사치품을 이토록 소비하게 된 까닭은 뭘까요? 모건스탠리는 한국인의 사치품 구매 급증 이유로 2021년 부동산 가격 상승과 함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우린 전부 가진 세대에요. 먹고 싶을 때 먹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왜 우리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까요?”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중에서


과거보다 훨씬 많은 부를 누리고 살면서도 인류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아니, 과거보다 불행하다는 이들은 더 많아졌고, “모두가 다같이 가난해지면 차라리 좋겠다”고까지 하니 이스털린의 역설2 Easterlin’s Paradox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세상의 평가를 중시하고 남과 비교하며 살다 보니 행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꽃이 피고 지는 일엔 무관심하지만 누가 어떤 가방을 들고 어떤 차를 모는 지는 큰 관심사입니다. 이 영화가 긴 여운을 남기는 까닭은 우리가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묻고 또 물으며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부엔 비비르’는 긴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세상의 평가를 중시하고
남과 비교하며 살다 보니 행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1  남아메리카 인디언 최대의 언어
2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란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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