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우리 도서관이 ‘부동산 컬렉션’을 만든 이유

글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

지난해 여름 서울 동작구의 한 도서관이 ‘재테크도서 잠정 구입 중단’을 선언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선언의 이유는 이용자의 ‘희망도서 신청’에 재테크도서가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도서들은 이미 경제학서가 절반을 채운 상태였다.

민원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공립공공도서관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라 반가웠다. 그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 헤아릴 수 있기에 나도 그 결단을 반겼다. 그러면서 몇 가지 질문이 숙제처럼 남았다. ‘재테크 도서’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도서관 이용자에게 정말 필요한 자료는 어떤 것일까?

몇 달 뒤 내가 일하는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부동산 컬렉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시사상식이나 재테크 정보를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공매도 전면 금지 및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대책’ 발표가 나왔는데, 이를 보면서 ‘과연 이 정책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시민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정책을 시민이 제대로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로 컬렉션을 엮어보기로 했다.

2023년 11월 18일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열린 ‘이야기액자 콘서트’ ⓒ느티나무도서관

책이 엮이고 주민들이 엮여 삶을 바꾸는 플랫폼

느티나무도서관은 이처럼 특정 주제별로 자료를 모아 ‘사회를 담는 컬렉션’을 만든다. 예를 들어 ‘부동산 컬렉션’에는 유효기간이 짧고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재테크도서가 아니라,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사회경제 현상들을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 엮는다. 앞선 버전인 ‘내가 살 집은 어디인가’ 컬렉션에는 집이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다가 스스로 집의 인질이 된 건 아닌지, 나는 정말 어떤 집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컬렉션에는 십진분류체계1의 경계를 넘어 사회과학·기술과학·문학·그림책·만화·영화까지, 각기 다른 위치에 꽂혀 있을 책들을 함께 모아둔다. 언론기사, 연구논문, 세미나·포럼 자료집, 관련 법령이나 조례도 스크랩해둔다. 참고할 웹사이트나 지역 소식을 담은 게시판은 링크를 큐알 코드로 출력해 그 자리에서 열어볼 수 있도록 비치한다.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컬렉션 제목을 정하는 일이다. ‘번아웃, 버팀과 소진 사이’, ‘전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쯤 손을 뻗기를 바라며 긴긴 회의를 거쳐 정한 제목으로 말을 건넨다.

찾아오는 이들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지역 곳곳에서 ‘컬렉션 버스킹’도 연다. 느티나무도서관이 있는 용인시는 도농 복합도시다. 농업 인구와 농지 비율은 줄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직하게 친환경 농법을 실행하는 농부들이 있다. 도시지역 이웃들을 모아 ‘베짱이농부’ 팀을 꾸리고 농활과 팜(농장)파티를 진행했다. 농장에 베짱이농부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컬렉션을 전시하고 즉석에서 대출도 했다.

서툰 일꾼들의 수고가 농부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사업의 진짜 성과는 친환경농업을 지속하기 위해 공공급식조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된 것이었다. 새해에는 조례 제정에 힘을 보태기 위한 자료를 찾고, 관련 기관과 의원들까지 초대해 포럼을 겸한 팜파티를 열 계획이다.

뜻밖의 발견은 또 있었다. 모자라는 일손을 채우던 이주농업노동자들을 만난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인력난을 고려한 고용허가제를 확대 시행했는데, 도서관은 이 같은 정책변화를 담아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농장을 찾아가 농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기대할 수 없던 수확이다. 도서관에서 상호작용을 하면 이렇게 세렌디피티2를 누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지 않는 도서관

앞서 언급한 동작도서관 사례는 이용자의 요구를 무한정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많은 도서관이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이용자의 ‘표현된’ 요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아직 이용자가 아닌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공공성에 기반을 둔 도서관이라면 잠재 이용자를 먼저 고려해야 마땅하다. 도서관은 더 적극적으로, 섬세하고 역동적으로 공공성을 구현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도서관은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성인·청소년·어린이 등 나이대를 기준으로 대상을 가른다. 또한 해마다 시행되는 전국 공공도서관 운영평가에서는 장애·다문화·노년으로 대상을 특정하여 지식정보취약계층 서비스 항목도 따로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에 속하지 않는 취약계층들도 많은데, 이들에 대한 서비스는 성과로 평가되기 어렵다. 또한 분류의 그물눈이 성글면 개인의 특성이 제대로 담기기 어렵다. 예를 들어 ‘장애’라는 범주만으로는 다양한 장애 유형을 반영하기 어렵다. 실제로 정신장애·알코올사용장애3를 가진 이들을 위한 서비스는 도서관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더불어, 도서관이 정한 범주를 당사자들이 반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특수자료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환경이나 젠더 관련 자료를 더 원할 수도 있다. 70대의 나이에도 얼마든지 IT 기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무엇이 정말 지식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서비스인지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 또는 선주민 중심적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장애인이나 이주민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타당한가. 오히려 비장애인이나 선주민이 차별적 사회 환경과 그에 따른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문화적 소양을 체득하기 위해서 더 많이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도서관이 이용자를 어떻게 만나고 상호작용할지에 관한 질문은 이처럼 복잡하고 정답도 없다. 그러나 도서관이 ‘맞춤형’의 한계를 벗어날 하나의 열쇠는 사람들의 요구에 일일이 응대하려는 극진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 있다. 그래야 이용자가 스스로 적극적인 정보활동을 펼치도록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도서관 역시 표현되지 않은 이용자의 요구까지 읽을 수 있게 눈이 밝아진다. 구체적인 욕구와 간절함은 힘이 있다. 그 힘이 작동할 기회와 장을 열어두기 위해 느티나무도서관은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다’고 서비스 헌장에 못 박았다.

예산 삭감, 장서 검열… 그러나 위험한 아이디어는 계속된다

기후위기, 저출생 초고령화, 전쟁, 잇따른 재난참사, IT의 발달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논란 등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런 시대에 맞춰서, 정보와 지식을 저장만 해두는 창고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함께 모색하는 장이 되기 위해 먼저 도서관이 변화해야 한다. 책의 물성에만 매달리지 않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안을 찾아 함께 작당모의할 시민들을 연결하고, 그 힘을 북돋우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현실이 녹록지는 않다. 잇따른 도서관 예산 삭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검열 사태를 생각하면 마치 순식간에 과거로 회귀할 것처럼 불안하고 두렵다. 그러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힘은 시민에게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힘은 자기 삶에 도서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는 경험에서 비롯될 것이다. 장서나 시설에서 사람으로 또한 삶으로 시선을 옮긴다면, 엄혹한 현실에서도 그런 경험을 나눌 기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큰 영감을 주었던 문헌정보학자 데이비드 랭크스D. Lankes 교수의 말을 빌려 우직하게 미래를 열어가는 도서관인들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도서관은 위험한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안전한 장소였다. A library was a safe place to explore dangerous ideas4

1 도서관의 대표적인 도시분류체계. 모든 지식 분야를 총 10개로 1차적으로 구분한다.
2 ‘뜻밖의 발견’이라는 뜻으로, 가능한 한 많은 우연에 노출되고 불확실성이나 실패를 즐길 수 있어야 찾아오는 기회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세렌디프(지금의 스리랑카인 실론 왕국)의 세 왕자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3 과도한 음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오는 것
4 《Living Libraries : The house of the community around the world》,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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