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자화상에 찍힌 그 사람은 누굴까

그의 자화상은 고백이자 저항

프랑스의 사진작가 클로드 카엉Claude Cahun은 20세기 초에 활발히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다. 독특한 분위기의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카엉은 사망 후 고국인 프랑스에서조차 한동안 잊혔다가 1980년대 이후 재발견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파리·런던·뉴욕 등에서 카엉의 회고전이 기획되면서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클로드 카엉의 독특한 사진들은 오늘날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 2007년 가수 데이비드 보위David Robert Hayward Jones가 하이 라인 페스티벌을 위해 선정한 작가 중에 카엉이 포함되기도 했을 정도다. 2011년 파리 주 드 폼므 미술관에서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전혀 전시된 적이 없는 몇몇 작품을 포함하며 카엉의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카엉이 사망한 지 거의 60년 가까이 지나서다.

클로드 카엉의 본명은 루시 슈보브Lucy Schwob다. 그는 1894년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유태계 부르주아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사람은 할머니 마틸드 카엉이었다. ‘카엉’이라는 예명은 바로 할머니에게서 따왔다. 상징주의 작가인 삼촌 마르셀 슈보브Marcel Schwob도 어린 카엉에게 영향을 끼쳤다. 비록 37세의 이른 나이에 죽은 삼촌을 잘 알기에는 그에게 시간이 너무 부족했지만, 마르셀이 미친 예술적 영향은 카엉의 초기 창작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카엉의 사진 중에는 자화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양차 대전 사이에 카엉은 프랑스 파리와 영국 저지섬을 오가며 인상적인 자화상을 많이 생산했다. 그의 자화상 사진은 내면의 다양한 자아를 고백하는 작품이다. 특히 카엉은 가면을 벗는 연출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만들었다. 마치 인생은 한 편의 가면무도회라는 듯 자화상에서 그는 석가모니가 되었다가 천사도 된다.

그리고 수많은 고백 중에서 특히 성정체성에 대한 고백이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20세기 초에 유대인이자 여성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의 고백은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하나의 저항이다.

자화상 속에서 그는 머리를 밀고 남성 수트를 입거나, 과장되게 여성성을 강조하는 머리 모양과 복장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키스하지 말아요. 나는 훈련 중이에요’라고 적힌 옷을 입는 등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연출한다. 자화상이지만 연출된 정체성으로 만들어진 자화상인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하나이지 않은 나’를 말한다.

카엉은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비종교인이며,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란 트로츠키주의1자였고,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하나의 젠더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살았다. 통념적 구별을 거부한 카엉은 그의 동성애 정체성을 고백하고 제도와 문화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작가의 이름인 ‘클로드’ 역시 성별에 상관없이 사용하는 이름이다. 중성적인 이름을 사용하면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위장한다.

자화상. 1920 ◀︎ 작품보기

새로운 하늘과 땅을 본 뒤 사라지다

카엉이 1928년에 출간한 독특한 자서전 《금지된 묵언》은 2011년에 재출간되었다. 여기서 카엉은 자신을 통념적인 기준으로 분류되지 않는 인물로 그린다. 그는 ‘아무나’가 된다. 글 속에는 자기애, 불안, 불면, 환상, 자신의 몸에 대한 피학적인 유혹만이 아니라 때로는 엄마와 보편적 여성성에 대한 강한 거부감 등이 보인다. 실제로 카엉은 생물학적 어머니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이렇듯 그는 당시로는 쉽게 꺼내기 힘든 감정과 생각들을 책에 고백했다. 책에는 카엉의 포토몽타쥬2가 삽입되었다. 카엉의 동료이며 반려자와 협업한 작품들도 포함되었다.

카엉의 이 모든 행보에 늘 함께 있었던 인물을 빠트릴 수 없다. 마르셀 무어Marcel Moore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수잔 말레르브Susanne Malherbe이다. 부모의 재혼으로 두 사람은 법적으로 자매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반려자이며 평생 협업한 예술적 동지였다. 카엉의 글에는 무어의 일러스트가 삽입된 경우가 많다. 카엉은 무어와 함께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저지섬에 살았다.

저지섬에 나치가 침공했을 때 두 사람은 이에 저항하는 전단지도 함께 제작했다. 클로드 카엉은 창작 활동을 통해 세계의 도덕과 관념, 상식에 도전했으나 그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2차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이었다. 차로 30분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갈 수 있는 작은 섬에서 그들의 은밀한 저항은 곧 들키고 만다. 독일어·영어 등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전쟁을 고발하던 카엉은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되었다. 독일군이 카엉을 처벌한 것은 단지 나치에 대한 저항활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엉의 집에서 나온 수많은 사진 자료 등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카엉의 많은 흔적이 그렇게 사라졌다.

1945년 5월 8일 저지섬이 속해있던 영국의 채널 제도諸島는 나치에서 해방되었고 카엉은 극적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수감 생활 중 건강이 악화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1954년 무어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는 저지섬에 무어와 함께 묻혀있다. 카엉의 묘비에는 “나는 새로운 하늘과 땅을 보았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자화상. 1928 ◀︎ 작품보기

1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영구혁명론을 내건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Leon Trotskii의 사상
2 사진을 오려 그 부분을 재조립하여 새로운 의미를 갖는 합성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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