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9월 2023-08-29   699

[회원 인터뷰] “서른 즈음의 참여연대, 이제 언니 역할 해야죠”

김정인 회원 ©박상환
김정인 회원 ©박상환

김정인 회원은 참여연대와 29년 지기이며, 1993년부터 함께한 창립 멤버다. 참여연대와 같은 해 같은 달(1994년 9월) 태어난 딸은 참여연대 사무실이 용산에 있던 시절부터 청년회원 답사모임, 창립 기념식 등 주요 행사에 함께해 ‘참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2004년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로 임용된 뒤에도 〈참여사회〉에 역사 칼럼을 쓰고,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각종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했다. 또한 상임집행위원·운영위원·공동운영위원장 등의 역할을 맡으며 공부와 시민운동을 함께 해왔다. 2021년부터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독립연구자인 후배와 함께 인문사회과학아카데미 ‘필로버스(PHILOVERSE)’를 열고 젊은 연구자들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해내는 그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공간 곳곳에서 열정이 느껴지는 필로버스 세미나실에서 김정인 회원을 만났다.

– 참여연대와 29년을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일까요?

1993년에 대학 동기였던 김기식(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참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시민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겠냐고요. 시민 스스로 권리를 찾는 참여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해 함께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참여연대 첫 사무실이었던 용산 사무실 계단참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 활동가와 ‘시민운동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강렬해요.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직업이 없던 때였어요. 가 보지 않은 길이라 답할 수 없었죠. 그 불확실함을 이기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독립적으로 굳건히 서 있는 참여연대와 활동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참여연대는 용산·안국동·통인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죠. 특별히 애틋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통인동이죠. 참여연대의 힘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모금을 통해 마련한 통인동 사무실은 그 상징입니다. 시민의 돈으로 ‘집’을 얻는 게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는데, 결국 실현됐거든요. 2007년 9월 통인동 사무실로 이사할 때는 무서울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 연구와 시민운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2004년 교수 임용 직후에 시민운동을 계속할지 아니면 연구에 몰두할지 고민했어요. 대학 사회는 ‘공부’ 이외의 일을 하면 학자로 인정하지 않는 습속이 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간단명료하게 답을 줬어요. “둘 다 하면 되지.” 그 말을 듣고 “아~!” 하고 무릎을 쳤죠. 학교가 있는 춘천으로 이사 갔는데 참여연대 상임집행회의가 있는 월요일마다 서울에 왔어요. 개신교인들이 일요일마다 교회 가는 마음으로 저는 참여연대 회의에 참석했던 것 같아요.

– 꽤 먼 거리인데, 회의에 꾸준히 참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상임집행위원 회의를 하면서 민주주의적 삶의 방식을 배웠어요. 회의 전에 혼자 자료를 보면서 각 안건에 대한 생각을 열심히 정리해요. 그런데 회의할 때마다 내가 열심히 정리한 생각들이 단 10초 만에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했어요. 혼자 생각하는 것과 집단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많이 느꼈어요.

정말 놀라운 건 참여연대에서 배운 민주주의 관점들이 제 연구에서도 발현된다는 거예요. 2009년에 쓴 ‘기억의 탄생: 민중 시위문화의 근대적 기원’이라는 논문은 3.1운동을 민주주의 관점에서 쓴 논문이에요. 참여연대에서의 경험이 민주주의 관점으로 사료1를 해석할 힘을 길러준 거죠. 한국 역사학계는 민족주의 관점이 지배적이에요. 제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하고 석사 과정에 들어간 1989년부터 민족주의 관점이 아닌 보편적 관점에서 논문을 쓰고 싶었지만, 그때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참여연대 활동이 씨앗이 돼서 새로운 관점을 가진 연구자가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책 서문에 썼어요. 참여연대 덕분이라고(웃음).

한국 역사학계는 ‘서구에서 이식된 개념’이라며 민주주의의 기원 문제를 홀대했지만, 김정인 회원은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들에서 이를 성찰하며 ‘민주주의 한국사 2부작’을 써냈다. 19세기 근대사를 새롭게 바라본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와 독립운동사를 재해석한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가 그 결과물이다. 지금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장면을 담은 《모두의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책은 참여연대가 서른 살이 되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김정인 회원 ©박상환
김정인 회원 ©박상환

– 29살 참여연대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참여연대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상수’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개인화되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로 의사를 개진할 창구가 상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의미가 큽니다. 요즘 참여연대가 어떤 정책과 의제로 활동하는지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아서 영향력이 줄었다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참여연대가 서른 살이 되어가고 ‘상수’가 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죠. 이제 사람들은 참여연대가 하는 일을 당연한 거라고 여기니까요. 참여연대가 이런 상황을 자각하고 앞으로는 ‘시민사회의 언니’ 역할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 ‘시민사회의 언니’ 역할이 무엇일까요?

우선 늘 해왔던 중요한 일들을 지속하는 거예요. 참여연대는 창립 15주년인 2009년에 ‘권력감시운동 2기’를 선포하고 생활밀착형 민생운동을 확대하는 재도약을 하겠다고 밝혔어요. 그 방향성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밖에서 감시하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통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일도 꼭 필요합니다. 참여연대가 남양유업의 횡포를 고발하고 대리점주들을 조직화해서 권리를 찾도록 도운 일,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의 권익을 찾기 위한 입법운동 등은 사회적 파장이 정말 컸습니다. 이런 역할들을 지속하면서, 완전히 다른 제3의 시민단체가 나오면 언니로서 돕고 응원하는 것이 참여연대의 역할 아닐까요?

– 30주년을 앞두고 참여연대에 조언하실 것이 있다면요?

2030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회원층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어요. 단순히 2030이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SNS에 홍보물을 올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소통방식과 문화에 빠져드는 방법을 고민해야죠. 동시에 지금까지 참여연대가 해온 일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의 자랑거리는 뭐고 약점은 뭔지 짚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거창한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과거를 긍정적으로 껴안고 한 발 더 내디딘다는 생각으로 걸어 나간다면 충분해요.

– 윤석열정부 하에서 ‘잼버리 사태’ 등을 겪으니 행정이나 국가의 기본이 무너지는 게 너무 순식간이라는 생각에 허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로서 저는 새롭게 국가론을 공부하고 있어요. 민주화 이후에는 ‘보수·진보’라는 이념적 잣대로 정부의 성격을 구분하죠. 그런데 단지 보수 정부라서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기에는 지금 상황이 잘 설명되지 않아요. 윤석열정부가 문재인정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시민사회와 전혀 소통하지 않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다시 하고, 저 역시 열심히 분석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김정인 회원을 만나기 전, 그는 ‘뜨거운 여성’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열정으로 뜨거울 테니까. 그런데 세상을 향한 김정인 회원의 마음은 뜨거우면서도 길을 걸어가는 방식은 굉장히 냉철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하기보다 분석한다”고 말하는 ‘분석적 성향’의 그는 24시간 또한 계획적으로 산다. 매일 아침 휴대폰 메모장에 ‘할 일’들을 기록하고 순서대로 해 나가는데, 밤이 되면 ‘할 일’들이 완료된 상태라고 했다. 인터뷰 직전 그의 ‘할 일’은 청소였는지, 필로버스에서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 필로버스는 어떤 곳인가요?

대학 바깥의 인문사회과학아카데미예요. 현재의 대학은 신진·청년 연구자들이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신진·청년 연구자가 석·박사 과정 중에도 강의하고 돈을 버는 대학 바깥의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필로버스는 35살 이하 청년에게는 수강료를 반값만 받아요. 대학원생에게는 연구나 학습에 필요한 장비와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연구 성과 출간도 지원합니다. 신진 연구자에게는 연구 결과를 발표할 기회와 강의 개설 기회를 제공하고요. 정부 지원 없이 이 모든 것을 해내서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자생적으로 공부를 이어 나가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 회원님은 필로버스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매니저라고 할까요? 논문이나 글을 읽고 강사를 발굴하고 섭외하고요. 줌(온라인 실시간 회의 서비스) 강의실을 개설하고, 이용자들이 강의 녹화본을 달라고 하면 개인 메신저로 보내드려요. 로청이(로봇청소기)도 돌리고요. 지금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기득권 지키는 데 더 골몰하는 것 아닌가 하고 절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대학 바깥의 실험이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필로버스에서 ‘서비스 정신’으로 임하고 있어요.

김정인 회원은 “필로버스를 찾는 사람들은 내가 교수인지 잘 모른다”고 말하며 뿌듯해했다. 이용자들이 자신을 ‘교수’가 아닌 필로버스 공간의 ‘사장’으로 대하는 것이 삶에 큰 자극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대학 교수가 갖는 권력과 권위의 온실 문을 스스로 열고 나와서 다른 실험을 하는 그의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진심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김정인 회원은 ‘참여연대는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반려자”라고 답했다.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반려자죠. 제 삶의 버팀목이었고, 학문적으로도 길을 열어준 곳입니다.” 참여연대와 김정인 회원의 굳건한 동행이 또 어떤 길을 열어낼까 궁금해졌다.


1 역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 문서, 기록, 건축, 조각 따위를 이른다.


박수진 편집위원 
사진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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