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경전 공부와 참선 수행을 열심히 하는 지인 한 분이 어느 날 몹시 기가 죽은 표정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스님, 그동안 제가 나름 마음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공든 탑이 무너진 느낌입니다.” 대체 어떤 연유일까요?
그는 “차별의 경계선을 넘어서”라는 경전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고, 마음공부의 화두로 무심無心·무상無相·무주無住를 잘 챙겼습니다. 다양한 명상센터도 다녔습니다. 자비명상 훈련을 통해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고 몸에 떠오르는 느낌도 관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구의 권유로 평생 처음 노숙인 쉼터를 방문하여 점심식사 배식 봉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몹시 불편한 감정과 맞닥뜨렸습니다. 추레한 행색, 불쾌한 냄새,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모습…. 그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다른 봉사자들은 노숙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음식도 같이 먹었습니다. 그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명상센터에 다닌 적도 없는 친구의 태도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자주 하다 보면 극복되겠지요. 마음공부도 일종의 훈련인데, 훈련은 거듭거듭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장에는 늘 질문이 있고 질문에는 언제나 답이 있습니다. 붓다와 예수는 늘 사람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문제를 보았고 답을 찾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곧 현장입니다. 삶터를 떠나서 진정한 마음공부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붓다는 이 세계가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1, 이런 감각기관과 마주하는 인식 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2,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오온五蘊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3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삶터에서 느끼고 질문하면서 현장에서 답을 찾으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마음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함정에 자주 빠집니다. 그러나 고요한 곳에서 마음에만 매달린다고 자유와 평온과 기쁨이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난 시공간 ‘이미지 훈련’ 수행만 한다고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가정과 직장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 얼마나 무심하고 의연하게 그리고 자비롭게 마음을 쓰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행은 응급처방 수액이 아닙니다.
요즘 ‘명상센터 붓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명상센터 안에서는 붓다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자애로운데, 막상 세상으로 나가면 중생이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곳곳에서 자비명상을 주제로 수행합니다. 물론 좋은 취지입니다. 자신과 이웃을 자애롭게 대하면서 살아가겠다는데 얼마나 고귀합니까? 그러나 내게 맞는 사람과 상황에서는 마음을 곱게 쓰기 쉽습니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자비慈悲는 ‘사랑 자’와 ‘슬플 비’라는 두 글자의 결합입니다. 붓다는 사랑을 뜻하는 ‘자’ 이전에 이웃의 어려움과 고통을 공감하는 ‘비’에 주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마주할 때 나의 가슴이 아파야 합니다. 마음으로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고 확장하는 관조보다는 통증이 우선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마주하면서 나의 가슴이 함께 아픈 ‘통증 삼매三昧 4’가 바로 자비명상의 핵심이 아닐까요?
초기 불교 수행법에 사념처관四念處觀 5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깨끗하지 않다는 알아차림, 우리의 느낌은 불안정하고 고통이라는 알아차림, 우리의 마음과 관념은 고정불변의 모습이 아니라는 알아차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알아차림이 법념처관法念處觀입니다. 여기서 ‘법’이란 우리가 마주하는 존재 현상들입니다.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화, 즉 삶의 여러 모습이 법의 현대적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웃의 삶을 깊이 통찰하고 공감하는 훈련이 바로 법념처관에 해당합니다.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아프다.” 《유마경》의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웃이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깊이 통찰하면 곧바로 나의 몸에 통증이 온다는 뜻입니다. 이때 자비는 당위적인 언설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실현됩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 6, 통증 삼매는 고요한 시공간에서 하는 기도와 이미지 훈련으로만 체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있는 현장에 함께 할 때, 책과 대화를 통해서 삶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을 통찰할 때, 그리고 미혹과 고통의 삶을 전환하기 위해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일 때 어느덧 나의 신체에 자비가 깃들 것입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대통령이 “모두 현장에서 민생을 챙기라”고 돌연 태세를 전환하고 있습니다.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며 이념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모습과 비교하면 참 씁쓸합니다. 모든 일에는 마음이 따라야 합니다. 현장에서 통증을 느끼면서 치유와 회복을 위한 정책을 펼칠 때 정치인의 진심이 확인됩니다.
상기하면서 맺습니다. 붓다와 예수는 늘 현장에서 이웃의 아픔을 느꼈고 통찰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1 눈, 귀, 코, 입, 몸, 뜻
2 빛깔,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
3 ‘오온’은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표현하는 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되었으나 발전해 현상세계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된다. 오온의 요소인 ‘색수상행식’ 중 ‘색’은 육체와 물체, ‘수’는 감각, ‘상’은 인식, ‘행’은 의지, ‘식’은 마음을 나타낸다.
4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정신력
5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는 네 가지 알아차림 수행 또는 명상법이다.
6 붓다의 자비를 일컫는 말.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하기 때문에 동체대비라 한다.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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