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12월 2023-11-28   298

[여는글] 가해자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얼마 전 초등학교 선생인 지인에게서 6학년 아이들의 수업 이야기를 들었다. 수업에서는 성격이 내향적이라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아주 작게 속삭이는 말》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네가 너라서 좋아”라는 책 속의 문장을 “나는 그냥 내가 나라서 좋아”로 바꾸어서 대화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냥’에 초점을 맞추었고, 어떻게 하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그냥 좋아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자기 내면과 같아져라” 등 아이들은 제법 속 깊은 대화를 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먼저 자신을 이해하자”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깊은 토론을 했다. “스스로 먼저 자기 잘못을 이해해 준다면 진심으로 성찰하고 반성할 것”이라는 의견과 “스스로 자기 잘못을 이해해 주면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반대 의견의 요지는 친구를 괴롭힌 가해자를 이해해 주면 계속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비난을 받고 피해자는 동정을 받아야 한다. 이를 부정하면 정의를 세울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온갖 거짓과 현란한 수사의 양비론으로 본질을 가리기에 급급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시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런 지혜와 용기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상황을 ‘정의와 불의’로 규정하고 ‘보호와 응징’의 이분법적으로 대응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먼저 피해자를 위로하고 보호해서 안정된 삶으로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그리고 가해자를 응징해야 한다. 응징이란 잘못된 행위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런데 범죄 행위와 그에 합당한 처벌 규정을 형법에 명시한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결국은 가해자의 삶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가해자로 규정된 그가 다시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바로 반성과 참회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도 사람이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한 사람이다. 이웃에게 좋은 일도 하면서 오순도순 함께 살고 싶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현상은 명확히 판단하되 처벌이 지향하는 당위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 보복과 배제로 이어지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다. 모두 더불어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피해자에게는 보호와 위로와 회복이 필요하고, 동시에 가해자에게는 성찰과 참회와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말을 진지하고 냉정하게 잘 들어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이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가해자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배경과 현실도 경청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잘 사는 길이다.

갈등과 분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사회 곳곳에서의 조롱과 성폭력, 직장 내 갑질 문화 등 수많은 가해와 피해의 사건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부당함에 분노하고 정의를 호소한다. 그 지향은 맞다. 그러나 침착하고 지혜롭게 사태의 현상과 본질을 잘 살피고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 좋은 세상이 다가올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모두의 말에 선입견 없이 관심을 두고 경청해야 한다.

회복의 길은 잘못에 대한 합당한 응징과 관용으로 함께 가는 길이다. 내가 행복한 삶이 이웃에게도 좋고, 이웃에게 좋은 삶이 나를 복되게 하는 삶.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삶이 아닌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학교 폭력 가해자로 규정된 친구들이 자기 내면과 같아지는 길,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길,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길, 그리하여 ‘나는 내가 나여서 정말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길을 과연 찾았을까?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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