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11월 2023-10-27   553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우리는 어떤 얼굴을 새겨야 할까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산

지배하는 얼굴들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커다랗게 조각된 러시모어산. 1927년부터 1941년까지 무려 14년에 걸쳐 만들어진 조각으로 5.12㎢나 되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머리 부분의 높이만 60m에 달한다.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이지만 라코타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침략적인 조형물이다.

이 장소는 당시 미국인들이 영토를 넓히면서 원주민들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러시모어산은 본래 그 지역 원주민 사이에서 ‘여섯 명의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1885년 변호사 찰스 E. 러시모어Charles E. Rushmore의 원정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러시모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처음에는 장소의 이름이 바뀌고 그 후에는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겨지면서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의 흔적은 사라지게 되었다. 첫 번째로 조지 워싱턴을 새긴 조각이 완공되고 두 번째인 토머스 제퍼슨에 이어 1937년에 세 번째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까지 새겨졌을 때, 미 연방의회는 네 번째 얼굴로 여성참정권 운동의 지도자인 수전 B. 앤소니Susan B. Anthony를 추천했지만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얼굴들에 여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낀다.

러시모어 조형물의 책임 조각가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은 백인우월주의단체 KKKKu Klux Klan 회원이었다. 그가 남긴 또 다른 조형물이 있다. 바로 조지아주의 스톤 마운틴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에서 “조지아주 스톤 마운틴에서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하자”면서 언급하는 그 스톤 마운틴이다.

스톤 마운틴은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 남부 사령관,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Finis Davis 남부 연합 대통령, 토머스 스톤웰 잭슨Thomas Jonathan Jackson 장군 세 명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세계 최대의 부조이다. 2015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애틀랜타지부는 스톤 마운틴의 부조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부군의 영웅이란 노예제도를 찬성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오늘날에는 영웅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흑인 민권운동의 성장에 따라 이처럼 인종차별적 조형물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권력은 왜 조형물에 집착하는가.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를 기리는 크고 작은 동상이 4만여 개나 된다고 한다. 공원이나 광장처럼 대중적인 공공장소에서 커다란 동상을 만나면 우리는 그 동상의 주인공을 기억하게 된다. 동상을 세우는 행동은 비非물질의 기억을 물질적으로 재현하는 정치 행위이다.

러시모어 조각 작업에 참여한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ółkowski는 훗날인 1948년 라코타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성난 말’이라는 뜻의 크레이지 호스는 1876년 리틀 빅혼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인물로 라코타 원주민들의 영웅이다.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의미의 조형물인 셈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 DVIDS

사라지는 얼굴들

어떤 조형물이 세워지고 철거되는지에 따라 시대의 이념을 읽을 수 있다. 소련이 무너질 때는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 쓰러졌다. 레닌 동상은 끌어내려졌고 동상이 있던 도시의 이름은 레닌그라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다. 역사는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6m짜리 후세인 동상이 끌어내려졌고 독재 정치는 종말을 선언했다. 미군에 의해 후세인 동상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장갑차로 거대한 동상은 철거되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역사가 있다. 탑골공원에 세워졌던 이승만 동상은 1960년 4·19혁명 때 끌어내려졌다. 5·18 민주화운동단체 등은 옛 대통령 휴양지인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이곳의 전두환 동상과 노태우 동상은 결국 철거되진 않았지만, 2021년 동상 옆에 ‘12·12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무력 탄압’ 등 그들의 국가폭력 사실을 담은 표지판이 설치되었다.

조형물은 광장에 쓰는 시각적 역사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많은 논란을 생산하는 조형물은 무엇인가. 요즘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들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을 보면 이 사회가 추구하는 역사의 방향이 심히 우려스럽다. 한편 2005년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개봉되었을 때 한나라당에서 ‘시민들이 맥아더 동상을 부수러 가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던 일도 떠오른다. 맥아더 동상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나아가 북한이라는 ‘빨갱이 세계’에서 남한을 지켜낸 인물을 상징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맥아더 동상의 훼손을 그들이 걱정했던 것은 공산주의를 적으로 삼아야 정치적 자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훼손될까 봐 걱정하던 정치인들은 정작 한국의 독립군 총사령관 흉상을 거리낌 없이 끌어내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가 추진되고, 비슷한 시기 서울 남산 위안부 추모공원에 있었던 조형물도 철거되었다.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 입당’을 구실로, 위안부 추모공원의 조형물은 ‘작가 임옥상의 성추행 유죄 판결’을 구실로 들었다. 이 조형물들의 공통점은 일제강점기를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작가의 성추행은 철거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아마도 조형물을 두고 정치적 논쟁은 꾸준히 벌어질 것이다. 폭력적 역사를 수정하고 반성하는 방향의 논쟁이면 반가울 텐데, 현실은 그와는 반대로 향하는 중이다.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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