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이런 도서관이라면 매일 가고 싶다

글 편집팀

지난해 여름 베를린중앙도서관은 도서관 입구에선 악기를 두드려보고 안에선 관련 책을 찾아볼 수 있는 ‘세계의 악기’ 행사를 열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도 툭하면 한복판에서 콘서트를 연다. 또한 이곳의 도서관은 서가에 공구, 재봉틀, 여행용 가방, 사다리, 악기 등도 쌓아놓고 빌려준다. 그래서 무언가 필요해서 왔다가 누군가와 말을 섞느라 부산해진다. 정말이지 시끄럽지만, 고립된 외국인으로 살다가 도서관에 오면 마치 광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모든 도서관에선 정기적으로 외국인들이 독일인과 대화하는 ‘언어 카페’도 열린다. 베를린의 많은 장소가 그렇지만 대다수 도서관이 ‘이곳은 여성·성소수자·외국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못박아두고 있다. 내가 가고 싶은 도서관은 이처럼 다양한 시민들이 서로 연결되는 광장이다.

남은주 자유기고가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가 끝나면 근처 공공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엔 싸고 맛있는 밥을 파는 지하 식당과 예쁜 여학생들이 있었다. 몇백 원으로 우동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로비에서 사람 구경 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맞아, 여기 책이라는 게 있다던데’ 하는 식으로 열람실을 찾던 것이 내 독서의 시작이었다. 요즘은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도서관에 가고 싶도록 만드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고 싶은 장소에 책을 놓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이 할 일은 의외로 싸고 맛있는 밥을 파는 게 아닐까. 유튜브 시대에도 밥은 사람을 모을 수 있고, 도서관에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책과도 가까워질 테니까.

김동환 참여사회 편집위원

저시력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읽기에 가장 좋은 책은 글자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전자책이다. 그러나 전자책 숫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국회도서관 등록증을 만들었지만, 출간된 전자책만이라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도서관에 등록된 전자책 수는 많았지만 분야가 제한적이라서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을 선택하는 단계부터 근본적으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전히 도서관 이용은 내게 도전이다. 책을 대여해 읽는 것은 고사하고 책을 찾는 것조차 어렵다. 안내 표지판은 모두 작은 글씨로 되어있고 인적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다. 내가 바라는 도서관은 묵자1 책과 동등하게 전자책이 만들어져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는 곳, 누구나 어려움 없이 시설물을 이용하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즐겁게 책을 고르고 읽고 싶다.

박승규 저시력 시각장애 당사자

재미로 가득한 도서관은 시끄럽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도서관이 싫다. 발걸음 소리, 책 넘기는 소리, 숨 쉬는 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일 정도로 정적이 흐르는 도서관은 삭막하고 불편하다. 나는 서가로 가득한 도서관보다 이용자로 가득한 도서관이 좋다. 토론하고 체험하는 배움의 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이용하며 소통하는 시끄러운 도서관이 좋다. 캘리포니아의 맨해튼비치공공도서관 계단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읽고, 쓰고, 배우고, 만나고, 듣고, 발견하고, 탐험하고, 운동하고, 놀고, 관찰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창작하고, 만들고, 경험하고, 묻고, 토론하고, 검색하고, 찾고, 쉬다.” 재미로 가득한 시끄러운 도서관을 만들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동사들이다.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저자

서촌에 살게 되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의 힘을 새삼 느낀다. 동으로는 정독도서관, 서로는 종로도서관, 북으로는 청운문학도서관, 남으로는 서울도서관이 있으니 세상 모든 책을 품고 사는 기분이다. 어떤 도서관이냐에 앞서, 도서관을 감각하고 경험할 기회가 늘어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물론 접근성을 높이려 다수의 도서관을 짓고 운영하려면 규모가 작아질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오랜 장서를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폐기하는 대학 도서관의 상황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니 100년까지는 모르겠지만 50년 정도를 약속할 수 있다면, 그 시간 후에도 찾아 읽을 기대가 되는 책들을 세심히 골라 하나씩 채워가는 도서관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캐나다의 캘거리공공도서관에 방문했다. 도시의 랜드마크로도 유명한 도서관인데, 반나절쯤 둘러본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서관이 정말 좋은데, 대체 뭐가 이렇게 좋은 거지?’ 화사한 디자인도 좋았고 최신식 시설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것만 견주자면 다른 좋은 도서관을 꼽을 수도 있다. 캘거리공공도서관에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도서관을 다시 둘러보면서 알게 되었다. 사서들이 사서임을 알려주는 조끼를 입고서 이용자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넘어진 아이의 무릎이 괜찮은지 살펴본 뒤 일으켜 세워주었고 노숙자임이 분명한 사람에게 다가가 컴퓨터 이용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가본 도서관 중 사서가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곳이었고 그들은 모두 이용자를 돌보고 있었다! 이런 도서관이 있다면 나는 무척이나 든든할 듯하다.

임윤희 도서출판 나무연필 대표, 《도서관 여행하는 법》 저자

나는 아이 4명을 키우는 이주여성으로 한국에서 20년을 살았다. 요즘은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한국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살면서 때로 고유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듯한 경험도 하게 된다. 나는 도서관에서 각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그 나라의 놀이나 음식 등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내가 자란 베트남의 다양한 문화를 재미있게 체험하고 베트남 말도 배우면 좋겠다.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도 이렇게 각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면 좋겠다. 그래서 부모를 더 많이 이해하고 깊은 대화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유학생이나 이주노동자도 도서관에 와서 잠시 잊고 있던 자기 나라 문화를 다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서연지(팜티탄투이) 베트남 이주여성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도서관은 작은 시립도서관이다. 10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는 그곳에서 생애 첫 전시를 했다. “언제나 사랑이 가득한 우리집”이라고 삐뚤빼뚤 쓰인 붓글씨를 액자에 담아 시청각실 문 앞에 달았다. 도서관을 오가는 주민들 앞에서 나는 자랑스레 꽃다발을 들고 못난 글씨 앞에 서 있었다. 내 기억 속 도서관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계속 주민을 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프로’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도 내 취미를 내보일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주민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그 지역 출신 작가가 고향의 흥취를 담은 비공식 작품을 낭독하는 곳,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 주민들에게 따뜻하고 시원한 공간을 내어주는 곳, 고향 사람들의 자잘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곳이 도서관이기를 바란다.

조희원 노원구 동네청년

요즘은 각자의 성격 유형을 알려주는 온갖 테스트가 유행한다. 하지만 나를 제대로 알려면 테스트를 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보고 듣고 느끼며 탐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서관이 최적의 공간이다. 일상 생활권에 위치할 뿐 아니라 비용 부담도 없다. 무엇보다 나이, 사회적 지위,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기에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다.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청소년기에는 도서관이 더 중요하다.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보호자의 능력에 따라 청소년이 갖는 경험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는 건 비극이다. 그렇기에 모든 청소년에게 도서관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도서관에서 청소년을 보기는 쉽지 않다. 어린이도서관에 열심히 다니던 이용자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하나둘 사라진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도서관 갈 시간이 어디 있냐’는 인식 탓이다. 청소년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도서관이 쉽게 찾아와 편하게 머물며 탐색하는 곳, 종종 실수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곳이 되어서 삶의 지혜를 구하는 길을 나란히 같이 걷는 동반자로 자리잡길 바란다.

일상탐구생활자 일상에서 꾸준히 나를 탐구하는 도서관 덕후

학교가 끝나고 업무가 끝나면 그때부터 도서관 생활이 시작한다. 우리는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열고 욱신거리는 가슴을 연다. 그리고 두 번째 꿈과 두 번째 지구,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의 모습들을 꺼내 펼쳐본다. 도서관에는 산호초가 살고 밝은 가을 햇살이 살고 길고양이가 살고 예술가가 산다. 밤새 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즐겁게 두 번째 꿈을 꾸고, 도서관은 우리가 꿈꾼 만큼 커져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첫 번째 지구는 아스팔트와 형광등과 자동차로 가득 찬 채 아파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두 번째 지구는 푸르고 아름답다. 도서관은 우리의 두 번째 푸른 꿈으로 지구를 감싸 다시 태어나게 해줄 것이다.

미음 ‘마포구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1 먹으로 쓴 글. 특히 점자에 상대하여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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