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9월 2023-08-29   323

[활동가의 책장]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 | 목요일
요안나 콘세이요 | 목요일

“당신은 이 책에서 길을 잃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래야만 하고요. 사건의 순서를 찾으려 애쓰지 말아요. 들판을 혼자 걸으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보세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서점지기의 취향이 묻어나는 작은 서점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독립서점에 들른다. 지금 소개할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도 여행지에서 알게 된 책이다.

책에는 일흔 살 앙리의 평범한 하루가 담겨 있다. 까치밥나무 열매에 자신을 투영하며 회상에 잠기는 앙리. 영화처럼 이어지는 빛바랜 어린 시절 기억과 가족사진. 앙리는 혼자 숲을 거닐다 멈춰 선다. 만개한 수레국화 줄기는 단단하고 새가 날아오른 자리에는 적막만이 남아있다. 빈 우체통을 매일 확인하며 편지를 기다리지만, 곁에는 집 앞 벤치에 잠자는 길고양이만 남아있다.

이렇게 고요하고 쓸쓸한 이미지가 이어지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때론 고독하지만 꼭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생각도 든다. 까치밥나무 열매가 붉게 익어가듯 시간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책은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일러스트가 주를 이룬다. 안개 낀 숲의 풍경, 푸른 잎사귀와 나무 등 자연의 풍경과 함께 함축적인 문장이 중간중간 있어서 시를 읽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림이 그려진 낡은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놓은 듯한 페이지 구성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작가 요안나 콘세이요는 경제적인 이유로 헌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렇게 만든 작품들을 책에 담은 것이다.

작가는 그림책이 삶을 다채롭게 해 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책·신문·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최근에는 짧은 영상, 핵심만 요약된 글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나만 해도 이런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이러다가 그림을 ‘읽는’ 방법과 상상력을 잃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속 편한 소리 같지만, 오늘도 일터와 삶터에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심호흡을 하듯 산책을 하듯 그림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지 않을까. 처서가 지나고 바람이 시원해졌다. 오늘 점심시간을 틈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밖으로 나서야겠다.


글 이지원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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