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회 회원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보통신 기업에 다니는 공학 전문가다. 그런데 김철회 회원의 참여연대 활동 내용을 훑어보니 회원 역사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대목이 눈에 띈다. 게다가 동료들과 함께 수요집회에도 자주 나간다고 하니 공학이 아니라 역사학 전공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김철회 회원이 건네준 명함에는 본업인 회사명이 아니라 ‘삼양리빙랩’이란 곳이 적혀있었고, 이름 아래는 ‘꿈꾸는 통신노동자’라는 글귀도 있었다. 아이처럼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의 김철회 회원, 도대체 정체가 뭘까?
– 명함에 회사명이 아니라 ‘삼양리빙랩’이라고 쓰여 있어서 놀랐어요. 어떤 곳인가요?
‘리빙랩’은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고요, ‘삼양’은 지금 저희 어머니가 계신 곳이자 제가 자랐던 서울 강북구 삼양동입니다. 삼양동이 지금은 낙후됐지만, 예전에는 옷핀이나 모자 등을 만드는 가내수공업이 활발했던 동네예요. 언젠가부터 일자리가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어르신들만 남았죠.
코로나 때 제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곳에 머물렀는데, 지역 문제를 고민하는 여러 활동가를 보았어요. 저도 기술자 커뮤니티를 세우고 싶더군요. 치매 노인을 비롯한 어르신들이나 주민들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커뮤니티요. 문제 해결이 제 일이니까요. 그렇게 만든 것이 삼양리빙랩입니다.
– 2014년에 참여연대 회원이 되셨죠. 어떠한 계기였나요?
당시 회사에 낙하산 인사가 심각했어요. 기술 개발에 기여한 사람들을 회사에서 내보내고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불공정이 그대로 회사 내의 불공정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확인한 거죠. 그래서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에서 힘을 합쳐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야 조직도 변화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예요.
– 현재 참여연대 운영위원과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회원모임 ‘산사랑’ 회원이에요. 일터에서 노조 활동도 하고요.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일이 아니라 다 연결된 일 같아요. 일터에서 겪는 불합리한 상황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란 걸 대부분 직장인이 비슷하게 느낄 거예요. 그래서 직장 내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참여연대의 길과 결국 만나게 되지요.
– 수요집회 등의 현장에도 자주 참여하신다고요.
집회가 많이 열리는 광화문에서 일하다 보니까 웬만하면 바로 출동합니다. 참여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피켓도 많이 들었죠. 수요집회에 참여한 것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데요(웃음). 동료들과 산책 겸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헌화도 하고요. 수요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음료수나 핫팩도 사다 주고 그래요.
아무래도 광화문에 있다 보면, 마음이 안타까우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2014년이었나, 화장실에 들렀는데 세월호 유가족 아버지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거기서 씻고 있는 거예요. 매일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봤는데 그게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리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란리본을 항상 달고 다녀요.
– 혹시 학생 때부터 집회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나요?
운동권하고는 거리가 있었죠. 학생 때는 제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어요. 여러 아르바이트에 야간으로 겨우 학교에 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사회 문제에 신경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 뒤에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되면서 사회적 현상을 좀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지금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이 없으면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생각이 있어도 자기 밥벌이와 연관되면 용감하게 목소리 내지 못하죠. 그런 상황에서 왜곡된 언론보도만 접하다 보면 생각도 왜곡되고요.
– 참여연대 회원들을 위한 역사 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계신데요. 왜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저는 공학도인데, 공학에서는 문제점이 발생하면 로그log를 뒤져서 원인을 알아내거든요. 로그는 기계 장비나 시스템 쪽에서 사용 전반의 기록을 담은 ‘발자취’를 뜻하는데, 저는 역사도 우리 사회의 로그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는 분명 과거부터 이어져 온 문제들의 총합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역사를 잘 모르니까 잘 아는 분들을 초대하고 다양한 사람을 모아서 같이 공부하는 거예요. 열심히 듣고 배우다 보니까 묻혀있는 역사가 너무 많더라고요. 세대가 지날수록 더 많이 묻힐 텐데, 지금이라도 함께 발굴하고 기억하며 정리해야겠다 싶어요.
그리고 제가 외국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유럽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사를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살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주변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면서 함께 토론하는 문화를 통해서 강한 시민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 올해 답사 코스에는 참여연대도 포함되어 있다면서요?
네, 지금 참여연대 자리가 세종대왕 어릴 때 집터라고 해요. 한글을 연구하는 한재준 교수님이 답사 안내와 강의를 해주시기로 해서 무척 기대하고 있답니다. 한글은 왕이 도모한 민중혁명이었죠. 극히 소수 기득권층만 한자를 사용할 수 있고 정보가 권력화된 상황에서 정보를 쉽게 유통하는 수단이 바로 한글이었으니까요. 이번 답사는 지금 참여연대의 자리가 의미하는 바와 그 맥락을 되짚어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 참여연대가 시민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은 참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보면 좋을까요?
요즘 생각하는 게 있어요! 독일은 ‘시민의회’라는 공론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연구하고 토론해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입법기구에 제시하더라고요. 우리도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입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일종의 ‘시민참여의회’를 만드는 겁니다.
제가 있는 업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너무나 자주 쉽게 이뤄져요. 기존 시스템에 잘못이 있다면 새로 바꿔요. 그래야 효율이 높아지니까요. 사회 시스템도 그렇게 접근해야죠. 이게 참여연대를 포함한 우리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 공학도의 관점에서, AI(인공지능)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AI는 인간의 뇌를 흉내 낸 거예요. 인간의 지식을 싹 대체할 수 있고 어떤 건 인간보다 잘하는 것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죠. 유럽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아이들이 시험 칠 때 전자계산기를 써요. 계산 능력은 기계에 맡기고, 아이들이 수학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키우도록 하는 거죠. 한국은 기능 위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손발 역할을 한다’는 가정 아래 어떤 세상을 만들지 꿈을 꾸게 하는 교육이 필요해요.또 하나는 이제 편향성 없는 데이터가 무척 중요해졌어요. 외국에서는 이미 판례 데이터를 사용하는 AI판사, AI변호사 등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판례들이 왜곡됐잖아요. 시민사회가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의재판을 열어 ‘이런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사례를 만들고 이러한 판례 데이터를 모아서 입력해야 AI가 제대로 판결할 수 있을 거예요. 시민사회가 지금부터 고민하면 좋겠어요. 저도 기술자나 교수, 공무원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고민하는 중입니다.
– 마지막으로, ‘나에게 참여연대란 000이다’?
저는 참여연대를 통해서 시민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나를 시민으로 만들어 준 친구라고 할게요. 시민이 아니라 ‘식민’으로 사는 경우도 많거든요. 지금은 각자의 의견들을 이야기하고 협의해 가는 시민성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니 참여연대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이죠.
김철회 회원은 역사와 기술, 각종 사회 분야를 종횡무진하면서 지면에 전부 담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끝까지 강조한 것은 시민들의 토론 문화였다. 토론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의 균등한 유통,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시민들의 적극적인 미디어 참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통해 지금을 사는 시민으로서 꼭 필요한 고민을 얻어가는 듯해 더욱 뿌듯한 만남이었다.
글 이은주
사진 오원준
녹취 조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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