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11월 2023-10-27   521

[참여연대사전] 국회가 보험사에 내 의료정보를 넘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

1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

국회에서 통과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소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으로 불린다. 현재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서는 환자가 직접 필요한 자료를 병원에서 제공받아 민간 보험사에 전달해야 한다. 법안은 이 과정을 간소화해 의료기관이 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로 환자의 의료정보를 전송해 보험금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2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의료기관이 보험금을 청구할 때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전송대행기관의 유력한 후보로는 보험개발원이 언급된다. 그러나 보험개발원은 보험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출자해 만든 기관이며 공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은 2017년 자체 보유한 개인정보를 가명화해 현대자동차 고객 정보와 결합한 전적이 있다. 축적된 개인의 의료정보 또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이외의 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월 6일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라 불리지만 사실은 보험사가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집적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민영화 법안이다.

개인의 의료정보를 받은 보험사는 환자를 골라낼 수 있다. 축적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맞춤형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에게는 보험 가입 거절, 보험금 지급 거부, 보험료 상승 등 불이익을 줄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보험사들은 갖은 이유를 대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고 있다. 국민을 위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추진한다는 보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의료기관이 환자 이외의 사람에게 의료정보를 넘길 수 없도록 규정한 의료법과 약사법도 위반했다.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환자가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를 위한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법 제21조 및 약사법 제30조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익 목적도 아닌 사기업의 영리 행위를 위해 법에 예외를 둔 것이다.

무엇보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도 아니고 개인이 보험사와 맺는 사적 계약이다.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관련 법까지 위반하면서까지 국회가 나서서 실손보험 절차를 간소화할 줄 이유가 없다. 국회는 국민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지킬 의무가 있는데, 오히려 보험사가 국민의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회 법안심사소위는 법안에 대한 지적을 반영한 대안을 합의하고 성문화해 상임위 회의에 올려야 하는데, 지난 5월 16일 진행된 정무위 제1법안심사소위는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보험업법 개정안 대안을 소위에서 직접 만들지 않고 정부 금융위가 만들도록 국회의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만든 대안은 제대로 법안심사도 거치지 않은 채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다. 이런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있음에도 국회는 법안 처리를 서둘렀다.

이 법안은 보험사들의 숙원이었다. 그러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보험사들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실손보험이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는 것이다. 이번 법 개정으로 보험사가 의료기관으로부터 청구자료를 직접 받게 되면, 앞으로는 보험금을 환자가 아닌 의료기관에 직접 지불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수 있다. 대표적 의료민영화 국가인 미국이 바로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돈을 주는 보험사가 ‘갑’이 되고 병원은 ‘을’이 된다. 환자들은 보험사가 계약한 병원에서 보험사가 허용한 치료만 받는 상황에 내몰릴지도 모른다.

민간보험이 공보험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에게 남은 미래는 미국식 의료민영화이다. 그 물꼬를 누구도 아닌 국회가 텄다.


글 조희흔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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