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4월 2023-03-29   1461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찰나의 아름다움, 그 ‘순간’을 사랑하다

꽃다발과 자두가 있는 정물화, 1704

돈이 되는 꽃

매년 4월이면 네덜란드에서는 퀘켄호프Keukenhof라는 이름의 세계적 튤립 축제가 펼쳐진다. 원색의 알록달록한 꽃이 만발하고 유럽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4월은 암스테르담 시내를 걸으며 렘브란트부터 반 고흐까지 미술사 산책을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운하를 오가는 수많은 캐널 크루즈운하 유람선, 노란 고다치즈, 그리고 꽃.

암스테르담에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17세기에 운하가 건설되었다. 암스테르담에 대한 오늘날의 이미지도 대체로 17세기 이후 형성된 것들이다. 바로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덕분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란 네덜란드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후 네덜란드공화국으로 자리 잡은 17세기 전후 시기를 말한다. 1567년부터 1648년까지 80여 년간의 전쟁을 거쳐 독립한 네덜란드는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을 아우르는 공화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무역을 주도하면서 암스테르담은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렘브란트도 이 황금시대에 활발히 활동했다. 그의 유명한 그룹 초상화 ‘직물길드 이사회’1662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상업이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17세기 네덜란드에는 해외에서 각종 희귀한 물품이 들어왔는데 그중에는 식물도 많았다. 부유한 사람들은 씨앗과 관목 등을 들여와 재배하고 연구하고 전시했다. 자연스럽게 꽃, 과일, 박제된 동물, 화려한 식기 등의 정물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화려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사람들이 특히 아름답고 희소성 있는 꽃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면서 네덜란드 꽃시장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꽃이 곧 명품이고 투기 대상이었다. 특이하게 개량된 튤립을 구매하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꽃 카탈로그를 위한 그림도 점점 중요해지고 이 그림 자체를 구매하는 고객도 늘어났다.

이 시기에 많은 여성이 식물도감이나 도자기에 그려 넣는 꽃그림 제작에 참여했다. 혹은 꽃 패턴에 따라 자수를 놓는 등 주로 전통적인 분야에서 활동했다. 일부 여성은 보조적인 위치를 벗어나 자신만의 꽃그림을 발전시키며 독자적인 화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활동한 라헬 라위스Rachel Ruysch, 1664~1750이다.

꽃바구니, 1711

허무를 넘어선 꽃

1644년 태어난 라위스는 정물화가로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15세에 그림을 배워 86세로 사망할 때까지 그림 그리기를 쉬지 않았다. 18세 이후에는 자신의 그림에 사인을 하며 전문 화가로 활동했다. 여성 화가의 작품은 남성의 작품에 귀속되었다가 재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라위스는 사인을 부지런히 남겨서 상대적으로 그런 위험이 적다. 사인할 때 나이까지 함께 표기하는 습관 덕분에 비교적 정확하게 연대 추정도 가능하다.

아버지가 식물학자이자 아마추어 화가였기에 라위스는 어릴 때부터 식물도감과 표본 등을 많이 접했고 일찍부터 정밀한 묘사를 배워나갔다. 15세가 되자 그는 당시 최고의 꽃화가였던 빌렘 반 알스트Willem Van Aelst, 1627-1683에게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때 라위스는 알스트에게 꽃꽂이 방식도 배운다. 유난히 풍성하고 사실적인 라위스의 꽃 정물화는 꽃꽂이를 배워 만들어낸 구도 덕분이다. 라위스의 그림을 보노라면 풍성한 부케를 한 아름 안고 있는 듯 눈이 배부르다. 화려하고 섬세한 정물은 생동감 넘치는 동적인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림 속 꽃잎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곤충이 보인다. 꽃잎에 앉아있는 곤충을 보며 정물화 속의 꽃향기를 상상한다.

라위스는 1701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화가 길드 조합원이 되었다.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그 후에는 뒤셀도르프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꽃그림의 인기 덕분에 그는 꾸준히 후원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라위스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동력이 후원만은 아니다. 그는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자식을 비롯한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했다. 그림은 그에게 생계 활동이기도 했다.

생전에도 최고의 명성을 누렸지만, 오늘날에도 라위스는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최고의 정물화가로 인정받는다. 남성보다 인물 드로잉의 기회가 적었던 여성 화가에게 정물화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장르였다. 라헬 라위스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 화가는 사회가 여성에게 그어놓은 한계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물화에서 라위스는 시선을 사로잡는 구도와 뛰어난 묘사를 보여줬다. 라위스의 활동은 네덜란드 여성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카테리나 바케르, 마르가레타 하베르만 등이 꽃화가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17세기의 생생한 꽃과 곤충 그림은 역설적으로 허무vanitas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꽃은 곧 진다. 화려한 순간은 짧고 지저분하게 사라져간다. 아름다움의 시간이 짧기에 우리는 꽃을 더욱 반가워하며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려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여 정지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허무를 읽어내기보다는 ‘순간에 대한 더 집중적인 사랑’을 읽는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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