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깨어있는 시민에겐 깨어있는 도서관이 필요하다

글 이용훈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 도서관문화비평가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설치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지금 우리가 편하게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이다. 혁명으로 시민이 시대의 주인이 되었지만, 혁명 이후에도 세상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 주권자인 시민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자치하는 데 필요한 역량, 즉 생각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에 시민이 책을 통해 필요한 능력을 스스로 평생에 걸쳐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장치로서 근대적 의미의 공공도서관이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한국에서 도서관 운영의 기본이 되는 도서관법에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담겨있다. 해당 법은 도서관이 ‘국민의 정보기본권 신장과 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하여 지식문화 선진국을 창조하는 중요한 기본시설의 하나’라고 규정한다. 또한 ‘국민의 지식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지식정보 격차를 해소하여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식정보에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도서관 발전을 지원하여야 하며 이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할 것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고 있다. 시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살피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시민이 도서관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다.

돈 내야 들어가던 도서관이 활짝 문을 열기까지

19~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도 근대국가를 꿈꾼 일부 선각자들이 서구의 공공도서관을 경험한 뒤 우리 국민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연구하는 열린 지식공유공간으로서 공공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국내에 도서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민 통치가 시작되면서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우리의 말과 글, 생각과 행동은 물론 주체성과 일상, 문화, 역사마저 잃어버렸다. 도서관도 일제의 검열과 통제를 거친 책들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도서관은 식민 통치에 필요한 정책과 방침을 전달하고 선도하는 ‘사상통제 기관’으로 전락했다.

일제강점기를 견디고 맞은 해방 초기에는 도서관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도서관을 만드는 활동이 빠르게 펼쳐졌다. 그러나 도서관을 제대로 만들고 운영하기에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매우 어려웠다.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도 도서관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 1955년 당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은 전국에 겨우 8곳뿐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전국에 도서관이 40곳이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사정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당시 도서관들은 숫자도 부족했지만 이용 방식도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도서관은 여전히 식민시대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개인의 부족한 학습공간을 대신하는 기능, 즉 독서실 역할을 하기에 바빴다. 도서관은 개인의 입신과 영달을 위한 ‘공부방’으로만 인식되었고, 새벽부터 긴 줄을 서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도서관의 모습이었다. 그런 시대였기에 ‘시민들의 지식과 지혜를 넓히면서 민주주의 주체로서 시민을 양성하고 민주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근대 공공도서관의 개념은 무시되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바른 도서관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며 꾸준히 도서관운동을 펼쳤다. 1960년대 마을문고 운동에서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양서협동조합 운동이, 1980년대에는 노동도서원 운동이 벌어졌다.

울산과 경주에서 활동을 시작한 도서관운동가 엄대섭은 1960~70년대 문화시설이나 독서 기회가 부족한 농산어촌에 작은 독서시설을 마련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마을문고 운동을 펼쳤다. 마을문고는 1974년에는 약 3만 5,000곳에 이를 정도로 커졌고 당시 공공도서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우리 사회 독서문화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980년 군사정부 시절 마을문고 운동을 떠나야 했던 엄대섭은 1980년대 초 대한도서관연구회를 만들고 개가제1 및 관외 대출2 도입, 입관료 폐지 등으로 도서관 운영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당시에는 공공도서관에 들어갈 때 약간의 비용을 내야 했다. 책은 도서관 안에서만 읽을 수 있고 바깥으로 가져갈 수도 없었다. 심지어 책을 빌리려면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하기도 했다. 시민 누구라도 자유롭게 도서관을 이용해야 한다는 공공도서관의 이념과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90년대에 와서 공립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을 무료로 이용하게 되었다. 시민이 자유롭게 책에 접근하고 원하는 책을 도서관 바깥으로 빌려 갈 수도 있게 되었다.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문화부 출범과 지방자치 부활 등의 사회적 환경 변화는 공공도서관이 학습 보조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율과 독립을 돕는 지역의 문화 기반 기관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100곳이 안 되었던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현재 1,2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또한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시민사회 성숙과 맞물려 많은 지역에서 주민도서실 운동도 일어났다. 이러한 시민 주도형 도서관 운동은 2000년대 들어와 어린이도서관 운동으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작은도서관 운동이 되어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을 위한 도서관’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기억할 중요한 도서관운동은 어린이에게 좋은 도서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2003년부터 (재)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MBC ‘느낌표!’ 프로그램이 함께 추진한 ‘기적의 도서관’ 설립 운동이다. 이 운동은 공중파 방송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어떤 도서관이 필요한지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바른 인식을 끌어냈으며, 공공도서관 서비스는 물론 정부나 지자체 도서관 정책을 혁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서관 숫자는 급속하게 늘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또 달라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경제 불평등, 갈등과 혐오, 전쟁 등 변화하는 국내외 상황에 대응하려면 더 적극적이고 강력한 시민들의 참여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의 힘을 키우는 개인과 공동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깨어있는 시민과 민주적 공동체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고 지킬 권리와 책무는 모두 시민에게 있다. 사회의 공공재인 공공도서관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서 주권자로 행동해야 한다.

한편 그동안 한국의 도서관은 양적으로는 급속하게 성장했지만, 지역 간은 물론 지역 내에서도 불균형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사서 등 도서관 인력도 크게 부족하다. 이제 공공도서관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하고, 도서관운동 역시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산적한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는지 살피면서 제대로 된 도서관 정책 수립과 집행을 요구하고 실행 여부를 챙겨야 한다.

2024년 정부나 지자체의 공공도서관 운영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우선 자기 지역 도서관 예산부터 살펴야 한다. 또한 도서관법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는 공공도서관 운영위원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 운영은 전문가인 사서들이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서 시민은 운영위원회 참여를 통해 지금의 도서관을 시민과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공도서관으로 거듭나게 할 때다.

이제는 시민이 직접 도서관을 설립해 운영하는 단계를 넘어서 ‘시민의 세금으로 설치 운영되는 공립 공공도서관 운영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시대’, ‘깨어있는 시민의 깨어있는 도서관 시대’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1 도서관에서 열람자가 원하는 책을 자유로이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운영 제도
2 도서관 외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대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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